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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Apr 08. 2022


술 권하고, 술 말리는 세상 이야기

영화<어나더  라운드>(Druk, Another Round> 리뷰

   

  모든 영화들은 잘 만들어졌든 아니든 나름대로 미학과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더욱 더 특이하다. 보고 나면 비극인지 희극인지, 술을 권하는 것인지 말리는 것인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블랙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가르치는 것도 사는 것도 심드렁해 보이는 고등학교 교사인 4명의 중년 남자들이 실험 삼아 술을 마시면서 벌어지는 소동과 반전에 관한 웃지 못할 이야기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16세만 되면 술을 마실 수 있는 덴마크 고등학교 학생들이 호숫가에서 맥주 박스를 들고, 마시며 이어달리기 경기를 한다. 경기라고는 하지만 토하도록 맥주를 마셔가며 진행되는 난장판에 가까운 경기이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학생들은 언제 그 난장판을 벌였나 싶게 다시 성적과 입시가 직면한 교실로 돌아간다. 술은 자칫 성적에 찌들려서 빛나는 청춘 시절을 채 즐기지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한바탕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긍정적 영향을 준다. 더구나 4명이 한 조가 되어 맥주 박스를 들고 이어달리는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 한 명이 토하거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팀웍이다.      


  영화는 거꾸러지고 토하면서도 결승선을 향해 호수를 도는 학생들의 유쾌한 이탈을 교사들의 우울한 삶에 옮겨 놓는다. 4명 중 주인공인 역사 교사 마르틴(매즈 미켈슨)은 젊은 시절에는 훌륭한 논문도 쓰고 교수직이 예상된 뛰어난 교사였지만 지금은 수업의 맥락도 뒤엉킬 정도로 나사가 빠져 있다. 아내와의 대화는 거의 단절이 된 채 냉랭함이 도는 가정 또한 곧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심리학을 가르치는 페테르(라그스 란테)는 의대 시험을 포기하려는 학생을 일으켜 세워야 하고, 음악 교사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는 국가를 연습하는 합창단의 화음을 잘 이끌어 내야 한다. 체육 교사인 톰뮈(토마스 보 라센)은 짐(gym)을 뛰는 학생들 가장자리로 아예 물러나 앉아 무기력하게 앉아있다. 오래 전 이혼한 그는 이제 걷기조차도 힘들어 하는 그의 노견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모두가 처한 무기력함과 위기에서 니콜라스가 제안을 한다. 사람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가 부족한 채 태어났으며 만약 0.05%를 채운다면 훨씬 창의적이고 활달해진다는 한 정신의학자의 가설을 실험해 보자는 것이다. 단 저녁 8시 이후와 주말에는 마시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다. 술이 술을 부르는 가속의 매직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 조건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잘 알 것이다. 결국 처음부터 실패와 시행착오를 전제한 제의였던 것이다.     


  먼저 마르틴이 시도를 한다. 처음에는 수업이 더 엉망이 되는 실패가 있었지만 점점 더 알코올 도수를 올리자 그의 수업은 열정과 자신감이 되살아나서 학생들의 집중력도 높아진다. 게다가 타인 같은 남편, 따분한 아버지로 겉돌던 가족과의 화해도 일순 해결된 듯 싶다. 문제는 그 이후다. 알코올의 효능에 매료된 그의 알코올 농도는 점점 늘어나서 0.12까지 오르게 되자 선한 영향은 사라지고 그의 수업과 가족 관계는 전보다 더 엉망진창이 된다.      


