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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Jun 22. 2022

그렇게 가족이 된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리뷰

     

  10년 전 바다에서 사람을 구하다 죽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 멀리 도쿄에 살고있는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의 가족까지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비록 죽음을 애도하는 날이지만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이는 자리여서인지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 토시코(키키 기린)의 모습은 활기차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점차 밥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가족 사이에 놓인 단단한 벽과 틈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의 작품을 통해 ‘가족’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집중탐색하는 감독이다. 혈연이라는 생물학적, 사회의 제도적 울타리가 자칫 얼마나 배타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어느 가족>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빛난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가족들끼리 교차하는 다양한 관계망을 통해 시간을 따라 변화해 가는 유기물로서 가족을 들여다본다. 그의 영화에서 가족은 보이는 것처럼 그리 단단한 공동체도 아니며 좁힐 수 없는 거리와 틈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이질적 공동체도 아닌, 부지불식간에 서로에게 스며가며 닮아가는 현재 진행형의 구성물이다. 심지어 죽어서 지상을 떠난 자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 여전히 끼어들기도 하고 타인이었던 사람도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들어오면 뒤섞여가며 서로의 마음 안에 천천히 들어앉는다. 마치 시간과 햇빛, 바람이 만들어내는 발효된 된장처럼 가족은 시간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함께 걸어가며 숙성되어간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차린 가족의 밥상

  거실 한쪽에 준페이의 영정이 보인다. 비록 기일이지만 오랜만에 모두 모인 집의 풍경은 잔칫날처럼 소란스럽다. 그 와중에 엄마(키키 기린)는 딸 지나미(유)에게 무와 감자의 요리법과 용도를 가르치고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는 옥수수대에 단단히 박힌 옥수수 알을 어떻게 하면 잘 떼낼 수 있는가를 그의 가족에게 설명한다. 가족은 그것처럼 대단한 것이 아니라 가끔씩이나마 모여 함께 먹고 마시며 소소한 삶을 나누는 친밀한 공동체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가족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쉬이 드러나지 않는 서로에 대한 애정, 서운함, 걱정, 갈등이 뒤섞여 사랑의 말은 삼켜지고 애틋한 행동은 지연된다.      


  이렇게 준페이는 영원회귀하듯 가족의 삶에 끼어든다. 그러니 죽음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죽음은 대화가 삼켜지고 머뭇거리는 가족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서로의 마음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하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다. 부모는 장남과 차남에 대한 기억을 혼동하고 있지만 료타가 자신들이 세상을 떠나면 이 집을 지켜줄 것을 원하고 있다. 자신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지 못한 아들을 바라보는 대면대면한 아버지 쿄헤이(히로다 요시오)는 여전히 료타를 죽은 형에 대한 열등감과 자괴감에 힘들게 하지만 아버지가 늙어가고 있다는 집안 곳곳의 흔적은 료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엄마와 가까워 보이는 살가운 딸도 내심 부모님의 집으로 와 살고 싶지만 착한 남편과 천진난만한 아이 둘을 가진 자신의 가족 안에서 그런대로 행복하다.    

 

  이 영화에서 가족의 울타리 밖에 있는 단 한 사람은 준페이로 인해 목숨을 구한 청년 요시오이다. 10년 동안 준페이의 기일을 찾는 그는 준페이의 가족 앞에서 그는 늘 죄인이다. 그래서인지 긴장한 그의 하는 말은 서투르고 몸에서는 더위와 긴장이 뒤섞여 연신 땀이 흐른다.  제사가 끝날 날 저녁, 그런 그의 모습이 안스러워 료타가 “그가 이제 그만 들러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희미한 불빛 아래서 뜨개질을 하던 엄마가 미동도 없이 말한다. “그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해 부른거야. 증오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움도 더 할 거야. 그래서 부르는 거야. 일년에 한번 쯤 고통을 준다고 해서 벌 받지는 않을 거야.”  더없이 평범하고 자상한 엄마의 마음에 잠긴 서늘하도록 날선 고통의 응어리를 본 료타는 말문이 막힌다. 슬픔은 꼭 눈물을 꺼내어 울어야 슬픈 것은 아니며, ‘아프다’는 말은 아픔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람의 감정이란 누구도 계량화 할 수 없고 개념화 할 수 없는 것이며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남은 사람이 애쓴다고 앞서 떠난 사람이 잊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잊게 하기를, 고통을 옅게 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낯선 가족 이츠시(그렇게 가족이 된다.)

