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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Oct 21. 2023

몸도 맘도 가볍지 않게 무겁지 않게

산티아고를 출발하며...

성질 급한 올리브는 산티아고에 가야겠다 맘먹었던 그날, 이것저것 재보지도 않고 배낭부터 덜컥 구매했다. 숨길 수 없는 콩닥콩닥 설렘은 가방을 배달받은 날부터 시작되었다.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빨리 갈 수 있으리란 기대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들이 제대하는 10월, 복학은 내년 3월, 그사이에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나쯤 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고 가족들 모두 동의해 주었다. 다가올 걱정들은 접기로 했다. 가족들 맘 바뀌기 전에 올해 1월 비행기 티켓 예약을 질러버렸다.

 출발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과 두려움도 커졌다. 내가 없는 2주 동안 집도 물고기자리도 정말 괜찮을까?

 아들은 날 닮아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뚝딱뚝딱 새로운 요리도 곧잘 하는 편이니 2주 동안 먹을 식단만 잘 짜둔다면 남편의 식사는 해결될 것이다. 군대에 다녀왔으니 세탁기 돌리는 것도 문제없고, 청소도 늘 아들의 몫이어서 걱정은 한시름 놓인다. 남편의 약도 가끔 나 대신 챙기게 했으니 해결되었다. 하지만 아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거 같아 마음 한쪽이 찡하다. 헤이리마을이 통일동산 관광특구로 지정되기도 했고, 봄가을로 바쁜 계절이라 고민했지만, 동행들의 일정을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없는 주말이 걸리긴 하지만 그동안 문제없이 가게를 이끌어 온 셰프를 믿어보기로 했다.


날짜가 다가오니 나의 산티아고를 응원하는 분들의 선물 세례가 쏟아졌다. 지치지 말고 힘내어 걸으라며 영양제, 혹시 모를 컨디션을 위해 상비 아로마 키트, 촉촉한 입술을 위해 립밤, 어디서나 당당하게 걸을 수 있게 대한민국 마크와 모자, 비에 젖지 않게 판초 우의, 지친 발을 쉬도록 휴족 파스, 긴 머리 휘날리며 걸으라며 머리빗, 맛있는 간식 먹으라며 유로 용돈, 글 쓸 때 도움 되라며 녹음기, 따듯한 식사와 더불어 지치지 않게 웃음 한 보따리와 편안한 시간을 마련해 주는 정다운 사람들이 내겐 생각보다 많았다. 공릉천에서 꿀모닝 식구들의 출정 축하까지 받았으니 이제 잘 걸을 일만 남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앞집 느림보 출판사 대표님과 합창단 지휘자 선생님께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매일 오가며 나와 남편의 느린 산책을 응원하시던 동네 어른들이시다.

 느림보 출판사의 대표님께서는 걸으면서 주의해야 하는 네 가지 조언도 잊지 않으셨다. 첫째, 신발을 신었을 때 뒤꿈치가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신발 끈을 단단히 묶는다. 걷다 보면 신발 끈이 느슨해지면서 공간이 다시 생김으로 반드시 단단히 고쳐 묶을 것!

둘째, 양말이다. 걷다 보면 발에 땀이 나서 축축해지면 물집이 생길 수 있으니 걷다가 쉬는 시간에 갈아 신을 양말은 꺼내기 편한 곳에 넣어두고 반드시 갈아 신을 것! 젖은 양말은 가방에 묶어 마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셋째, 보폭은 반드시 좁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무거운 짐과 긴 거리를 걸으려면 짧은 보폭으로 걸어야 관절에 무리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넷째는 팔은 무조건 심장보다 위에 있어야 하니 가방끈에 손잡이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난 스틱 사용 예정이니 이 부분은 해결되었다.

 내 어깨에 짊어진 가방이 날 힘들게 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로만 챙겨 몸도 맘도 지치지 않는 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책들과 블로그를 보며 메모해 둔 준비물 리스트와 병환님이 보내온 메시지를 확인하며 최종 배낭에 넣어야 할 것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병환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벌써 짐을 다 꾸리고 가방까지 둘러맨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마음이 더 바빠졌다. 리스트에 있는 건 다 짊어지고 가고 싶지만 그러다간 내 어깨가 먼저 주저앉을 것 같아 욕심을 내려두기로 했다. 다시 침착하게 맘을 다스렸다. 침낭, 여벌 옷 3벌, 세면도구, 건식수건, 스틱, 판초우의, 선글라스, 실내화, 휴대용 충전기, 상비약까지 이 정도면 된 걸까?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산티아고 길은 다섯 개 루트가 있다.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 길(Camino Frances)은 총길이 약 780km로 프랑스 남부 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하여 피레네산맥을 넘어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등을 걷는 코스로 보통은 30~35일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두 번째 길은 포르투갈 길(Camino Portugues)은 총길이 약 610km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부터 포르투까지의 구간이 어려워 포르투부터 시작하는 이들이 많으며, 이후 ‘포르투갈 해안 길’을 포함해 산티아고 세 갈래로 길이 나뉜다고 한다. 대게는 25일 정도가 소요되며 일주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포르투갈 길을 걷는 것이 특징이다.

세 번째로는 북쪽 길(Camino del Noeth)은 총길이 약 880km로 굉장히 긴 순례길로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에 위치한 작은 도시 이룬에서 시작해 북쪽 해안가를 따라 산세바스티안, 발비오, 산탄데르, 히혼 등을 지나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다.

네 번째로는 은의 길(Via de la Plata)은 약 1,000km로 스페인 종단길로 순례길 중 제일 길다. 메리다, 카세레스, 살라망카, 아스토르가를 거쳐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코스이며 가장 평온하게 순례길을 걸으며 다양한 자연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걷게 될 프리미티보 코스(Camino Primitivo)는 총길이 약 320km로 우리말로는 ‘원시의 길’로 해석되며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시작해 루고를 거쳐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로 2주에 다녀올 수 있는 길이다. 짧은 길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험한 산지를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난이도 있는 코스이며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는 길로 알려져 있기에 기대감도 더 크다고 한다.     

일정대로 잘 걸을 수 있기를, 나의 큰 쉼표가 또 다른 희망이 되기를 기도하며 일정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1일 차 오비에도 – 비야파녜다 29.6km

2일 차 그라도 – 살라스 18.5km

3일 차 살라스 – 티에노 19.8km

4일 차 티네오 – 폴라데아얀데 26.7m

5일 차 폴라데아얀데 – 라메사 21.8km

6일 차 라메사 – 그란다스테 살리매 15.6km

7일 차 그란다스테 살리매  – 폰사그라다 25.3km

8일 차 폰사그라다 – 오카다보 24.3km

9일 차 오카다보 – 루고 29.6km

10일 차 루고 – 테레이라 26.4km

11일 차 테레이라 – 멜리데 20km

12일 차 멜리데 – 페드로우소 33km

13일 차 페드로우소 – 산티아고 19.3km  

   

큰 쉼표 하나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시간을 내어준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쉽지 않은 길임을 알기에 겸손함을 배우며 걸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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