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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Mar 19. 2021

영화 <가타카>

우리는 혼자가 아니에요.

   고작 동아프리카의 직립 원인에 불과했던 유인원이 지구 전체를 지배하게 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역사로부터 ‘호모 데우스’(Homo Deus)로 나아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인간이 첨단과학에 힘입어 자연적인 인간의 형질, 죽음조차 마음대로 재단하면서 신의 자리를 대신할 미래를 예언한다. 이보다 앞서 이미 20여 년 전에 하라리의 예견을 영상으로 재현해 낸 영화 <가타카>(Gattaca)는 최상의 유전자로 조작된 인간이 열성 유전자의 인간을 통제하며 사회적 질서를 이끌어가는 유토피아적 세상이 곧 인간성을 도태시키는 디스토피아 세상임을 보여준다. 


  <가타카>라는 타이틀은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의 배열인 아데닌(A), 타민(T), 구아닌(G), 시토닌(C)을 합성한 것으로서 영화는 30억 개의 염기의 배열에 따라 생물학적 특성이 구성되는 인간을 과연 우성과 열성으로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적 질문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과학이 30억개의 유전자와 예측 할 수 없는 상황의 결과물인 인간을 수학적으로 완벽히 예측하고 계산해 낼 수 있으리라는 가설은 그야말로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타카>는 미래 가상의 세계가 배경이지만 선천적 조건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며 태생적인 행과 불행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가타카>는 어찌할 수 없었던 원천적 조건에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꾸어 나가리라는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자연잉태자


  영화는 극단적으로 발달한 유전 생물학으로 인해 마치 꼴라쥬하듯 우성 유전자만 취향대로 선별해서 디자인한 태아의 배아를 사고파는 가상 미래가 배경이며 인간의 신분은 이미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유전자로 정해진다. 그런 세상에서 아무런 임의적 조작없이 사랑만으로 임신을 하고 태어난 자연 잉태자는 상대적으로 결점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세상에 태어나서는 대개는 하위 계층으로 전락해 차별과 무시를 받게 된다.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의 경계는 사회적 연대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으로부터 시작한다. 피 한방울만의 유전자 판독으로 신생아의 미래 수명까지 예측하는 세상에 태어난 주인공 빈세트(Ethan Hawke)는병약한 심장과 근시, 신경계 질환과 우울증 인자를 가졌으며 기대 수명은 30세에 불과한 열성 유전자를 가진 아이로 태어난다. 이것을 시행착오로 판단한 부모는 이번에는 우성인자로만 디자인한 빈세트의 동생 안톤(Loren Dean)을 출산하게 된다. 절대 안톤을 앞설 수 없는 뒤처진 아이로 가족에게서 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빈센트는 위축된 현실을 벗어나려는 듯 어릴 적부터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런 빈센트에게 아버지는 “네가 우주선을 보는 일은 우주 항공사의 청소부가 되는 것”일 뿐이라고 하며 무시하고 어머니는 그건 현실성이 없는 꿈이라고 일축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자연과 과학, 열성과 우성이라는 이분법의 대결과 갈등에 집중하기보다 빈센트를 더 거대한 우성의 세계로 던져놓음으로써 빈센트가 어떻게 낙인처럼 찍힌 열등의 운명을 극복하고 우주로 비상하는 꿈으로 향해가는가를 보여준다. 단지 꿈이 꿈으로만 끝나면 몽상이 되겠지만 그 꿈을 향해 움직일 때 그 꿈이 이루어지는 누군가의 기적은 선천적 조건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모든 것은 아니라는 반전의 희망을 보여준다.     


열성 인간의 자기 추방

 

  ‘자연’이라는 것은 ‘그냥 그렇게 있는 그대로’일 것이나 자연 잉태자로 태어난 빈센트의 자연성은 삶의 ‘부적격자’로 도장 찍게 하는 부정적 조건이 된다. 당연히 모든 면에서 두 형제의 차이는 확연했고 가족조차 그것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지만 빈센트는 어느 날 안톤과 가끔 겨루던 수영 게임에서 필사적인 힘으로 헤엄쳐 안톤을 이기게 된다. 이때 빈센트는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하면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자기 안의 잠재적 능력에 스스로도 놀라며, 우성이라는 것이 생각한 것 만큼 완벽한 조건이 아님을 알게 된다. 결국 빈센트는 울타리가 되지 못하는 가족으로부터 스스로 떨어져나오는 자기 추방을 감행한다. 이 사건은 주어진  빈센트 프리맨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의해 '제롬 모로우'라는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전환점이다. 그러니 이것은 도피가 아니라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전의 시작이 된다. 어쩌면 무익한 용기일 수도 있고 나서지 않느니만도 못한 참담한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해보지 않고서야 자신도 자신의 숨겨진 힘이 어느 만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삶의 신비이다.     


