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chid May 26. 2021

영화<남매의 여름밤>

그때 여름날의 추억을 기억하시나요?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은 우리들에게 가족과 집이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잠시 생각해보게 한다. 마치 숨 쉬는 공기처럼 늘 나와 함께 있어 오히려 답이 막히는 질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동기로 인해 가족이나 집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대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매의 여름밤’은 당신의 일상에서 가족과 집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게 얼마나 순간순간 당신의 삶을 엮어 왔는지를 찬찬히 한 번쯤은 되돌이켜 보기를 권하는 청유형의 영화일 것이다.    

 

  특별한 인물도, 특별한 사건도 없는 한 여름 동안에 일어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흡인력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가정문화가 한국과는 너무도 이질적인 유럽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고 수상을 했을 정도로 이 영화는 국가 간의 문화적 차이조차 넘어서는 공감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가족이 보편적인 평범한 가족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부모의 이혼 후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는 아빠(양흥주)와 함께 살고 있으며 고모(박현영)는 남편과 맞지 않는 결혼 생활로 인해 이혼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옥주의 할아버지(김상동)는 노환으로 인한 병약함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오랫동안 낡은 이층집 양옥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로 공감하게 되는 것은 그들과 상황은 다를지라도 가족이란 늘상 행복한 웃음만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다툼 또한 소소하게 일상을 엮어가는 다면적 공동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티격태격 다투다가도 슬그머니 화해하고 서로 맥주 캔을 부딪히며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공감을 나누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나이드신 부모의 유산에 대해 내 몫을 주장하는 양보할 수 없는 욕심이 있다. 그렇듯이 가족은 혈연으로 연결되었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사연에 따라 함께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바쁜 삶 때문에 이웃보다 더 먼 소원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가족을 하나로 응집하는 것은 서로가 자라면서 같은 환경에서 경험하고 나눈 시간들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잠시 분주한 삶을 내려놓고 우리에게  당신이 잊고 있었던 가족과 집에 대한 기억을 잠시 돌이켜보는 이완의 틈을 갖기를 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moving on’. 사전적인 뜻에 기대어본다면, 이 영화의 주제를 ‘삶을 이어가는 움직임’으로 함축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영화는 처음부터 이삿짐이랄 것도 없는 몇 개의 짐을 싣고 어디론가 향하는 조그만 '다마스' 차의 경쾌한 움직임으로부터 시작한다. 제법 오래된 신중현(작곡가)의 ’미련‘이 가벼운 느낌의 현대판 버전으로 변형된 노래와 함께 차가 도로를 달리는 이전의 장면은 비록 햇볕조차 잘 들지 않는 비좁은 반지하 방이지만 동네의 재개발 붐으로 인해 떠나야 하는 옥주가 못내 아쉬운 시선으로 방을 돌아보는 모습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옥주는 초등학생인 남동생 동주와 함께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할아버지 집으로 향한다. 살던 집을 떠나 ’여름 방학 동안만‘ 머물게 되는 할아버지의 양옥집. 도착한 할아버지의 제법 넓은 이층 양옥집은 할아버지의 오랜 삶의 흔적들이 배어있는 가구나 물건들이 곳곳에 눈에 띄고 마당에 일군 텃밭에는 포도 넝쿨과 토마토가 햇빛을 한껏 받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오래된 양옥이었다.  도시에 있으면서도 시골의 정취를 안고 있는 이 집의 양가적 특징은 그만큼 집이라는 공간을 단순화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록 집은 오래되었지만 할아버지가 키운 마당에서 싱싱한 열매를 맺은 과일들은 자식들과 어린 손주들이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여름나기의 추억을 빛낼 먹거리가 되기도한다. 마치 오래된 주택들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낡은 도시의 변화처럼 할아버지의 오래된 집과 마당의 텃밭은 자식과 손주들을 품어 안는다. 그러니 말 없는 할아버지처럼 가라앉았던  집은 아들과 딸, 손주들이 여름 방학 동안 한 가족을 이루자 활기를 띠게 된다.     


