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외래 환자는 외과에서 온 신환이었다. 십이지장암이 커지며 장을 막아서 장폐색이 왔는데다 다발성 간전이와 복막전이가 있어 암을 절제하지 못하고 우회로조성술만 시행한 환자였다. 수술 후 더이상 구토가 심하진 않지만 음식을 잘 먹지 못했고 몸무게는 몇개월 사이 10kg이 빠져 소매아래 들어난 팔목이 겨울 나무가지 마냥 앙상했다.
"어르신, 병이 생각보다 많이 깊어요. 다 없애긴 힘들지만 항암치료를 해서 가능한 오래 잘 지내실 수 있도록 치료해 볼 수 있어요" 라고 말씀드리자,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난 항암치료 안 할겁니다. 얘도 아픈데 내가 보살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해주고.. 짐이라도 되지 말아야지요. 그냥 이렇게 있다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라고 흐느꼈다.
같이 온 딸을 바라보니 비니를 쓰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암환우였다. 눈시울을 붉히던 딸이 엄마 손을 꼭 잡더니 항암치료 약제와 방법, 부작용에 대해 꼼꼼히 물어보고는 상의하고 다시 오겠다며 진료실을 나섰다.
딸이 혼자서 진료실로 돌아와 면담을 신청했다.
"저는 유방암이 전이가 되서 항암치료 중이에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다른 데 살고,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엄마를 돌봐줄 사람이 저 밖에 없어요. 엄마가 얼마나 사실 수 있을까요? 나이도 많고 몸도 약한데 항암치료를 해서 더 고통스럽진 않을까요? 저도 이렇게 힘든데, 뼈 밖에 없는 우리 엄마가 어떻게 견딜까요?"
전이성 암환자의 전쟁은 적이 엄청나게 세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끝도 없이 싸움이 반복되고 길어진 전쟁에 점점 지쳐가다가 결국 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더 큰 문제이다.
이 처절하고 힘든 전쟁터에 함께 서 있게 된 엄마와 딸이 가여웠다.
일주일 후 외래를 예약해 주었다.
다음주에 만난 엄마와 딸이 어떤 결정을 하던 나는 그들의 곁에 함께 있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