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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Jan 13. 2021

룸:문이 있으면 룸이 아니야

코로나 블루? 문이 있잖아요

 “문이 있으면 룸이 아니야”. 사이코패스적인 한 남성에 의해 납치된 한 여성이, 갇혀 있으면서 낳아 키운 어린 잭이 가까스로 탈출한 후에 마지막으로 찾아 온 작은 창고 앞에서 하는 말이다. 편의상 ‘창고’라고는 했지만 이것은 인적이 드문 외딴 곳에서 허물어져가고 있는 쓰레기 더미에 가까운 작은 공간이었다. 앞서 잭이 한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룸을 나가본 적이 없는 잭에게 룸은 비록 문이 있어도 그 문은 내가 스스로 들어오고 나가는 역할이 없는 죽은 문이었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문은 아이와 엄마가 생명을 유지할 만한 최소한의 음식을 들여오고 또 엄마를 성폭행하고 나서 다시 그들을 감금하기 위해 밖에서 잠그는 남성의 절대적 권력과 폭력의 매개였던 것이다. 그러나 탈출로 인해 안과 밖의 경계를 알게 된 잭에게 문이란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통로가 됨으로써 이제 룸은 언제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된 것이다.

 ‘룸’이라는 영화는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그러나 감독 레니 에이브러햄슨은 이 사건을 폭력이나 분노보다는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는 심리적 내면의 공포와 모자의 절대적 친밀감에 집중한다. 또한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를 얻었지만 역설적으로 모자를 폐쇄의 공간에서 견디게 해주었던 친밀감의 균열을 보여준다. 즉 공간적 탈출은 자유의 획득을 선물하지만 대신 이제 스스로 세상과 맞부딪히면서 삶을 일구어 나가야 하는 실존적 문제를 안기게 되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전염력을 가진 코로나의 공포로 공간적 단절을 경험하면서 이 영화를 떠올려본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비록 우리는 갇혀있지만 주먹을 휘두르는 물리적, 성적 폭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전염력에 의한 것이며 더구나 신문이나 텔레비전, 컴퓨터 같은 다양한 ‘문’이 있으니 잭의 말처럼 우리의 ‘룸’은 룸이 아니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록 각자의 ‘룸’에 제한되고는 있지만 우리가 이전에 경험했던 다양한 것들 그리고 우리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문’을 통해서나마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전염력에 날개를 달아준 샘이 되는 문명은 코로나로 인한 단절을 극복할 문을 우리에게 남기는 아량을 우리에게 베풀어주니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면, 태어나면서부터 룸에 갇혀 자랐던 잭에게 그 방안에 있는 세면대, 화분, 장난감, 욕조 등은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세상의 전부가 된다. 잭은 방 천장에 조그마하게 나있는 유리 덧창으로  햇빛과 떨어지는 빗물, 나뭇잎, 서리 등의 변화를 보지만 그것이 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잭에게 바깥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작은 텔레비전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잭에게 텔레비전으로 보는 세계는 가짜이며 자신의 작은 방에서 매일 보거나 접촉하는 것만이 진짜가 된다. 그런 잭에게 엄마는 “그것은 있지만 단지 네가 보지 못할 뿐 이란다”라고 고집스럽게 설명하지만 잭이 그것을 알아 들을 리 없다. 잭에게 더 큰 문제는 공간적 갇힘으로 인해 실제 세상을 느낄 수 없는 정신적 갇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간에서 잭의 엄마는 바깥세상으로 잭을 탈출시키려 한다. 이때 이 문은 엄마에게 유일한 열린 가능성이 된다.

  결국 모자의 목숨을 건 엄마의 기지에 의해 잭은 그 문을 통해 탈출에 성공한다. 영화 종반부에서 잭은 ‘룸’에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넨다. 어릴 적 자신의 모든 세계였으나 이제 그 룸은 점차 흐려지는 기억속의 세계가 될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작고 비참했던 ‘룸’에서 지극한 사랑과 밀착감으로 감금 상태를 견뎌냈던 엄마 조우와 잭의 강력한 연대감은 들린다. 심지어 조우는 오랜만에 돌아온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서 불안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다행히 잭이 화장실 문을 열고 엄마를 발견함으로써 생명을 구하게 된다.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각자의 룸에 갇혀있는 즈음,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코로나 이후 다시 대면하게 되는 세상은 해방의 자유만이 빛나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다시 이전처럼 역동적인 혼란과 충돌, 넘어짐과 일어섬이 반복되는 일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문을 스스로 열고 또 다른 세상과 만나는 매일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갇힘의 역설. 그러기에 위기는 기회라는 평범한 말처럼 코로나는 위기가 아니라 매일 수많은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정신적 성장으로 나아가는 성장의 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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