  4명 중 가장 온화한 인상을 가진 체육 교사인 톰뮈는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분위기를 살리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오랜 시간 홀로 사는 삶으로 인해 마음에 고인 외로움을 감추고 었었다. 점점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의 농도가 늘어나더니 마침내는 알코올 중독이 되어서 교사들의 음주를 문제 삼아 학부형들이 모인 학교 회의 중에 두주불사 상태가 되어 나타나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결국 자괴감과 함께 더 이상 살아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톰뮈는 노견을 태운 채 작은 배를 타고 호수로 나아가 자살을 하게 된다. 쓸쓸하고 애처롭게 떠있는 배에 노견만이 남아있는 풍경이 롱 샷으로 잡힌다. 학생들의 떠들썩한 술파티와 이어달리기가 열리고 생동감이 차올랐던 호수 한가운데 쓸쓸한 죽음이 대신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세상에 사랑의 씨앗을 남겼다는 추도의 마음을 남긴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음악 시간에 국가의 화음을 맞추려고 했던 고등학교 학생들 대신 톰뮈와 주말 축구를 뛰었던 어린아이들이 영롱한 목소리를 모아 국가를 부른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합창은 맑고 신선하다. 톰뮈로 인해 용기를 얻었던 어린아이가 톰뮈의 무덤에 한 송이 꽃을 바친다. 소심하기만 했던 한 아이가 세상에 나아가 이어달리기를 할 수 있도록 따뜻한 응원을 보냈던 톰뮈의 가치는 그것으로 빛났던 것이다.    

 

   톰뮈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마르틴은 불현듯 깨진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 아내에게 화해를 요청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냉담하다. 자꾸 과거를 이야기하는 마르틴에게 아내는 현실을 이야기하라고 다그치지만 마르틴은 문제 투성이인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아직은 없다. 그래도 마르틴은 이전의 태도와는 다르게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아내에게 고백하는 용기를 회복한다. 술을 통해 쓴맛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진짜 마음을 몰라서 놓쳤을 수도 있는 사랑이었다. 그리고 톰뮈의 장례식을 치른 후 친구들은 침울하지만 톰뮈가 있었으면 이러지 않기를 바랬을 거라고 하면서 다시 술을 마신다. 마르틴은 이제 술을 끊은 듯 탄산수를 앞에 놓지만 결국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된다. 그때 남편의 사랑 고백을 거절하고 냉담하게 자리를 떠난 아내에게서 희망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비록 한 친구를 잃는 슬픔을 겪기는 했지만 살아 남아있는 그들에게 과음과 절제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대었던 혼란이 그냥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너와 나가 함께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소박한 결의와 행동력에 있었을 것이다. 혼자서는 치유할 수 없었던 우울이나 가족의 불화는 과도한 음주가 부른 한바탕의 소란으로 인해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소중한 친구를 잃었지만 이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다시 살아낼 희망으로 일어선다. 백프로의 비극도 없고 백프로의 희극도 없는 세상에서 이 긍정의 신호가 견고한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혈중 알코올 농도처럼 삶의 행복도 고통도 0.05%는 늘 모자란 것일게고 어쩌면 그 결핍은 삶의 근본적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거창하게 실낙원에 관한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술에 취해 엎어져서 머리가 깨쳐 피흘리렸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춤을 추는 마르틴처럼 그럼에도 살아있어 행복하다는 환호를 지를 만 하다.  

   

  슬픔과 상실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게 마련이다. 아이들은 무사하게 입학 시험을 치르고  졸업식 날, 다시 술을 마시며 환호와 웃음, 춤이 어우러진 신나는 졸업 파티를 한다. 여기에 동참한 세 명의 교사들도 학생들과 같이 술을 마시고 함께 축제를 즐긴다. 축제의 정점은 실제 현대 무용가로 활동했다는 주인공 마르틴이 술에 취해 추는 멋진 재즈 댄스이다. 내일이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겠지만 모두가 함께 마시고 흥청대는 이탈의 순간에는 근거없는 낙관과 희망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 힘으로 주저앉았던 낙심을 훌훌 털고 일어섰던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았던가. 영화 첫 화면에 등장했던 키에르케고르의 명언처럼 사랑이 있는 한 청춘이듯이 그들은 혹독했던 제2의 성인식을 통해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새로운 라운드(어나더 라운드)로 들어선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묘약이자 독약인 술처럼 희극과 비극이 하나인 채 이어달리는 삶에서 절묘하게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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