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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Oct 12. 2023

흙과 땀에 보내는 헌사

<알카라스의  여름>

 한쪽 알이 빠진 선글라스를 쓰고 고물차에 앉은 장난꾸러기들이 찍힌 포스터를 보고 순수한 동심과 전원생활을 담은 목가적인 영화를 기대했던 나의 예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서 천방지축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과 끝없이 싱그럽게 열린 복숭아의 수확에 정신없는 대가족 여름의 뜨거운 에너지는 모두 생명력으로 빛났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이 될 가족의 여름 수확이었고 아이들은 모든 것이 놀이터인 자연을 떠밀리듯이 떠나야 한다. 알라카스에서 복숭아 농장을 하던 할아버지와 삼촌에 대한 기억이 담긴 자전적인 영화는 감독의 어린 시절의 향수이자 그 땅을 지키던 가족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그 시절의 풍경, 그 맛, 그 사람들에게 바치는 감독의 존경과 사랑은 영화 속 어린 손녀 이리스(아이네트 주누)가 흥얼거리는 노래에 담긴다.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끝내고 모든 가족이 모여있는 소박한 저녁, 코믹한 분장을 한 아이가 할아버지를 위해 노래(“난 내 목소리를 뽐내려 하지 않아요. 난 내 땅을 위해 노래해요. 단단한 땅 나의 사랑...”)를 한다. 땅과 친구와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를 담은 노래가 맑은 구슬처럼 흘러나오자 멜로디를 맞춘 가족의 합창과 함께 할아버지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알라카스는 스페인 카탈루나의 한 농촌 이름이다. 이곳 농장에 여름이면 가족의 성(姓)조차도 ‘솔레’(태양)인 3대가 복숭아 수확을 위해 모두 모인다. 한 여름에 익은 색깔과 모양이 각양각색인 복숭아가 바구니에 담기고 나무궤짝에서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도 생생하며 아이들이 두 손을 바치고 서리한 깨진 수박물을 하늘로 목을 젖혀 넘길 때 여름날의 단맛은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한다. 그러나 그 소리와 맛은 곧 농사를 헤친다고 토끼에게 쏘아대는 아버지의 총소리와 평온한 가족의 저녁과 고요한 어둠이 깔린 밭으로 육박해 들어오는 거친 포크레인의 소리에 맥없이 스러진다. 복숭아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고 그 땅에 태양광 패널을 짓겠다는 땅 주인의 계획 때문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스페인 내전 당시 할아버지가 그 땅의 주인이었던 귀족 파뇰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준 대가로 구두로 받은 땅은 계약서라는 문서를 들이대는 후손에 의해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 자리에 들어서는 건 유령처럼 검은 태양광 전지판들이다. 대신 주인이 아버지 키메트(조르디 푸홀 돌체트)에게 제시한 조건은 태양광 패널판의 관리인이다. 아버지는 “난 농부지 잡역부가 아니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지만 그에게 대안은 막막할 뿐이다.

 아버지가 죽인 불쌍한 토끼들은 결국 기계와 자본 그리고 계약서라는 규칙에 밀려날 자신의 모습이었다. 여간해서 가족들에게 힘듦과 눈물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딱 한번 영화에서 운다. 아들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에 화가나 마구 운전하다 트럭 뒤의 수확한 복숭아들이 나무 궤짝에서 주르르 땅으로 굴러 떨어질 때이다. 아무리 애써도 지킬 수 없는 가족과 땅. 대책 없이 굴러떨어지는 한알 한알의 복숭아들이 서러워서 운다.

  농부들이 헐값에 구매하고 큰 이익을 얻는 대형마트 유리창에 짓이긴 복숭아를 던져대고 목이 터져라 억울한 사연을 외쳐보지만 햇빛과 땀을 먹고 자란 붉은 복숭아의 속살이 마트 유리창에 붉은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무너지는 1차 산업, 사막화 되어가는 땅, 빼앗긴 일용직 노동자들의 노동 그리고 순환의 고리가 끊긴 건강한 먹거리와 생태의 위기는 경제성장에 몰입한 성취와 진보의 욕망이 만들어낸 그림자이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문제는 밀고 들어오는 세상의 압력에 맞서야 할 가족의 균열이다. 이제 삶의 끝자락에 있는 할아버지는 저물어가는 시대를 일으켜 세울 힘이 없고 가장의 책임감을 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받쳐 복숭아를 지킨 아버지도 시대를 이길 힘이 소진되어간다. 그렇지만 그도 세상의 변화를 모르지 않으니 모든 부모가 다 그렇듯 자신의 아들만큼은 공부를 해서 세상의 변화에 걸맞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농장을 사랑하는 아들 로제르(알베르트 보쉬)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복숭아밭 한 귀퉁이에 돈이 될만한 대마초를 키우다 아버지와 충돌한다.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딸 마리오나(세니아 로제트)도 맘껏 젊은 청춘을 즐길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알고 있다. 맞서 무너지는 것보다 그래도 살아남으려 태양광 사업에 타협한 고모의 선택을 비난할 수도 없다.   

 흔들리는 남성들을 다잡는 것은 부엌과 농장을 종횡무진 오가며 가정을 지키는 어머니이다. 그러던 그녀도 아버지처럼 한번 강하고 간결하게 마음을 내보인다. 남편과 아들의 기싸움을 보고 두 남자의 뺨을 차례로 때린 것이다. 서로 하나가 되도 시원치 않을 위기에서 등 돌린 부자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세상에 일어나는 근심과 위기를 모르는 채 마냥 이 여름이 즐겁고 신이 난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복숭아밭 옆의 메마르고 건조한 들판이 롱테이크 어웨이로 화면에 담기는 것은 서서히 사라질 것들에 대한 한탄보다 지나 간 것들에 대한 향수이다. 그래서 <알라스카의 여름>은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과 사라져 버릴 것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그럼에도 살아냈고 살고 살아내는 지상의 모든 생명에 바치는 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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