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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네풀 Jul 02. 2023

나를 찾아 떠난 여행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직업인 나에게 강의는 늘 즐거운 경험이다. 몇 년 전 경기도자립센터에서 운영하는 임시 보호기관에서 인문학 수업을 의뢰받아 8주간 수업했다. 그곳은 부모님이 각자의 사정으로 잠시 아이들을 맡긴 곳이다.  

긴장된 마음으로 간 첫 수업 시간, 2학년에서 5학년까지 학년이 다른 남자아이 5명이 있었다. 그중 4학년 남자아이는 ADHD 성향이 있고, 읽고 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수업에 적극적이고 잘 따라와 주었다. 

  그 당시 초보운전자인 나에게 집에서 한 시간 이상 가는 거리, 특히 고속도로 운전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처음엔 긴장되어 휴게소에 들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몇 번 가고 나서부터는 휴게소도 들리고 커피도 마셨다. 혼자 휴게소에 들러 보기는 처음이었다. 혼자인 이 시간이 나름 괜찮았다. 인문학 강의 주제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인데 점점 아이들을 위한 강의가 아닌 내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아이들이 나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아이들은 나를 기다리고 나는 그곳으로 간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즐거워했고 끝나면 아쉬워했다. 그리고 문 앞까지 나와 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준다. 왜 이 장면이 지금 생각해도 뭉클한지 모르겠다. 

  [리디아의 정원]이라는 책을 수업할 때의 일이다. 책의 내용이 지금 아이들의 상황과 비슷했다. 주인공인 리디아는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외삼촌 집에 1년간 가 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나도 지금 가족과 떨어져 있는데 하며 리디아의 상황에 완전히 공감했다. 독후활동으로 자기의 이름을 넣어서[ OO의 정원] 만들기를 했다. 색종이로 하나하나 열심히 꽃을 만들고 꾸미는 아이들…. 가족과 떨어져 있는 이 시간을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견디고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그중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여기 리디아가 우리 누나 같아요. 우리 누나는요 시도 잘 쓰고 요리도 잘해요” 

 “그래? 그런데 누나는 어디에 있는데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자립센터의 규정에 무지한 나는 눈치 없이 말했다. 

 “.....” 

아이는 말이 없었다. 쉼터는 규정상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분리해서 돌봄이 이루어진다. 나는 민망함과 미안함에 가슴이 선득해졌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도 가족과 이별한 경험이 있어.” 

 “언제요?” 

 “작년에…. 선생님이 제일 사랑하는 막냇동생이 하늘나라로 갔거든.” 

 “왜요?” 

 “아파서…….”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누나와 떨어져 지낸다는 그 아이가 자기가 만든 꽃을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선생님 진짜 슬펐겠어요……. 이거 가져가서 동생 주세요”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다른 아이들도 자기가 만든 꽃 중에서 가장 잘 만든 것을 주었다. 

하! 눈가가 시큰해졌다.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나는 동생을 떠나보낸 슬픔을 지난 1년간 꾹꾹 눌러 참았다. 먼저 자식을 보낸 늙은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껏 슬픔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잃은 조카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제부가 나보다 더 슬프겠지 하며 장례식장에조차 마음껏 울지 못했다. 나는 그저 참았다. 이날 동생 이야기를 한 것은 그저 가족과 떨어진 경험을 공유하며 아이들에게 다가서려고 했던 것뿐인데 예상치 못한 위로에 마음이 얼얼했다. 내가 아이들한테 뭔가 해 주려고 왔는데 나는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났고 아직도 그리운 동생을 떠나보낸 슬픔을 위로받았다. 

“고마워” 

간신히 말했다. 아이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하늘이 참 예쁜 하루를 뒤로하고 노을이 물드는 곳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몽글몽글한 감정이 꽉 차오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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