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과대라니..
동기와 10살 차이, 서른 살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인간관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스무 살, 스물한 살이 뭐가 아쉬워서 서른 살이랑 친해지고 싶겠는가. 그래서 애초에 나는 4년 동안 사람이랑 친해질 생각은 하지 않았고 공부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혼자 수업 듣고, 혼자 밥 먹는 것 모두 자신 있었으니까. 그러나 1학년이 끝나갈 때쯤 되자 자주 마주치는 동기들과는 어느 정도 대화는 하는 사이가 되었다.(물론 아직도 말을 놓지 않았었다.)
그렇게 친해진 몇몇 동기들과 선배들이 2학년 때 과대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1학년 과대는 남자애였고 군대에 가야 했기 때문에 과대 자리가 공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탁과 거절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난 태생부터 수줍음이 많았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내 어릴 적 사진 어디에도 나는 웃고 있지 않다. 매번 엄마, 선생님, 누나의 성화에 못 이겨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 있는 것조차 너무 부끄러워하는 나였다. 크고 나서도 앞에 나서거나 대표가 되기 싫어했다. 그런데 나에게 과대라니. 정말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동기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아직 1학년이었던 21년 12월부터 2학년이 된 22년 3월까지 마주칠 때마다 권유해 왔다. 일일이 세어보지 않았지만 30 번은 넘게 부탁했고, 나는 그만큼 거절했다. 부탁하는 사람도, 거절하는 사람도 지독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졌다. 계속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고, 무엇보다 평생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고 다짐했었기에 내가 자신 없다는 이유만으로 거절하는 것도 마음에 찔렸다. 무엇보다도 내가 계속 거절하니 애들도 ‘다른 거 할 거 없고 공지만 해 달라’고 말했기에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내가 과대를 하겠다고 수락하자마자 이전에는 말해주지 않았던 일들이 생겼다. 과대도 학생회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과잠을 사야 했고(난 스무 살에도 과잠을 사지 않았다.), 모든 학과 행사에 참여해야 했으며, MT도 가야 했고, 매주 목요일에는 회의에도 참석해야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는 하는 일이 적었지만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일들이 있었다. 열 살이나 어린 동생들에게 사기나 당하다니... 나잇값을 못하는 30대인가 보다.
그래도 뭐 그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니까 하는 일이 너무 없어도 문제겠지..? 그리고 한 편으로는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작 서른 명도 안 되는 우리 학년의 대표를 맡는다지만 그것도 자신이 없는 나에게 이런 가벼운 도전은 나의 역량을 조금은 높여주지 않을까?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은 어쩌면 나를 가장 빠르게 성장시키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애들이 그래도 좋게 봐주었기 때문에 과대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싫었으면 학생회를 같이하고 싶지 않았겠지.
나름 이렇게 좋은 점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이런 노력을 해야 할 정도로 과대는 내 성향과 맞지 않는다.)
그래도 덕분에 대화할 일이 없었던 동기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학생회 친구들이나 동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3학년이 된 지금 나는 과대를 더욱 단호히 거절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