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어느날의 골목길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 느껴질 때.

by 귤이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도 어느덧 16년 가까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필름사진 속의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머리속에서 할머니의 얼굴이 아련하게 남아있는 것인지도 헷갈린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주 가끔은 외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집에서 걸어서 약 10분 내외의 거리에 있었던 할머니집은 작은 골목길에 있었다.

기억속에서 나는 11살~12살 정도의 꼬마였고, 그 시절의 나는 외할머니를 많이 좋아했기 때문인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꼭 그녀를 보러 갔었다.

내가 유독 기억하는 그날은, 하늘이 아주 푸르고 높고 아마도 가을이라는 계절의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 댁의 옆집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떡볶이를 먹기위해, 그 좁디 좁은 골목길 한 켠에 돗자리를 펴 두고, 꼬맹이와 할머니 둘은 오순도순 앉아서 떡볶이를 맛나게 먹었다.


요즘 많이 시켜먹는 엽X, 신X 떡볶이들에 비하면 심심하고 자극적인 맛이 하나 없었지만, 옆집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떡볶이는 손주같은 나를 위해 만들어주신 사랑이 가득담긴 떡볶이었던 것 같다.

두 분은 그렇게 친구로서 오순도순 잘 지내셨고, 내가 오면 언제나 반겨주셨다.

하루는 외할머니께서, 하루는 친구할머니께서 돌아가며 음식을 만들어 주셨던 기억이 있다.

이 기억만큼은 짧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10년도 되지 않은 것처럼 생생하다.


작년 이 맘 때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잠시 쉬고 있었기 때문에 평일에 시간이 있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는 지금 동네에서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었기에 산책 할 겸 무작정 예전 동네를 향해 걸었다.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쿰쿰한 냄새가 풍겨왔다. 이 냄새가 그 시절의 나와 할머니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을까. 문득 할머니가 살았던 곳이 지금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조금 더 걸어가니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집은 그대로 있었다. 안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대로 있다는 것에 안도함과 동시에 마음 한켠이 아파오는 것도 같았다.

꼬마는 이제 30대의 한 여성이 되었지만, 할머니들은 더 이상 이 생에 없다.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지금이라도 대문을 두드리면 할머니께서 우리 강아지 하면서 불러주실 것도 같은데, 내가 그리워하는 이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그 사실 하나가 이토록 슬프게 다가올 수 있을까.

그러면서 나는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점점 무섭게 느껴졌다.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 어떤 시간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 믿고 싶지 않은 진리였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은 어디쯤에서 멈추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지난 날은 가끔 그리워하며 또 다시 지금을 소중히 여기는 것만이, 이 지구의 먼지같은 존재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버둥이려나.


1920년대 생이셨던 외할머니의 일생이 참 힘드셨을 거라는 생각도, 30대가 된 지금에서야 많이 생각해보고 있다. 할머니께서 요즘같은 시기에 태어나셨다면 참 좋을텐데...... 만일 환생이라는 것도 있다면 어려운 시기를 사셨던 할머니와 할머니 또래의 모든 할머니들이 다시 태어나서 좋은 시기를 누렸으면 하는, 엉뚱하고도 슬픈 상상도 해본다. 할머니 그 곳에서는 잘 지내시죠?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많이 보고싶어요.(조금 더 오래 전에 돌아가셨던 친할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많이 보고싶다.)


참으로 두서없는 끄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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