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제작이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페미니즘 로드무비로서 확고한 고전의 자리를 가진다. 이는 나라와 문화적 배경만 달랐을 뿐 현재에도 남성들의 폭력에 정당한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내몰리는 여성들의 험난한 현실뿐만 아니라 그에 맞서는 여성의 주체적 선택에 대한 감동 때문이기도 하다.
<델마와 루이스>의 시작은 두 여성이 각자 문제가 있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경쾌하고 밝다. 그도 그럴것이 친한 친구와 모처럼 만에 여행길을 나서기 때문이다.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일박이일에 불과한 짧은 여행길임에도 식당일에 지친 루이스와 가부장적인 남편이 무서워 말 대신 작은 메모를 남기고 집을 떠난 델마는 해방감과 흥분으로 들떠 있다. 그러나 캠핑도 하고 낚시도 할 거라는 야심 찬 희망에 부푼 여행은 곧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경찰에 쫓기는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아내를 집안의 장식품처럼 붙잡아 두는 강압적 남편 때문에 처음으로 집을 떠난 델마는 마음이 들뜬 나머지 여행길 중간에 들른 작은 마을의 술집에서 한 건달이 권하는 술을 거푸 마셔 취한 채로 놀게 된다. 루이스가 위기에 빠진 델마를 구해내지만 남자가 내뱉는 성적 희롱에 순간 화가나 총을 쏘고 남자는 죽게 된다. 겁을 먹은 델마가 경찰서에 가자고 했지만 루이스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술집에서 흐트러진 자세로 술을 먹고 남자랑 춤을 추며 헤픈 모습을 보였던 델마의 결백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목격자나 증거 또한 없으니 법적으로도 보호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루이스는 알았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살인범이 되어버린 루이스와 델마는 국경을 넘어 멕시코를 향해 간다. 그러나 그녀들의 행로는 계속 방해하는 남자들로 인해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간다. 그녀들의 탈주 비용으로 루이스의 남자 친구가 보내준 돈 6천 7백불을 멋지게 생긴 사내가 밤사이 훔쳐 도망쳐 그녀들의 곤경은 점입가경이 된다.
위기가 기회라고 했던가? 소심하기 그지 없었던 델마가 여전사로 변한다. 자기 변화이다. 지금까지 억눌려 왔던 내면의 자기 자신의 발견에 한껏 고양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리더의 역할을 하던 루이스와 그저 철없는 사고뭉치에 불과했던 델마의 역할마져도 뒤바뀌게 된다. 델마는 근처 상점에 들러 총으로 손님과 주인을 위협하고는 점잖게 6천 7백불을 갈취해 나온다. 딱 도둑놈에게 털린 돈만큼이다 이 장면은 상점 카메라에 모두 찍히게 되고 그것을 본 한 형사가 두 여성이 남성들의 폭력과 성적 희롱, 사기꾼의 거짓말로 인한 희생자라는 것을 처음부터 짐작하고는 어떻게든 두 여성을 구하고자 한다.
그녀들을 가로막는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멕시코로 달리던 중 속도위반으로 쫒아온 경찰관을 델마는 총으로 위협하고 경찰을 경찰차 트렁크에 가두고 달아나던 델마와 루이스는 자신들을 희롱하며 달리던 운전사의 덤프 트럭을 폭파시킨다. 그야말로 아드레날인이 치솟은 델마는 남편과의 희망이 없었던 삶을 떠올리며 이래도 저래도 엉망이 됐을 것이니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
결국 신나는 음악과 함께 수십대의 경찰차들과 그랜드 캐년 협곡 사이의 공중을 도는 헬리콥터가 그녀들이 모는 1966년 모델 초록색 T-버드 ’선더버드‘(Thunder Bird)를 뒤쪽는 격추신이 화면을 압도한다. 모래 바람이 일도록 속도를 가하며 추격하는 경찰차들과 장애물들을 부수고 뛰어넘고 옆길로 접어드는 선더버드의 탈출신은 지금까지도 영웅적 남성이 주인공인 장르의 클리셰를 뒤집는 여성 버드 무비의 전설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루이스에게 새로운 게 우릴 기다리고 있는거 맞지? 그러니 “우리 잡히지 말자”, “Let’s keep going”이라는 델마의 말대로 루이스는 힘차게 선더버드의 엑셀을 밟는다. 살건지 죽을건지는 우리가 결정하자는 결의를 마치고 델마와 루이스는 두 손을 꼭 잡는다. 그 순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같았던 막다른 절벽에서 거대한 그랜드 케년의 낭떠러지 공간으로 썬더버드가 나른다. 생의 마지막 순간 드디어 그녀들은 그야말로 신화적 푸른 새가 되어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의 풍경 속으로 자유롭게 비상한다. 스냅샷같은 정지 화면으로 끝나는 이 마지막 장면은 그녀들을 내몰았던 비열한 세상으로부터 비상을 선택한 담대한 아름다움이 빛나던 순간이었다. 그녀들에게 죽음보다 더 비참한 건 억울한 오명이 낙인찍힌 수치심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