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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 courage Dec 02. 2023

감정의 쓰레기통

같은 병동에서 반복해서 전화가 왔다. 췌장암이 진행되어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환자에 대한 노티였다.

 

타과에서 수차례 항암치료를 하다가 우리과로 전과되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병이 너무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나이가 젊은 편인데다 치료 의지가 강해 항암치료를 시작했으나 안타깝게도 곧 황달이 심해져서 항암치료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곧 간부전으로 진행할 것이 예상되었고 한달 아니, 수주를 버티기도 어려울 듯 보였다.


환자는 진통제를 복용해도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는데 어떤 방법을 쓰더라고 안아프게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고 연명치료도 거부했다. 고용량 몰핀 투약을 시작했는데 약간 처지는 듯 했지만 의식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통증이 조절되어 한결 편안해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환자가 잠들면 불안해 하며 깨웠고 진통제를 줄여 달라고 요구했다. 진통제를 줄이자 환자는 고통스러워 했고 올리면 아내가 안절부절 못하며 병동 간호사를 힘들게 했다.


환자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자 문제가 아닌 일에 불만을 토로하며 화를 냈고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간호부는 점점 힘들어 했지만 죽어가고 있는 환자 앞에서 아내가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묵묵히 참고 그의 아내를 달래는 일이 반복되었다.


회진 때 환자가 나를 붙잡고 얘기했다. 집에 가고 싶다고.

몸이 너무 약해져 집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마지막 소원이니 하루라도 집에 보내주고 싶었다. 환자와 상의 후 주사로 들어가는 진통제를 먹는 약이나 패치로 전환 후 집에 가보기로 했다. 안되면 근처 병원으로 바로 가라는 당부와 그날 바로 우리병원으로 돌아와도 된다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또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런 환자한테 퇴원하라고 할 수 있느냐! 너네 부모라면, 너네 가족이라면 그럴거냐? 돼먹지 못했다. 먹지도 못하는데 집에서 죽으라는 얘기냐? 이렇게 응급환자를 어떻게 이렇게 다루냐! 내가 여자라서 무시하는 거냐? 직업윤리도 없는 것들아! "

간호사가 전화로 전해주는 얘기가 저 정도면 훨씬 더 심한 말을 퍼부었을 것이다.


"환자가 원하셔서 퇴원 준비하는 거라고, 퇴원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려도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간호사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난다.

"퇴원하지 말고 계시라고 하세요. 계속 입원해 계셔도 됩니다. 월요일에 다시 얘기해 볼께요." 라고 하자 "월요일에 많이 고생하실 것 같아요." 라며 내 걱정을 해준다.


그냥 "퇴원 못 합니다." 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했으면 고생하지 않았을텐데, 주치의 때문에 병동 간호부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렸다. 좋은 마음으로 한 배려가 독이 되어 돌아왔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말도 못할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의 감정을 의료진에게 쏟아내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내가 암에 걸리자, 친한 친구가 울면서 얘기했다. "야! 너 그 일부터 그만 둬! 그냥 내과 의사하면 되잖아. 왜 니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니? 그게 쌓여서 병이 된거야!"


주말이 지나면 병동 간호부에게 얘기해야 겠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그리고 환자와 그 아내도 만나야 겠다. 단단한 각오를 하고 감정의 쓰레기를 받아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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