  ’활기’라고는 하였지만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 금세 서로 편안한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짜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팔고 다니며 간신히 생활을 이어가는 아빠가 당장 아이들과 함께 머물 새로운 집을 구할 길이 없어 할아버지의 집에 여름 방학 동안만 한시적으로 머물겠다고는 하였지만 낯선 집에서 표정도 없고 무뚝뚝한 할아버지와의 생활은 편치 않다. 단 하나 옥주에게 위로라면 위층 방에 모기장을 설치한 방안에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누가 그 모기장을 여름에 썼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새로 준비한 것은 아니니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아빠나 고모가 썼을 모기장은 잠시 옥주가 쉴 공간이 된다. 그 방은 비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크지만 엄마를 미워하는 양 진짜 속내를 숨기고 자기만의 세계 안에 꽁꽁 숨어있는 옥주의 마음을 닮아있다.   

   

  그런 와중에 “날 괴롭히려고 태어난 요괴”같은 남편과 이혼을 작정하고 집을 나온 고모마저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사실 어느 가족이나 그렇듯 각자 살기 바쁘니 아빠와 고모라는 남매마저도 큰 명절이나 가족 행사 외에는 만날 일이 없었으니 서로의 근황은 커녕 언제 만났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동주는 오랜만에 만난 고모와 반가움에 얼싸안고 옥주는 모기장 안의 자신의 공간으로 고모를 불러 함께 잠을 자며 전화조차 없는 남자 친구의 진심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춘기 소녀 마음속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렇게 가족이라는 것은 비었던 시간의 틈도 넘어서는 밀착감을 가지고 있는 관계들이다. 그러니 고모는 불청객이 아니라 가족들의 여름 나기를 보다 풍성하게 하는 반가운 식구인 것이다.  

   

 


   이렇듯 우연치 않게 다시 모여 살게 된 이 가족은 서로가 처한 어려움과 막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가족이 되어 준다. 가족이란 기본적으로 혈연의 공동체일 것이고 한 집에 모여 살고 밥을 함께 먹는 식구이다. 이들도 비록 여름 동안만 할아버지 집에서 신세를 지고자 하지만 삼대가 함께 모여 여름 별미인 콩국수, 비빔국수를 나눠 먹고 때로 누나가 끓여주는 라면을 동생과 나누어 먹는 일상적인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다. 엄마가 부재하는 한 부모 가정이건, 할머니를 먼저 보낸 할아버지이건 그리고 남편과 이혼을 작정한 불안한 결혼 생활을 하는 고모이건 이 여름만큼은 그런 잡다한 삶의 굴곡들을 안고도 서로 같이 밥 먹고 물장난도 치는 일상을 보낸다. 또한 할아버지를 위한 깜짝 생일 파티와 옥주가 준비한 생일 선물에 아마도 평생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없었을 법한 할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조촐하지만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함께 이야기와 웃음을 나누게 되는 따뜻한 정경은 집과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쌍의 절대적 관계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할아버지의 집은 옥주가 그동안 접촉조차 없었던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키워내는 정신적 성장을 선물한다. 고1 여고생다운 예민한 감성과 자존감이 강한 옥주이지만 기실 옥주는 누구보다도 동생을 사랑하고 홀로 옛 노래를 들으며 얼굴에 미소가 번지던 할아버지의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고모와는 속내를 이야기 할 정도로 이 영화에서 가장 열린 소통이 가능한 인물이다. 또한 옥주는 현실적 삶에 치인 아버지와 고모 사이에서 가장 생각이 곧바른 인물이다. 예를 들면 고모와 아머지가 노환으로 위험한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다든가 집을 팔 계획을 이야기하자 옥주는 할아버지와 의논도 없이 할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신다는가 집을 팔려고 하는 아버지와 고모의 결정을 힐책한다. 그만큼 옥주는 늙고 병들었지만 그래도 이 오랜 집의 역사만큼이나 할아버지의 삶이 쌓인 집의 가치와 할아버지가 가진 자존감의 소중함을 깊이 아끼고 인정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노환으로 돌아가시게 된다. 할아버지가 남긴 것은 집이지만 그 집을 지킬 사람은 없으니 집은 곧 다른 가족의 집이 될 것이다. 아빠는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장사나 일거리를 찾아 다른 집을 찾아 나가야 하며, 고모는 할아버지의 장례를 찾은 남편과 화해한 듯 부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옥주가 정붙인 할아버지와 가족과 집, 밥을 함께 먹고, 함께 웃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시절은 한 여름이 저물면서 끝나게 된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할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장례식장에 문상을 온 엄마와 식구들이 모여 밥을 먹는데 이들의 모습은 슬프기는 커녕 즐거워 보이고 더욱이 가족들 앞에서 춤을 추며 재롱을 떠는 동주로 인해 파안대소를 하는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난다. 관객의 의아함도 잠시, 기실 이 장면은 현실이 아니라 엄마가 그립지만 겉으로는 매몰차게 그렇지 않은 척 하는 옥주의 꿈이다.  이 꿈의 장면과 비슷한 장면이 있었는데 할아버지 생전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동주가 장난스럽게 추던 춤이 가족을 한바탕 웃게 했던 장면이다. 엄마에 대한  옥주의 그리움이 할아버지를 대신한 자리에 엄마를 불러왔지만 그것이 한낱 꿈이었기에 현실은 더욱 안스러울 뿐이다. 



