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nner courage Oct 13. 2023
2년 전부터 만나고 있는 C는 전이성대장암 환자이다. 70대 후반인 C는 처음 진단 때부터 간전이가 있었지만 다행히 대장에 있는 원발 암과 간의 전이암을 모두 절제할 수 있었는데 수십년 전 앓았던 결핵으로 폐가 좋지 않은 탓에 수술 후 합병증으로 오랜기간 고생을 하였다.
보조적 항암치료는 대개 술 후 3-8주 사이 시작하게 되는데 C가 항암치료를 위해 우리 과로 왔을 때는 이미 수술을 한지 3개월이 지났었고 불행히도 그 사이 암이 다시 자라나 새로운 간전이와 폐전이가 생겨 있었다.
수술이 잘되어 이제 이 힘든 치료도 곧 끝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갑자기 일종의 시한부 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C는 혼자서 지내고 있었는데 아내는 20년 전에 돌아가셨고 딸이 둘 있지만 연락이 끊긴지 몇년이 되었다고 했다. 형편은 넉넉치 않았고 많지 않은 치료비도 근근히 감당하고 있었다.
다혈질 성격으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버럭하곤 해서 처음엔 당황하기도 했지만 속정이 깊은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갈수록 C의 츤데레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외래진료를 시작하려는데 C가 진료실로 찾아왔다. 슬쩍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손에 꼭 쥐고 있어 꼬깃꼬깃해진 흰봉투를 책상 위에 툭 내려 놓았다. "명절인데 인사도 못하고 내 형편이 그렇다 아닌교. 커피나 한잔 하소." 하고 돌려드리려는 내 손을 뿌리치고 쌩하니 진료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봉투에는 2만원이 들어 있었다.
무릎이 아파 파스를 처방받는데도 비용 때문에 꼭 2장만 받아가는 C에게 2만원이 얼마나 큰 부담일지 알기에 코끝이 찡했다.
외래 진료가 끝나고 C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갔다.
"어르신, 저 이런거 받으면 안돼요. 마음만 받을께요." 하자 버럭 화를 내며 "내가 커피 꼭 사주고 싶어! 커피 좋아하잖아. 이 정도는 해주고 싶었어" 한다.
붉어진 얼굴, 핏대 선 목, 쩌렁쩌렁 호통에도 왠지 웃음이 난다. 민망함을 숨기려 더 크게 호통치는 것을 눈치채 버렸다.
"어른신 죄송해요. 화내지 마세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커피 잘 마실께요. 제가 커피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하자 작은 소리로 "맨날 들고 다니두먼"하는 대답에 결국 소리내 웃어버렸다.
돈봉투를 가지고 카페로 갔다. 오늘 따라 커피가 너무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