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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일이일 Apr 21. 2023

1. 혹시.. 몇 살이세요?

11학번에서 21학번으로

2021년 3월 2일, 나는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11학번이었는데 21로 시작하는 내 학번을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은 아저씨들이나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21년도에는 코로나가 아직 기승을 부릴 때라 학교 수업은 대면과 비대면을 섞어서 했다. 그래서 동기들을 만나서 대화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게 참 다행이었다. 열 살이나 어린 동기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자신이 없었다.

이런 비대면 상황이 계속되던 중 개강총회는 그래도 대면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식사나 술자리는 할 수  없었기에 전공 강의실에서 개강총회를 하게 되었다. 교수님들 1학년 동기들, 학생회 학생들이 참여하는 자리였는데, 나는 바로 전까지 강의가 있었기에 개강총회 시간에 3분 늦었다.


고작 3분 늦었을 뿐이지만 3분 사이에 개강총회는 이미 시작해 있었다. 더군다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뒷문은 잠겨 있어서 앞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어떤 남학생이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몇 살이세요?”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순간 벙쪘다. 물론 내가 동기들보다 열 살이나 많았지만 이 질문을 받았다는 것은 내가 딱 봐도 나이가 많아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슬퍼졌다. 질문한 사람은 3학년 선배였는데 내가 서른 살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서른 살이라고 말했을 때 그 선배의 표정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눈이 커지며 당황한 표정을 숨기려는 노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그 표정이 웃기면서도 조금은 미안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장난으로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그렇게 안 보인다’ 고 말했지만 딱히 의미 없는 말이었다.


나이에 관한 다른 에피소드도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멘토링이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멘토 한 명이 서너 명의 멘티를 맡아서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 조에는 멘토 한 명에 나까지 멘티 3명이 한 조였는데 같이 모여서 밥 먹을 기회가 생겼다. 여기서도 역시 내가 몇 살인지 궁금해했는데 멘토 선배가 내 스무 살 동기 남학생에게 몇 살까지 형이냐고 물었더니 그 동기는


“스물여덟까지는 형이고 그 이상은... 삼촌..일까요?”


라고 말했다. 삼촌.. 음 삼촌... 다시 생각해도 꽤나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아마 이 동기는 스물여덟도 꽤나 높게 쳐준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동기의 말에 나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하긴 열 살 차이면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영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조카는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대학생에게 삼촌 소리를 들으니 스물에게 서른이 얼마나 나이가 많아 보이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스무 살 때는 고작 스물셋, 넷 인 선배들이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고 나보다 훨씬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서른이라니.. 말 다했지.

동시에 내가 서른이라고 말하면 내 동기가 당황할 게 뻔해서, 순간 거짓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금방 들통날 텐데 거짓말하는 게 의미가 없었기에 서른 살이라고 말해줬다.

다행히 그 동기는 나를 형님이라고 불러줬다. 그 사건 이후로 그 친구의 고민도 들어주고 군대에 간 지금도 간혹 연락이 오는 사이가 되었다. 아직도 깍듯하게 형님이라고 불러주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삼촌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렇게 나이가 동기들보다 많으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생긴다. 물론 지나고 나니 재미있는 거지 처음 대학에 왔을 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게 꽤나 걱정이었다.

그러나 3학년이 된 지금은 동기, 선후배들과 꽤나 편하게 지내고 있다. 같이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고양이도 보러 가고, 고민상담, 연애상담, 진로상담도 해준다.

물론 아직도 어색한 사람도 있고 1학년들과는 거의 대화도 안 해봤지만 이건 여느 3학년도 비슷할 것이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좋은 관계들을 형성할 수 있기까지 고수했던 몇 가지 규칙이 있어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1. 함부로 말을 놓지 않는다. - 나이가 많은 사람이 편하게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크나큰 착각이다. 나이가 많다고 반말을 하고 생각 없이 농담을 건네는 사람을 요즘은 꼰대로 취급한다. 그리고 한 번 꼰대로 인식된 사람은 어린 친구들과 ‘인사하는 사이’ 이상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꼰대는 술자리에서 안주로 삼기 딱 좋다. 반대로 어릴수록 더 존중해 주고 예의를 갖추면 그들도 나에게 좋은 인식을 갖는다. 그렇게 먼저 좋은 인식을 심어줘야 나중에 편한 관계가 될 수 있다.


2. 학교생활을 열심히 한다. -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게 학과행사도 전부 참여하고 동아리도 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수업을 잘 들으라는 말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다른 학생들과 친해지기 쉬운 것은 학창 시절을 겪는 모든 사람들에게 통하는 이치이다. 나이가 먹은 만큼 학교생활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지만 그렇다고 수업도 잘 안 들어오고 시험공부도 안 하는 사람과 굳이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친구들에게 또래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배울 점 많은 어른으로 다가가는 것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다.


3. 짓궂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 - 보통 나이 많은 남자 선배들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칭찬이랍시고 외모를 평가한다거나 재밌자고 남학생과 여학생을 엮는 말을 하는 경우인데 이건 정말 최악이다. 절대, 절대 하면 안 된다. 이런 농담들을 뱉는 순간 당신은 정말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나이 많은 아저씨가 될 뿐이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나보다 어린 사람과 대화할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의 세 가지를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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