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고통을 느끼나요? 아니면 위안을 느끼나요?
오늘의 주제는 끊임없는 비교의 늪에서
고통 vs 위안에 대한 주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첫 글에서,
소확행에 대한 의미에 대해 sns 속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은 철저히 나의 상황에서 나는 그랬던 걸 표현하고 싶었었다.
작년에 꽤 오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면서부터였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된 일일까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우울증 약을 먹었다.
(임신 준비도 해야 하는데 약을 지속적으로 먹고 있는 내 상황도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약은 평생 먹을 거 아니면 결국 내 마음에 달린 문제지 않을까? 와 같은 생각에 2024년 5월에 약을 끊었고 2024년 6월에 퇴사를 했다.
(뭔가 약을 끊자마자 퇴사를 한 모양새가 된 것 같지만 말이다.)
퇴사 후 한 달은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가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나만 도태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무작정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고
회계자격증반을 신청해서 들었다.
한 달 정도 다니고, 컴퓨터 자격증반도 들었다.
바깥활동을 하니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사람 만나는 건 껄끄러웠다.
그리고 전 회사가 위치하고 있는 이 동네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멀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9월,
서울에서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를 왔다.
낯설고 모든 것이 짜증만 났다.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고,
하루는 버스를 탔는데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타버려서 신랑이 데리러 온 적도 있었다.
(보통은 같은 정류장이면 다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나?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나 보다.)
서울에 살 때는 당연하게 여기던 따릉이, 몇 십 대나 다니는 버스, 어디든 1시간 이내로 다닐 수 있던 것들이
이사 후에는 서울만 나가려고 해도 많게는 2시간까지 걸렸으니 말이다.
이사를 오니,
모든 게 쉽지 않았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그런 나와 함께하는 신랑도
지쳐가는 날과 자책의 날이 이어졌다.
"내가 괜히 여기로 이사오자고 해서, 그냥 서울에 계속 살 걸 그랬나 봐"
이사 후 10월, 1월에 2곳을 잠시 다녔으나
적응하고 정착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입사와 퇴사,
그리고 무한 지원의 반복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을 비우게 된 건
2025년 3월, 두 번째로 입사한 회사를 관두면서였다.
당장 돈 벌려고 아무 곳이나 들어가려고 하는 게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누워서 SNS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비교의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들 잘 사는 것만 같고
인터넷 세상에서는 월 천만 원 수입이 우스웠다.
직장생활 때는 느껴보지 못한 건강보험료 때문에
혼자 집에서 펑펑 울어도 봤다.
오죽하면 이 금액이 맞게 나온 건지 공단에 전화도 해봤으니 말이다.
(지역가입자가 직장가입자보다 비싸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러다가
왜 저런(잘 사는 유형)것만 바라보며 내 신세 한탄만 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내가 지금 당장 집이 없는 것도,
밥을 굶는 것도 아니잖아?
다른 세계에서는 전쟁으로,
또는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사람도 수두룩한데.
위안을 삼았다.
그러다 이내 짜증이 났다.
내가 꿈꾸던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
지나친 비교는 독이지만,
또 반대의 극한 상황을 위안 삼는 것도 못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그 기로 속에서
고통과 위안의 가운데에 서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결국 이 또한 "균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 내가 생각했을 때, 나보다 더 나은 환경이나 능력을 가진이들에 대한 비교는 나에게 나태해지지 않음과 의욕을 심어주고,
2. 혹은 반대 상황의 비교 속에서는 작은 것에, 내가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여러분은 비교 속에서
고통과 위안 중 어떤 감정이 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