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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Jan 13. 2021

69세: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아파도 살아있으니 괜찮아

  

  2017년 미국에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로 촉발된 미투(Me Too) 운동이 우리나라로 확산되면서 그동안 침묵되어왔던 성폭력으로 인한 여성의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사회적 문제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이 사회적 이슈에서 정작 사각지대에 숨어 있는 일반 여성들의 문제는 여전히 관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유명 연출자, 시인, 배우가 을의 위치에 있는 여성들을 성폭력 했다는 이야기들은 사회적인 공분을 자극하고 이슈화시키는데 효과적이긴 했지만 일면 셀러브리티에 대한 흥미를 가속화시키는 바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 ‘69세’는 이러한 사회적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빈곤하고 나이든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인 ‘69세’는 단지 ‘노인’을 함축하는 환유일까? 일부의 논점은 성적 은유를 암시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말초적인 성적 관점보다 십진법에서 ‘9’라는 숫자가 주는 어떤 과도기적 불안함 혹은 젊음, 중년, 노년을 구분하는 일반적 변곡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청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20대에서 사회적 책임감이 얹혀 진다고 볼 수 있는 30대로 넘어가는 29세 간호 보조사 남성이 초로를 넘어 적극적 노화에 들어서기 시작한 69세 여성을 성폭행한다. 

  얼핏 보자면 이 사건은 납득이 쉽지 않은 독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녀의 이야기는 고발을 하려고 찾은 경찰서의 형사들조차도 킥킥대는 한낱 가십거리 정도나 노인성 치매 징후로 취급한다. 심지어 같은 여성들조차 도움을 청하는 그녀의 고백에 뒷걸음친다. 그럼에도 여성은 수치심을 무릅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묻어놓지 않기로 한다. 여인의 고백은 자신이 요양사로 돌보다가 동거하게 된 ‘동인’이라는 한 노시인에게 이야기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시인은 여성이 당한 성폭력에 분노하여 가해자인 젊은이가 벌을 받을 수 있도록 여성과 함께 경찰서를 찾는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여성에게 이차적 수치심을 주거나 냉담 혹은 냉소이며 피해자를 보호해야할 법적 제도는 개연성 부족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녀의 고발을 기각한다. 그러나 여성은 여기서 물러서거나 다시 숨어버리지 않는다. 

  보통 우리는 아픔으로 힘들 때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여성은 죽은 듯이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세상에 내놓기로 한다. 아마 이 여성도 가해자인 젊은 남성에 의해 눌렸던 손목 상처의 흔적이 지워져가듯이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침묵하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상처를 숨기면 최소한 그녀에게 가해지는 주변의 냉소와 편견으로 인한 이차적 상처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여성은 남성의 완력에 눌렸던 손으로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수많은 페이지로 복사를 해서 자신이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다세대주택 옥상에 올라가 공중에 날린다. 

  이 여성의 품위는 노인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적 제도나 타인들의 무관심에 주저앉지 않는다는 주체로서의 힘에 있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노인들을 잊고 있는 사회적 무관심을 일깨운다. 결국 치유는 잊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받아들이는 수용으로부터 시작한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녀는 더 이상 그늘에 숨거나 수영장 물밑에서 혼자이거나 조용히 침묵하지 않는다. 이 여성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어서 최소한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의 무관심을 반성하게 한다. 또한 여인의 용기는 숨거나 주저앉으려고 했던 또 다른 노인들을 일으켜 세우는 응원의 힘으로 확장된다. 

  이 증거는 영화의 말미에 나타난다. 여인이 떠나고 다시 혼자된 노시인 ‘동인’은 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시인은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그동안 선인장 받침대가 되어 묻혀있던 자신의 시집을 꺼내 햇빛 아래서 먼지를 턴다. 공중에 날리는 수십 장의 고발문처럼 나이듦이나 상처는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날개가 녹아 추락하지만 빛이 비추고 바람이 부는 현실에 살고 있는 69세 여성은 상처가 낳은 날개로 비상하는 신화를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 고치를 스스로 뚫고 나와야 날 수 있는 나비처럼 우리도 갇힌 공간을 스스로 뚫고 나올 때 스스로 날 수 있는 근력이 생기는 자연의 순리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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