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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Jan 13. 2021

카일라스 가는길:지팡이 다이어리

간절함이 낳는 기적의 날들 

  


‘60대 이상이 4명중 1명’, 어느 날 눈에 들어온 신문의 기사이다. 고령화 사회라는 막연한 개념이 숫자 비율로 보니 정말 실감이 났다. 그 한 명중에 하나인 나도 올해로 60대 중반을 넘어선다. 누구나 그렇듯이 활기차게 오고가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나 싶게 아득하기도 하다가 또 한편 바로 엊그제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나이듦이 삶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오히려 남과의 비교나 성취의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답게 편안히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세월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즈음에 해가 지는 티베트 설산을 배경으로 손끝, 머리끝 까지 빨간 파커를 덮어 쓰고 두 손을 모으고 오롯이 앉아 간절히 기도를 하는 한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영화 포스터가 주는 신비한 느낌에 영화관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노년기에 들어선 여성이 무슨 연유로 저리도 평온한 모습으로 이국적인 자연 속에 있는지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고 독립 다큐 영화에 대한 관심이나 홍보가 적은 탓인지 30여석의 좌석에 관객은 고작 다섯 명이었다. 영화관 분위기 그 자체가 고요와 사색을 전하는 영화적 이미지의 일부 인 듯 했다.

  90분에 걸친 다큐는 불교에서는 수미산과 같은 성지라 일컬어지는 카일라스를 가기위해 17000km에 달하는 험난한 오지 여행을 이겨낸 어머니의 여정을 아들인 감독이 찍고 편집한 것이었다. 장르로 보자면 이 영화는 장소의 이동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진행되고 이 여정을 통해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로드 무비의 한 전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독특한 것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체 게바라 같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85세 시골 할머니가 주인공이라는 것이었다. 

  경상도 봉화를 출발해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바이칼 호수, 고비 사막, 파미르 고원, 알타이산맥, 거친 환경의 몽고를 지나고 고산인 히말라야 지대를 거쳐 해발 오천 미터에 달하는 설산 카일라스까지의 혹독한 여정을 할머니는 이겨냈다. 85살의 나이가 무색한 근력과 건강도 놀라웠지만 젊은이들도 이겨내기 힘든 거친 자연과 고산증, 추위나 비바람이 수시로 바뀌는 극한의 오지를 할머니는 여정 내내 감동하고 행복해하기도 하고 때로 후회도 하고 체력 고갈로 끙끙 앓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할머니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오지 마을 아이들과 사탕을 나눠먹으면서 작은 봉화 마을 바깥에 있는 넓디넓은 세상과 만나는 것에 신이 나있는 듯 웃음을 날린다. 

  이렇게 평범해 보이지만 할머니의 출신 배경은 특별하다. 당시 대학을 졸업하였다는 것, 보건소에서 일을 하고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치른 할머니의 과거는 전근대적이고 빈곤했던 50년대 한국의 상황으로 볼 때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행운도 잠시, 37세에 돌연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이 둘을 끼워내야 했던 삶의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영혼은 맑고 순수했으며 그러기에 낯선 세상과의 만남에 늘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듯이 할머니는 카일라스의 목전에서도 눈과 빙판으로 인해 놓친 지팡이를 포기하지 않고 얼음 위를 엉금엉금 기어가서 기어이 다시 잡는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자신의 삶이 별다른 고통 없이 행복했음을 감사하고 부처님께는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달라고 기원한다. 결국 할머니는 설산이 보이는 장소에 도달했고 그곳에서 고통 받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배고프지 않기를 기도한다. 할머니의 기도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력을 가진 모든 자연까지를 아우른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피어있는 꽃 한 송이,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긴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면서 몸의 껍질이 상처처럼 쩍쩍 갈라진 고목, 추운 사막에 서있는 망부석 같은 바위를 보면서 그것들이 가진 생명성에 말을 거는 할머니의 모습은 살아있는 부처의 현신이기도 했다.


  마침내 부처님이 모셔진 영산에 도달했지만 할머니는 다시 등에 무거운 배낭을 지고 여전히 지팡이를 세 번째 다리로 삼아 길을 걷는다. 할머니의 뒷모습은 희망에 대한 간절함과 그곳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죽을 날까지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보여준다. 그런 할머니의 여정은 열정과 꿈을 향해 달렸던 젊은 영웅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보다 더욱 커다란 삶을 이야기하는 지팡이 다이어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는 내가 진정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내가 두 발을 내디디고 있는가를 질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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