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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 courage Dec 19. 2023

노란 꽃이 피다

추워도 너무 춥다.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어 한참을 버티다 일어났다. 보송보송한 털 점퍼를 껴입고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 안 우유를 꺼내려 잡자 손끝이 아리고 저려온다. 이런, 신경병증이 또 문제이다. 다행히 우유를 손에서 놓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항암치료를 받은 후 생긴 말초신경병증은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다가 특히 추운 겨울이 오면 고개를 든다. 간혹 머그잔을 놓쳐 부엌 바닥이 엉망이 되기도 하고 길을 가다 허벅지 안쪽이 따갑고 져려와 주먹으로 허벅지를 때릴 때도 있다. 한참을 꼭 잡았다 놓을 때 피가 다시 통하면서 나는 찌릿하고 뜨듯하며 저린 느낌이 온종일 발끝을 맴돌기도 한다.

이렇게 추운 날, 오전 외래를 보려면 환자들은 아침 일찍 부터 얼마나 힘들었을까? 추위에 굳어진 관절이 삐그덕 대며 아파오고 손끝과 발끝은 저리다 못해 아플텐데..

한 환자가 외래진료가 끝나고 작은 가방을 건네주었다.
"시장구경 갔다가 예뻐서 샀어요. 추울 땐 발이 저리니까 따뜻하시라고요."

곱게 접혀진 양말에 수줍게 노란 꽃이 수놓여 있다. 가슴이 뜨끈해지더니 웅크려진 어깨도, 아침부터 저리던 손과 발도 점점 따뜻해진다.


내 마음에도 노란 꽃이 피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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