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nner courage Oct 5. 2023
B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혈압유지도 어려울 것 같고 곧 호흡부전도 올 듯하다. 거칠게 숨을 몰아 쉬는 B의 얼굴이 온통 땀 투성이 인데다 의식도 또렷하지 않다. B는 사전에 연명치료에 대한 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했다. 얼마 전 외래에서 이에 대해 상의하려 했지만 B의 아내가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암의 진행으로 기대여명이 매우 짧은 B환자의 경우 연명치료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 연명치료에 대한 결정은 환자 본인이 하는 것이 맞지만, 환자가 직접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직계 가족이 결정하게 되는데, 의식이 또렷하지 못한 B를 대신하여 아내에게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설명드렸다. B의 아내는 본인은 동의하지만 서면 동의는 아이들이 오면 하겠다고 했다.
얼마 후 아이들이 도착했다. B의 아내는 "장남이 왔으니 얘가 싸인할 것이다."라며 큰아이를 내세웠다. 앳된 얼굴의 큰 아들은 아직 20대 초반으로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어른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뿐만아니라 버젓이 배우자가 있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아들에게 힘겨운 일을 넘기다니 정말이지 잔인한 처사이다.
심폐소생술 여부, 기계호흡 여부, 승압제 사용 여부 등에 대해 설명을 하자 아들의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흘렀고 떨리는 손은 연신 땀을 훔쳐내고 있었다. 임종 직전 심한 고통을 덜기 위한 고용량 진통제나 진정제 사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투여시 간혹 호흡부전이 와서 더 빨리 사망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자 아들의 눈동자는 쉴새 없이 흔들렸고 "제가 동의해서 진정제를 썼는데 바로 돌아가실 수도 있나요?"라며 몇 번을 되물었다.
결국 B는 사망할 것이고 동의서에 싸인을 한 B의 아들은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나는 B의 아내가 원망스럽다. 암 환자의 보호자, 특히 말기 암 환자의 보호자가 지고 있는 짐은 너무나 무겁다. 하지만 어른이 져야할 짐을 '장남'이라는 말을 앞세워 아이에게 넘기는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들은 그저 아버지의 죽음이 두려운 아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