  옥주의 그리움을 도닥이는 것은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었던 집이다. 이층에 놓인 할머니가 쓰시던 오래된 발 재봉틀에 달린 나무 보조대는 옥주와 동주가 다투고 난 후 화해하고 라면을 끓여 남매가 의좋게 나누어 먹는 화해의 식탁이 되며 옥주는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에서 재봉틀을 박아보기도 한다. 또한 할아버지가 가꾼 마당에 영근 토마토는 할아버지와 동주가 함께 열매를 따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며  포도 넝쿨과 수박은 손주나 아들,  딸이 시원한 여름을 나게 하는 자연의 선물이 된다. 

    


  가족의 중심이었던 할아버지가 떠난 양옥집으로 돌아온 아빠와 옥주, 동주는 밥을 먹는다. 삼대가 함께 밥을 먹던 가족은 다시 세 식구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밥을 먹다가 끝내 옥주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이제 할아버지가 지키고 가족에게 온기를 선물했던 양옥집은 다른 가족의 집이 되겠고 세 식구도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날 때가 온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햇빛이 드는 이층 방에서 곤히 단잠에 든 옥주의 모습이다. 이제 옥주도 이 집을 떠나야 하겠지만 지금 잠을 자는 옥주는 한 여름 동안의 기억을 꿈속에서 다시 만나고 있지나 않을지... 그래서 이 영화가 남기는 분위기는 쓸쓸하다.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을 아쉬워 하지만 잠을 깨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할테니까.    

  

  이런 점에서 영화의 포스터는 상징적이다. 롱 쇼트로 찍은 어둠이 깔린 커다란 이층 양옥집의 일층 거실에서 밥을 함께 먹고 있는 가족의 모습과 아무도 없는 이층 거실 천정의 조명등은 보는 이의 시선을 끌어들일 정도로 유난히 밝다. 일층이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는 가족의 현실적 공간이라면 이층의 공간은 빈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이층에서 머물렀던 옥주의 마음의 성장이 담긴 빛나는 공간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제 이 집을 떠나 한 여름내 모였던 가족이 각자의 사연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겠지만, 남매의 여름날의 이야기는 바쁜 일상에서 잊고 있었던 과거의 추억들을 선물한다. 우리의 현재는 가족들과 보듬으면서도 부딪히고 서로 다투면서도 껴안았었던 지난 시간들이 흘러서 닿은 순간이라는 것을 ‘남매의 여름밤’은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가타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