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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Oct 12. 2023

진실은 통로 어디쯤에 있을까?

<인 디 아일>

  <인 디 아일>은 독일 통일의 그늘이 있는 밀려난 사람들의 서성임을 들여다본다. 빛과 어둠이 하나이듯이 경계 허물기는 축제였지만 누구에게는 뿌리내렸던 자리가 흔들리는 혼란의 시작이었다. 영화가 시작하자 정적과 어둠 속에 잠긴 창고형 대형 마트 매장을 카메라의 시선이 죽 훑는다. 작게 시작한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볼륨이 점점 커지면서 매장에 서서히 빛이 들어오고 마침내 힘찬 음악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매장의 활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크리스티안(프란츠 로고스키)은 오늘이 첫 출근날이다. 그리곤 하루의 일이 끝나는 시간 매장 자체 내 방송에선 ”밤의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마트 책임자 위르겐(마티아스 브레너)의 멘트와 함께 브라암스의 ’G선상의 아리아‘가 부드럽게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기계적 시스템이 지배하는 일터가 왈츠의 선율처럼 경쾌하고 밝을까? 그들의 밤은 브라암스의 음악처럼 편안한 안식의 시간이 될까? 어느 날 크리스티안에게 복잡한 매장의 배열과 진열, 그 사이를 움직이는 지게차 일을 가르치던 선임 브루노가 진열 선반 사이로 나이든 여성과 농담을 나누던 중, 선문답처럼 신참 크리스티안에게 이야기한다. “진실은 아마도 그 사이에 있겠지”라고. 그들의 삶은 수직과 수평의 공간, 통로와 통로 사이, 아침과 저녁, 캔디류 팀과 음료부 팀 사이의 신경전(모두 지게차가 필요하지만 한정된 지게차로 인해 서로 선점권을 주장한다), 일터와 집 그리고 적응과 부적응 사이에서 유영한다.

  일터가 낯선 크리스티안이지만 고참 브루노의 도움과 동료들의 응원에 힘있어 차츰 지게차 운전도 익숙해지고 친절한 식품부 여성 직원에게는 수십가지 종류의 파스타 이름을 배우는 성장의 터가 된다. 더욱이 멀리서 보자마자 한눈에 반한 캔디 담당팀 마리온(산드라 휠러)으로 인해 일터는 사랑의 공간이 된다. 크리스티안의 마음을 눈치챈 브루노는 마리온의 생일을 넌지시 크리스티안에게 가르쳐주었다. 크리스티안은 유효 기간이 지나면 폐기가 철저한 규칙인 그곳에서 버리는 쵸코파이 하나를 슬쩍 빼내서 그 위에 촛불을 하나를 꽂아 놓고 마리안의 생일을 축하한다. 그러나 결혼한 마리온과의 사랑도 짧은 행복으로 끝났다. 통로에서 사랑도 얻지만 그 통로에서 상실의 아픔도 겪는다. 

  밝은 아침이 있으면 어두운 저녁이 있듯이 크리스티안이 의지했던 브루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다감했던 그가 그토록 깊은 외로움과 우울을 견디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한 사람의 비극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행운이 되는 삶의 모순이 이 마트의 통로에서도 일어난다. 크리스티안은 브루노의 자리를 대신 이어받아 승진까지 하게 된다. 그때 마리온이 크리스티안이 능숙하게 운전하고 있는 지게차 한 코너에 올라타고는 지게차의 포크를 최대한 매장의 높은 천장끝까지 올려달라고 부탁한다. 브르노가 자신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 하면서. 최대한 올린 포크가 내려오면서 벨트와 부딛치며 내는 마찰음이 파도 소리를 닮았다고 브루노가 말했었다고. 크리스티안도 집중해서 천천히 내려오는 포크의 소리를 들으니 정말 ‘쏴아’하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브루노는 견딜 수 없도록 답답한 대형마트의 공간 안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자유를 지게차에서 들었다.

  영화의 종반부, 높은 고공에서 카메라가 롱쇼트로 마트의 통로 사이를 유영하듯 움직인다.  영화가 시작했던 시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일상은 그렇게 반복의 과정이니까. 한 사람의 죽음이 있었기나 한 듯이 기계와 사람들이 사각의 방과 통로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는 풍경이 한 눈에 잡힌다. 크리스티안에게 넘겨진 브루노의 지게차에 매달았던 낡은 토끼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폐기된 빵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장식했던 버려진 소시지가 남은 사람들의 웃음과 온기가 되었듯이 브루노는 남견진 사람들이 삶을 이어가게 하는 유령이 되어 그들과 함께 통로 사이를 유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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