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선생님인데 러시아어를 더 많이 써야 하는 건 비밀
러시아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학과 내 조교수로 계신 분이 원장으로 계시는 어학원에서 올린 구인공고를 학과 커뮤니티에서 발견하고는
외국인 지원불가 조항이 없길래 망설임 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마침 한국에서 모아 온 비상금을 사용하고 있을 때였어서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월 수입이 필요했던 상황이라 더욱 일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교사, 강사 같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이 나에게 꼭 맞는 직업은 아니다. 앞으로도 교사 쪽으로의 진로를 희망하지 않는 상황이라 망설여지긴 했지만
유학하면서 강사 파트타임 잡을 구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고, 꼭 진로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조교수님께 간단히 나를 소개하는 메세지와 함께 내가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을 작성하고 메세지를 보냈다.
한국에서 이미 수학학원 보조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고, 러시아 내 영어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한 적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잘 어필이 된 것 같다.
어찌어찌 인터뷰가 잡히고 나는 이력서를 프린트해서 어학원으로 갔다.
조교수분은 러시아인이지만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잘하시는 분이었고, 관광 가이드 자격증을 보유한 공식 가이드 일도 함께 겸업하고 계시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영어 수업을 맡아줄 파트타임 인력이 필요했다고 설명하셨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생애 면접은 고등학교 입시, 대학교 입시 면접, 대학 내 교내활동 면접 등이 전부였기 때문에 잡 인터뷰라는 걸 처음 해보는 거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원장님은 내가 메시지를 보냈을 때 이미 채용을 결정하고 날 인터뷰로 부른 것 같았다.
그렇게 수업 진행방향, 수업 비품 설명, 시급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다음 주에 시범수업을 시작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
내가 가르칠 아이들은 3세에서 7세 사이의 생각보다 아주 어린 아기들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
정말 기본적인 어휘들을 잊지 않게 반복해 주고, 수업마다 정해진 주제에 맞는 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아주 기초적인 영어수업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또한 이 아이들의 집중력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길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나는 55분 정도의 풀타임 수업을 집중력 있게 해나가야 했던 것이다.
사실 이렇게 어린아이들과 교류를 해 본 적이 전무한 상황이라 걱정이 됐다.
또한 원장님은 내가 외국인인 만큼, 러시아어를 수업에서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영어로 소통하길 바라셨다.
그렇게 시범수업 날이 되었고 나는 원장님이 주신 기본 수업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수업을 구성해 갔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너무 다른 변수들이 많았다.
첫 수업이나 긴장도 했는데 어린아이들이기에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신경 써줘야 하는 상황이 나에게는 버겁기도 했던 것 같다.
어찌어찌 수업을 끝내고 느낀 점은…
아이들을 다루는 법을 익혀야겠다! 였다.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멜로디를 활용한다던지, 동작을 정한다던지 어떠한 규칙이 필요했다.
또한 수업 중에 다음 활동으로 넘어갈 때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다음 활동을 세팅하는 동안 이미 아이들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서 쉽게 장난을 치거나 교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어를 안 쓰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전 수업에서 부족했던 부분들을 개선하고 아이들도 나와의 수업이 익숙해지다 보니
점차 수업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외국에서 내 힘으로 돈을 벌어보는 게 처음이라 뿌듯한 것도 컸다!
반년정도 근무를 하다가 일을 그만둔 결정적인 계기는 방학시즌 때문이었다.
여름동안 어학원은 한 달 정도의 방학을 가지기도 하고 나도 마침 그때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한국에 더 오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내 공백으로 어학원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제일 컸고 그때쯤엔 통번역 업무 경험을 쌓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여서
타이밍 좋게 원장님과도 흔쾌하게 대화 후 러시아에서의 첫 직장과 무사히 안녕했다.
러시아에서 나의 첫 직업이었던 만큼 애정과 노력을 듬뿍 담아 노력했고
이젠 내 마음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크게 깨달은 바는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
내가 관심 없고 별로 끌리지 않았던 분야더라도 부딪히고 부족한 부분은 고쳐나가는 과정 자체로 너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이 또 다른 소중한 의미 있는 경험을 가져다주길 희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