셰익스피어 소네트, 명암(明暗)의 경계에서 맺은 은밀한 암합(暗合)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사각거린다. 1609년, 런던의 어느 낡은 책상 위에서 한 남자가 시를 쓴다. 그는 영문학의 신(神)이라 불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신이 아니다. 질투에 눈이 멀고, 욕망에 타오르며, 늙어가는 육신을 한탄하는 비루한 한 명의 사내일 뿐이다.
그가 남긴 154편의 소네트(Sonnets). 이것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다. 이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 내면의 지옥도이자, 운명의 팔자(八字)를 스스로 해부한 처절한 부검 보고서인 것이다.
상상해 보자. 무대 위에서는 고귀한 왕과 비극적인 연인을 그려내던 그가, 무대 뒤편 어둠 속에서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었을까? 그의 시구(詩句)를 메스 삼아, 400년 전 그가 겪었던 '조후(調候)의 불균형'과 '은밀한 암합(暗合)'의 현장을 파헤쳐 보려한다.
소네트 1번부터 126번까지, 셰익스피어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다. 바로 '금발의 청년(Fair Youth)'이다. 그는 아름답고 눈부시다. 명리학적으로 본다면 그는 생명력이 솟구치는 목(木)의 기운이자, 화려하게 만개한 화(火)의 계절이다.
시인은 노래한다.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 수 있을까?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이것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두려웠던 것이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낫이, 저 푸르른 청춘의 목을 칠 것이라는 사실을.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어 흙으로 돌아간다. 이 필멸(必滅)의 공포 앞에서 시인은 청년에게 결혼과 출산을 종용한다. 생명을 이어가는 것만이 죽음을 이기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곧 깨닫는다. 자식도, 육체도 결국은 시간의 밥이 될 뿐임을. 그래서 그는 펜을 고쳐 잡고 쓴다. 오직 나의 '시(Verse)'만이 너를 영원히 살게 하리라. 이것은 문학적 선언이기 이전에, 차가운 겨울(水)로 향해가는 인생의 계절적 온도를 문장의 열기(火)로 데우려는 처절한 '조후(調候)의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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