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일기 5] 언제부턴가 결과에 집착할 때

겸손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들

by HYOKIM

나의 유학생활에서 정말 감사한 점 중 하나는 내가 공부하고 있는 반이 꽤나 다국적 그룹이라는 것이다.

제각기 다양한 배경, 다른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있다 보면 배울 점이 굉장히 많다. 그것이 참 감사하다.

오늘은 그중 내게 큰 깨달음과 변화를 준 친구들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한다.

(국적을 명시해서 괜한 스테레오타입을 만들고 싶지 않기에 친구들의 출신 국가는 구태여 적지 않으려고 한다.)


한 친구는 항상 수업시간 최소 30분 전에 학교에 도착해 있다. 나도 보통은 수업 시작 10분 전에는 꼭 도착해서 수업을 준비하려고 하는 편인데

한 번도 이 친구보다 일찍 도착해 본 적이 없다. 친구 말로는 오는 길에 촉박해지기 싫어서 미리미리 길을 나선다고 한다. 그렇게 세 번의 학기가 지나는 동안

빠짐없이 일등으로 출석하는 친구를 보면서 저런 마인드라면 어딜 가나 되겠구나… 생각했다.

특히 러시아에서 지내다 보면 내가 아무리 시간을 잘 계획했더라도 변수라는 게 꽤 자주 발생한다.

예컨대 기숙사에서 갑자기 처리할 일이 발생한다거나, 외국인 서류처리에서 갑자기 오피스에 불려 간다거나 등등..

단순히 시간을 잘 지킨다는 것보다 내가 인상 깊게 생각했던 점은 그런 모든 변수들을 유연하게 처리하는 능력이었다.

경상도 출신인 나는 태생부터 굉장히 성격이 급하고 변수가 생기면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다음으로 넘어가는 걸 잘 못한다.

하지만 이 친구는 우선순위가 뭔지 잘 알고 변수가 나타나도 그게 자신의 루틴에 크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여유있게 매니징 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배울만하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생활하려면 이런 유연함이 생각보다 큰 능력이다. 할 일이 쌓일 때마다 심장이 뛰면서 머리가 복잡해지는 나에게는 이런 유연함이 꼭 필요했다.

+ 사실 일찍 도착해서 숨도 돌리고 차분하게 앉아서 준비하다 수업에 들어갈 때 대답이 더 잘되는 건 기분 탓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또 한 친구는 상트에서 내 술친구 중 한 명인데, 이 친구는 사실 속히 우리가 생각하는 “모범생” 타입은 아니다.

학교 수업도 종종 빠지고,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홀연히 사라지는 그런 친구다.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건 스페인어 수업에서였는데, 스페인어반에 외국인 학생이 나와 그 친구밖에 없어서 서로 의지하면서 수업에 참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서로 숙제 답도 공유하고, 놓친 부분을 알려주면서 그렇게 동지 겸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이 친구도 나처럼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클럽도 좋아하며 비슷한 문화권에서 자란 배경 덕에 공통분모도 꽤 있었다.

언어적 장벽도 크게 없었다. 금상첨화!

이 친구와 한 번은 술을 마시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 친구는 20살이 되자마자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벌고, 유학을 준비하며

자신을 아주 주체적으로 가꿀 줄 아는 그런 어른스러운 친구였다. 유학생활 중에도 마찬가지로 통역사, 개인 비즈니스 등의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친구에게 유학은 단순히 외국에서 공부하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삶을 영위하는 법을 배우고, 어떻게 돈을 굴리는지를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우는 차원의 그런 기회였다.

사실 나는 유학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대학생활했던 것처럼 학교 열심히 가고, 과제 열심히 하고, 관광 열심히 하고. 이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었다.

참 어리석었다.

내가 생각한 유학의 기회와 이 친구의 유학이라는 기회는 그 무게와 책임감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도 유학생활 중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최대한 열어보자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영어선생님으로 잠깐 일도 할 수 있었지!)

내가 무심코 그어놓은 내 세상의 마지노선을 이 친구 덕에 넓힐 수 있어서 이 친구에게 두고두고 참 감사하다.

참 멋있는 사람.


수업을 듣다 보면 대답을 나보다 빨리하는 친구(나도 그 정답 알았는데), 어떤 과제든 맨 처음으로 발표해 보겠다고 자원하는 친구, 수업을 쏙쏙 흡수해서 한 학기마다 실력이 눈에 보이게 자라는 친구, 통번역 전공이다 보니 긴장관리를 잘하는 친구 등 어떤 방식으로든 나보다 뛰어난 친구들을 항상 본다. 처음에는 조금 샘도 났다 사실.

왜 나는 저 친구처럼 자신감 있게 툭 못할까, 나는 왜 여유 있게 화자의 말을 듣지 못할까 등 한없이 부족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잘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빨리 파악해서 나한테 흡수시킬 줄 안다는 것!

사실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내 부족한 점을 잘 아는 사람이 결국 빛을 보는 게 아닌가? 부족함에 좌절하고 실패하지만 결국은 성공하는 서사에 우리가 열광하는 것도 사실이잖아!

나는 이제 1등을 하려고, 100점을 받으려고 아등바등하기보다는 그 강박에서 벗어나 나의 부족한 점을 알고, 발전시킬 줄 아는 그런 겸손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나니 누군가를 존경하고 칭찬하기도 쉬워진다.

겸손은 타인의 칭찬을 ‘아니에요..’라고 받는 저자세가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알고 기꺼이 상대를 칭찬하고 인정할 줄 아는 자세다.

유학생활동안 이 겸손을 배울 수 있음에 나는 이미 충분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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