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치다. 어릴 때부터 길을 잘 찾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거의 1년 동안 엄마가 데려다줬다.
서울에서도 변두리, 야트막한 언덕 위 골목길이 복잡한 동네에 살았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골목을 누비며 놀았다. 나는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놀아도 집 앞이나 집이 보여야만 했다. 그래서 조금만 낯선 길에 들어가면 여지없이 길을 잃어버렸다.
그런 나를 오빠는 멍청하다고 놀렸다. 엄마는 늘 오빠에게 나를 데리고 다니라고 했다. 오빠는 엄청 귀찮아했다
나를 데리고 나가서 일부로 혼자 찾아오게 했다
길을 배워야 한다며.
"야 잘 들어 이쪽 길로 쭉 가다가 세 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오면 돼 알겠지 오빠 먼저 가 있을게 잘 찾아와"
나는 용기를 냈다
"알았어 한 번 찾아가 볼게"
나는 분명히 오빠가 알려준 대로 갔다
`앞으로 쭉 가다가 세 갈래 길에서 오른쪽`
하지만 오빠는 없었다 나는 당황했다 다시 돌아 나와서 이쪽저쪽 길을 가도 오빠는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낯선 곳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낯설고 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도 낯설었다.
'여기는 어디일까'
혼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는 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야! 어디 있었어 너 바보야? 왜 안 오는 거야?"
땀으로 범벅이 된 오빠는 울먹이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한테 된통 혼날 걱정에 난 울음이겠지 생각했다
오빠는 나에게 사탕을 주면서 단단히 일렀다
집에 가서는 말하지 말라고 다 울고 가라고
세월이 지나 오빠에게 물어봤다
그때 정말 거기 있었냐고 오빠는 기억도 안 난다고 얼버무렸지만 아마도 친구와 잠깐 놀았을지도 모른다
"오빠 그때 엄마한테 혼날까 봐 울면서 사탕 줬잖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오빠는 혼잣말하듯 말한다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너 진짜 잃어버린 줄 알고..."
오빠와 나는 살면서 그때만큼 서로의 얼굴이 반기운 적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길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잃어버린 길 끝에 만난 익숙한 얼굴이 얼마나 반가운지를.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운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이 있는 이제야 운전을 시작했다.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은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인이 되면서 어릴 때처럼 길은 잃어버리지 않게 되었지만 가끔 인생의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할 때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길을 만난다. 여러 가지 길 앞에서 때론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어릴 때 집을 찾아오는 길은 정해져 있지만 성인이 되어서 찾는 길에는 정답이 없어서 더 어렵고 힘들다. 나의 길은 무엇일까? 고민도 하고 이 길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하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길도 있었다
인생이 길을 가다가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여러 번이고 막다른 길을 만나 절망한 적도 많았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 길을 잃고 헤매었을 때는
대학입시에 번번이 낙방한 것이다 대학 가는 것이 내 길이 아닌 거 같아 사회에 뛰어들어 일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 길도 만만치 않았다. 몇 번의 도전으로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나는 드디어 내 길을 찾은 거 같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유아교육과는 딱 내 길이었다
유치원 교사로서 자부심도 있었고 인생의 빛나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나는 순조롭게 내가 선택한 길을 가고 있었다 돌부리도 없고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예쁜 길이었다. 그런데 또 한 번 막다른 길을 만났다. 절망이었다. 어릴 적 만난 막다른 길은 그냥 돌아 나오면 됐는데 인생에서 만난 막다른 길은 그저 절망이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간신히 생긴 아이는 유산이 되었다. 나는 그 길 앞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돌아 나올 수도 넘어설 수도 없는 그 길 끝에서 그저 눈물만 나왔다. 번번이 유산할 때마다 돌아 나오면 되지 스스로 위로했다.
그러다가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통해 두 아이를 만났다. 어릴 적 잃어버린 길 끝에서 만나 오빠보다 억만 배는 더 기쁜 만남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본 사람만은 알 수 있다. 그렇게 찾은 집이,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지금 두 딸과 함께 길을 걷는다
엄마 저 길 끝에는 뭐가 있어 묻는다
나도 몰라~모르지만 한번 가보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냥 일단 가보자
두 딸 앞에 펼쳐진 많고 끝없는 길에 축복을 보내본다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가보라고 한다
가보지 않은 길에 후회도 미련도 남겠지만 일단 선택한 길은 가보라고 그래야지 끝까지 갈지 돌아 나올지 알 수 있다고. 그리고 길을 잘 찾아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