  나이든 엄마가 생각하는 가족은 여전히 혈연으로 연결된 고리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은 료타 가족을 대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료타 가족을 위해 새 칫솔 세 개를 가지런히 준비해 놓은 엄마는 일견 사려 깊어 보이지만 내심 사별한 전 남편 사이에 낳은 아이가 있는 유카리(나츠카와 유이)와 결혼한 아들이 못내 못마땅하다. 딸에게는 아예 내놓고 료타의 아내를 나중에 이혼하기도 힘든 ‘중고’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료타의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가 서로 다른 아이들이 서로 섞이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유카리에게 지나치듯 말을 던지며 유카리를 쉬이 가족의 울타리로 들여놓지 않는다.   

   

  그런 어른들의 편견과 벌어진 틈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을 봉합하는 희망은 어린 아이들의 순수함에서 보인다. 비록 피가 섞인 할아버지는 아니지만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유카리의 아들 이츠시는 예전에 할아버지가 쓰시던 약제 선반에 호기심을 보이고 이층에 놓인 오래된 피아노 건반을 꾹꾹 눌러보기도 하며 이 가족이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들여다본다. 그때 그토록 가족에게서 겉돌던 아버지도 손주 이츠시와 마주 앉아 자상하게 대화를 나눈다. 아버지는 본심을 표현하는 것이 낯설고 어색했을 뿐이다.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이 새로운 손자의 꿈을 묻기도 하고 그토록 어색했던 료타에게 함께 축구장을 가자고 말하기도 한다. 이 낯섦은 이츠시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읽을 사람이 없는데 죽은 토끼에게 편지를 쓴다는 친구의 말에 웃었다는 어린 이츠시가 어느 사이 밤하늘을 향해 죽은 생부에게 지난 하루를 일기 쓰듯 이야기한다. 료타의 가족은 이츠시에게 죽음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는 위로를 선물한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화해의 천사로 이츠시를 들여놓은 것은 아니다. 고레에다가 주목하는 것은 잠시 모였던 가족이 서로 헤어지고 난 후에도 여전히 남는 서로의 다른 마음과 기억의 조각들이다. 자식들이 떠나고 뒤에 남겨진 부모는 다음 설에나 볼 수 있을 거라고 아쉬움을 달래지만 료타와 아내의 생각은 다르다. 료타는 설 방문을 생각도 안 하고 다소곳이 시댁 방문을 마친 아내는 다음에는 하루 자는 것보다 당일치기가 어떻냐고 한다. 식사 준비 등의 번거로움을 어머니에게 끼치지 않고 싶다지만  낯설고 조심스러운 시댁 방문이 편안할 리 없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이츠시도 듣고 있다. 어른들의 속내는 어린 이츠시에게 이식된다.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처럼 절룩거리는 가족의 걸음이 계속될 희망은 영화의 초반부, 성분을 나눌 수 없이 섞이는 콜라와 진저엘 믹스를 마시던 어린 이츠시의 모습에서 이미 예견되었다. 커서 할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고 싶기도 하고 죽은 생부처럼 피아노 조율사가 되고 싶은 이츠시는 서로 다름이 교차하고 뒤뚱거리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해 나갈 가족을 이어가는 다리이다. 


  세월이 흘러 준페이와 부모님이 묻힌 묘소를 찾은 료타의 가족 사이에 새로 태어났을 어린 딸이 보인다. 3년 후 떠나신 아버지, 아버지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어머니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얼마 안 있어 돌아가셨다. 엄마가 했던 제식을 그대로 흉내내고 하얀 겨울 나비가 환생한 것이 노랑나비라고 엄마가 해주던 동화같은 이야기를 료타에게 들으며 가족은 함께 묘지에서 길을 내려온다.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함께 축구장에  가고 싶었던 아버지의 바램도, 아들의 차로 쇼핑을 가고 싶었던 엄마의 소박한 희망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간을 뒤로 돌리면 그 아쉬움을 털어내어 고쳐 살 수 있을까? 후회는 늘 시간을 앞서지 못하고 뒤늦음은 반복된다. 죽음에 대한 아쉬움조차 그저 일상을 이야기하듯 읊조리는  료타의 나레이션과 함께 이 가족이 걸어내려 오는 모습으로 화면은 닫힌다. 겉으로 보이는 가족은 일상이지만 그 안으로 들여다보면 가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힘을 가진  작지만 거대한 세계이기도 하다. ‘걸어도 걸어도 흔들리는 배’(극 중 흘러나오는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가사)는 불안이 아니라 균형을 잡아가며 앞으로 살아갈 이츠시의 모습이며 흔들리면서도 함께 걸었고, 걷고 있고, 걸어갈 세상 가족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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