유전자 거래몸과 꿈의 거래

   가상 미래세계의 계급은 우성 인간이 차지하는 상위 계급과 열성 인간이 속하는 하위 계급으로 나뉜다. 우성 유전자를 사는 것은 마치 뷔페에서 음식을 고르듯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최상의 품질을 가진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으니 결국 경제적 조건이 상위와 하위를 결정하는 현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반면 수많은 세대에 걸친 조상들의 유전자의 결과물인 자연 잉태자는 열성 유전자와 우성 유전자를 구별할 수 없는 혼합물이다. 그러니 자신도 알 수 없는 우성 유전자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세상의 벽과 부딪히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찾아 낼 수 밖에 없다.

  세상으로 나간 빈센트는 우주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선 ‘적격자’(valid)라고 불리는 우성 인간만이 비행사가 될 수 있는 우주 비행 항공사인 ‘가타카’에 청소부로 고용된다. 비록 홀로서기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멋진 옷을 차려입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상층을 오르는 적격자들을 아래 층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빈센트는 어느 날 유전자 거래를 알선하는 중개인을 만나게 된다. ‘적격’(valid)이라는 것이 ‘시스템에 쓰기에 유효한’을 의미하듯이 초첨단 과학 시스템의 적격자가 되기 위해서 빈센트는 우성 유전자를 사기로 한다. 정밀한 과학적 시스템의 총집산지라고 할 수 있는 우주 항공의 영역에서 우주 비행사는 육체적으로 뛰어나야 될 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우성 인간이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조건은 매일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체크되고 검증되며 인간의 가치는 다른 조건은 고려치 않은 '적격'(valid)  아니면  '부적적'(in-valid) 그리고 능력을 검증한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

  빈센트가 거래한 대상은 제롬 유진(Jude Law)이라는 과거 수영선수이다. ‘우수한 형질’을 뜻하는 ‘Eugine’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제롬은 우성 인간이었지만 대회에서 은메달에 그친 후,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여 휠체어에 의지해 살고 있었고 중개인의 소개로  그의 우성 유전자를 빈센트에게 팔기로 한다. 처음에는 호기심 혹은 금전적 대가를 바라고 한 거래였지만 제롬은 점차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치열하게 노력하는 빈센트를 보며 자신이 포기하고 있었던 꿈을 대신할 희망을 본다. 우주로 비상하려는 빈센트의 꿈은 제롬으로 하여금 다시 자유롭게 세상을 날고 싶은 꿈을 일깨운 것이다. 그러므로 제롬의 몸과 빈센트의 꿈이 교환하는 이 거래는 두 사람 모두 잃을 것이 없는 ‘논제로섬 게임’이 된다.   

  

불완전한 우성과 열성의 연대

  제롬 유진이 된 빈센트는 삼엄한 가타카 우주 비행 항공사의 신원 체크 시스템을 뚫고 가타카의 최고 엘리트 비행사가 된다. 그가 비록 제롬이 배출한 소변과 혈액을 자신의 것인 양 위장하여 상류 계급에 진입하지만 그것은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신원 확인 시스템과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속여야 하는 긴장의 연속이다. 때문에 빈센트는 과거 빈센트의 흔적 하나라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이 머리카락이나 피부를 벗겨내듯 박박 긁어내고 씻어내면서 절대 가짜라는 단서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일부였던 그것들을 태워버리는 제식과도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게다가 자신보다 큰 제롬의 몸과 같아지기 위해 5cm의 키를 늘리는 그야말로 뼈를 깍는 수술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가타카의 감시관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찾아온 형사는 빈센트의 동생인 안톤이었다. 안톤은 멀리서나마 빈센트가 자신의 형임을 직감하고 끈질기게 그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뒤를 쫒게 되고 실수로 흘려진 한 올의 눈썹과 무심히 청소부에게 건낸 종이컵을 증거로 그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굳힌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빈센트를 구한 건 아이린(Uma Thurman)이라는 가타카의 여자 비행자이다. 우성 인간이기는 하지만 심장이 약해서 시스템 내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기도 했던 아이린은 안톤에게 신원을 들킬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빈센트를 구한다. 아이린의 호의는  빈센트에게서 느꼈던 인간적 감동 때문이다.  어느 날 빈센트에게 자신의 결점을 밝힌 아이린은 증거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 유전자를 검사해보라고 건네지만 빈센트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듯 바람에 날려 보내는 것을 보고 아이린은 빈센트의 인간다움에 끌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넘사벽'인  빈센트의 우월성에 관심과 묘한 질시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린이 감성적이고 진솔한 인간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다음의 조력자는 제롬이다. 안톤이 빈센트를 찾아 제롬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은 제롬은 빈센트의 위장을 들키지 않기 위해 휠체어를 박차고 떨어져 나와 상반신의 힘만을 의지하여 죽기 살기로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에 앉아 안톤을 마주한다.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없으니 안톤의 빈센트 찾기는 실패한다. 하지만 결국 안톤과 빈센트는 마주하게 되고 빈센트와 안톤은 예전에 했던 수영 게임을 다시 하지만 제롬의 우성인자가 몸에 장치된 빈센트가 압도한다. 이때 빈센트가 말한다.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되돌아 올 힘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I never saved anything for the swim back)이라고. 뒤로 돌아갈 수 없는 절실함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역설적 원동력이 된 것이다.

