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라이프>
<스틸라이프>의 원제인 ‘삼협호인’(三峽好人)에 대해 감독 지아징거는 “단순히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삶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이라고 피력했다. 2002년 개혁 바람이 몰아치던 중국이 배경인 영화는 마지막 장면 곧 철거될 오래된 시멘트 건물 사이 공중에서 조심스레 외줄을 타는 사람의 검은 실루엣으로 끝난다. 또한 사전적으로 ‘정물화’ 또는 ‘여전히 삶’의 의미를 함의한 <스틸 라이프>는 거칠게 파괴되고 변방으로 내쳐지더라도 삶에 순응하며 묵묵히 걸어나가는 민중의 생명력을 담담하게 응시한다. 그래서 <스틸라이프>는 그들에게 보내는 묵묵한 헌사이고 힘없이 사라져 곧 잃어버릴 옛것들에 대한 근심이 깔려있다.
<스틸 라이프>의 노동자들은 목전에 다그친 가난에 한탄이나 눈물은 사치인 듯 민중들은 한 푼의 돈이라도 벌기 위해 등에 걸머진 몽둥이로 자기가 살던 터를 스스로 부순다. 힘에 겨운 노동에 지친 몸을 지탱시키는 것은 국수 한 그릇이요 그나마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정은 값싼 술과 담배, 차 그리고 한 알의 사탕이지만 그들만의 이런 작은 것들의 나눔이 삶을 지탱하는 위로가 된다.
2006년, 2천 년의 역사가 간직된 산샤에도 개혁의 물결이 분다. 산샤댐의 건설은 오랜 세월 민중들의 터전이었던 자연과 집을 수몰시키고 오래되고 낡은 건물은 이천 년 역사를 뒤로한 채 폐허로 변하고 그 자리에는 현대식 위용을 자랑하듯 고층 빌딩들이 들어선다. 이곳에 후줄근한 런닝을 입고 허름한 가방 하나를 둘러멘 산밍(한산밍)이 배를 타고 이곳에 왔다. 16년 전 산샤(三峽)로 가출한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구겨진 담배 갑 껍질에 쓰여진 주소 하나만을 달랑 들고 낡은 여객선을 타고 산샤에 도착한다. 이렇게 막막한 외지에 남은 산밍에게 다가간 것은 마크였다. 마크는 떠돌며 막노동을 하지만 멋진 홍콩 배우?를 흉내내곤 하던 쾌활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탕 한 알을 산밍에게 남기고 불량배 무리에 끼어간 마크는 주검으로 발견된다.
마크를 떠나 보냈지만 산밍은 수소문 끝에 아내를 만난다. 그러나 그토록 보고 싶었던 딸은 멀리 돈을 벌기 위해 떠나있고 아내는 늙은 선주에게 묶여있다. 아내의 몸값은 3만 위안. 아내의 오빠가 동생을 판돈이다. 막막한 신밍은 파괴된 건물 안에 쪼그려 앉아 아내에게 토끼 사탕 반알을 건넨다. 무섭도록 거칠게 뚫린 시멘트 벽의 구멍으로 멀리 그로테스크한 위용의 건물이 흡사 괴물처럼 버티고 있다. 마크의 사탕 한 알, 산밍의 사탕 반 알이 이 무시무시한 세계를 견뎌낼 힘이 될까? 돈을 벌기 위해 함께 길을 따라가는 노동자들과 다시 위험한 탄광으로 향하는 산밍에겐 그 사탕이 위로였고 아내에게는 희망의 징표였다. 뿌리가 뽑힌 채 사면초가 외지에서 헤매는 이방인끼리의 연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희망을 담아 건네는 한 개비의 담배와 차 한자 그리고 팔려간 신부에게 건넨 사탕 한 알이 무서운 세상을 견디며 살아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