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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Jan 12. 2021

마틴 에덴

낙원은 어디에?

  ‘마틴 에덴’, ‘조커’의 연기를 신들린 듯 해냈던 호아킨 파닉스를 제치고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루카 마르넬리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탔다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영화인데 전문적인 용어로는 ‘아카이브 푸티지’이라고 하는, 흑백이나 오래된 사진인 듯 한 영상들이 이야기 흐름에 섞이는 편집 방식이 매우 복고적인 향수를 느끼게 한다는 적지 않은 후기들 또한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을 궁금하게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진 것이라고는 어떠한 거친 일이라도 해내는 힘과 주먹, 매력적이고 잘생긴 외모의 ‘마틴’이다. 현재는 배에서 선원으로 일하는 그가 우연히 한 청년을 폭력의 위험으로부터 구해주면서 그 청년 가족의 식사 자리에 초대되고 상류계급의 생활을 직접 보게 된다. 특히 마틴은 그 청년의 누이인 우아하고 지성이 넘치는 엘레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지적 성장에 대한 욕망이 생기고 우연히 그 집에서 읽은 보들레르의 시로 인해 작가로서의 꿈을 꾸게 된다. 따라서 얼핏 보면 이 영화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의 고난 극복기나 지식을 성취하기 위한 가난한 마틴의 분투기 같지만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정치적 배타성과 견고한 계급적 경계에 대한 문제 제시, 한발 더 나아가 보다 나은 삶을 열망하는 인간의 선망과 좌절에 대한 보편적 주제까지를 아우른다. 

  모름지기 좋은 영화란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공동의 보편적 문제까지 아우르는 확장의 힘을 가진 것이라 한다. 이런 영화적 힘에 ‘마틴 에덴’은 충실하다. 영화 주제의 보편성은 영화의 타이틀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우선 ‘마틴’이라는 이름은 다른 서구적 이름에 비해 비교적 평범하고 친근한 호명이며 ‘에덴’은 모두들 선망하는 궁극적 행복의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낙원’이라는 의미의 ‘에덴’이 무색하게 현재 마틴의 삶은 그의 꿈이 그저 꿈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듯 거칠고 가난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궁색한 살림을 꾸려가던 누나의 집에 얹혀 살던 그는 어느 날 그에 대한 매형의 조롱과 무시에 화가 나서 누나의 집을 박차고 나와 제법 큰 철공소 인부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 또한 힘든 노동에 적은 임금, 주인의 거칠고 강압적인 태도로 인해 친구와 한바탕 그를 두들겨 패주고 자신들이 한 노동만큼의 돈을 빼앗듯이 거머쥐고 그곳을 떠나게 된다. 철공소마저 뛰쳐나온 이후 마틴은 자신이 가진 돈을 몽땅 털어서 구한 낡은 타자기를 들고 무작정 어디론가 향하던 중 우연히 기차 안에서 두 아이를 둔 미망인인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성서적으로 ‘마리아’라는 이름이 순수한 성녀를 상징하듯 이 미망인은 자신도 별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인데도 아무런 조건 없이 불쌍한 마틴에게 마침 비어있던 자기 집의 방을 내어준다. 덕분에 마틴은 작가의 꿈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그의 글은 계속 반송이 되고 삶은 곤궁과 절망으로 무너져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차 마침내 그의 글이 한 출판사에서 발간되게 된다. 

  비록 천한 노동자 출신이지만 유명 작가로서 발돋음한 마틴의 성공은 그의 열정과 노력의 결과이다. 보들레르를 좋아한 만큼 예술적인 감성이 풍부한 주인공은 엘레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가속도가 붙은 지적 성장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다독을 한다. 그 중에 읽은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정치적으로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선박 노동자 출신이었던 그가 얻은 엄청난 예술적 성취와 부 그리고 점차 틈이 벌어지는 정치적 이념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마틴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결국 마틴은 상류 사회를 선망했지만 상류사회의 오만과 위선에 좌절하고 글을 통해 세상의 힘에 맞서려 했지만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의 집단적 광기에 환멸을 느끼고 피폐해 진다.

  삶의 의욕을 잃은 마틴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겠다는 엘레나의 마음도 거절하고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고 보살핀 자신과 비슷한 계층의 마르게티타도 떠나버리면서 홀로 남게 된다. 이런 그를 딱하게 여긴 마리아가 다시 예전의 그로 돌아오라고 간절히 말하지만 그것도 소용없이 그의 정신세계는 계속 나락으로 떨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광기에 가까운 정신 상태가 된 주인공이 바다로 뛰어들어 어디론가 힘겹게 헤엄쳐 나가는 장면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에덴에 도달하기를 선망했지만 어디에서도 자신이 설 곳을 찾지 못하고 끝내는 표류하게 된 마틴의 실낙원에 관한 비극적 서사이다. 계급을 뛰어넘어 사랑을 얻기 위해 그리고 정당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얻기 위해 펜 하나로 버틴 힘겨운 싸움에서 마틴의 힘은 소진된다. ‘펜은 칼의 힘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칼의 힘이 더 강한 척박한 현실에서 마틴의 에덴은 칼에 맞서고자 애쓰고 열정이 빛나던 시간들 끝에 사위어간다. 결국 우리이기도 한 ‘마틴’의 에덴은 꿈꾸고 이루고자 했던 그 순간들 속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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