  또한 비행사들의 소변과 혈액을 체취하며 매일 비행사들의 신원을 확인하던 신체 검시관은 빈세트의 위장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왔고, 마침내는 비행 순간의 목전에서 신원을 들킬 위험에 처한 빈센트가 꿈을 향해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유전자 조작으로 낳았지만 조작의 실패로 부적격자가 된 아들이 있었으며 치열하게 노력하는 빈센트에게서 자신의 아들이 결함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항공사내의 살인자는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던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의 우주 비행 발사를 반대하던 걸림돌을 제거하려던 죠셉이라는 우주 항공사의 책임 연구원이었다. ”내 유전적 기록엔 폭력성이 없다“라고 항변하지만 죠셉이 보여준 잔인한 폭력성은 우성에 대한 과신과 성공에 대한 집착, 완벽한 것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려는 인간의 뒤틀린 욕망을 보여준다. 

  사실 완벽해 보이는 인간도 알고 보면 아이린처럼 불완전하고, 제롬처럼 완전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심신이 병들기도 하며 죠셉처럼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악인이 되기도 한다. 과학은 최고의 형질만을 골라 인간을 주조하고 향상시키지만 생물학적 유전자와 환경이 얽히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인 인간의 심리까지 계산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다.    

 

 소멸과 상승 그리고 삶의 지속


  영화의 종반부는 자신의 집 이층 한 켠에 설치된 소각시설이 있는 샤워부스에 들어가서 사각형의 문을 닫는 제롬의 모습과 드디어 둥근 우주선의 문이 닫히고 타이탄으로 가는 우주선에 탑승한 빈센트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다. 닫힌 사각형의 문은 차별적이고 기계적인 지상의 삶의 끝을 의미할 것이고  둥근 우주선의 문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무한 순환하는 실존적 삶의 은유일 것이다. 자신의 몸을 빌려준 대신에 꿈을 받았다는 제롬의 말처럼 빈센트의 우주 비행은 무한 공간을 훨훨 날고 싶은 제롬의 꿈의 실현이다. 이 꿈을 성취하는 날, 제롬은 더 이상 지상에  묶인 몸으로 남지 않음으로써 영원한 자유를 얻고자 한다. 반면 빈센트는 엄청난 불을 뿜으며 발사된 우주선을 타고 가장 완벽한 우성의 인간만이 갈 수 있는 타이탄을 향해 힘차게 상승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롬은 빈센트가 자신의 일부를 태우던 소각장에서 지상에서의 삶을 마친다. 그가 목에 매달고 있는 은메달은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금빛으로 빛나고 ‘우리 몸속의 모든 원소들이 별들의 한부분’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제롬은 빈센트의 꿈과 함께 별이 된다. 제롬이 빈센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렇다. "아마 나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고향으로  가는 것일 것이다". 



  아마도 빈센트는 타이탄의 비행을 마치고 다시  지상으로 되돌아 올 것이고 빈센트가 평생 쓸 만큼 제롬이 남겨놓은 소변과 혈액으로 계속 신분을 속이고 제롬 모로우로 살게 될 것이다.  빈센트가 보여준 것은 머리카락 한 올, 피 한 방울로 사람을 규정하고 차별하는 세상에 맞서던 자연 잉태자의 용기와 의지의 가치이다. 또한 시작은 그토록 우주를 동경하던 빈센트의 도전이었지만 빈센트를 날게 한 것은 결함을 가졌던 아이린과 제롬 그리고 그의 노력에 감동했던 검시관이 만들어 낸 연대의 합작품이다. 그렇지만 아이린 또한 빈센트를 통해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을 배웠고 제롬도 검시관도 모두 빈센트를 보며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배운다. 세상은 서로가 나누는 선한 영향만으로도 살만한 것 같다.


 

 내 탓이 아닌 태생적 결핍, 뒤늦은 출발이 때로 진정한 사람의 마음을 얻고 나누는 역설적인 행운의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가타카>는 말한다.  최고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수영선수 제롬의 극단성은 우성이 행운이 아니라 삶을 옭아매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닌 최고보다는 최고를 향해가면서 자기 자신의 잠재성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 삶을 빛나게 할 것이다. 비록 이것이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 낭만적 비전일지라도 뒤처져서 혼자 울고 있는 것보다는 세상 밖으로 나아가 부딪히다 보면 나의 노력을 돕고 응원하는 이웃만이라도 얻게 될테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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