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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Jan 24. 2024

물론 골퍼도 소비자에 불과하다

#5 다섯 번째

골프를 좋아하는 101가지 이유 중

다섯 번째 이유

"물론 골퍼도 소비자에 불과하다."


꾸준히 삶과 골프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S가 카톡을 보냈습니다.

노안도 오고 손가락이 아파질 것 같아 전화를 했습니다.

"아우님 근데 버디팁을 안 주면 안 되는 분위기라고?"

"그렇데요. 캐디가 "와... 오빠 나이스 버디" 하면서 물개 박수를 엄청 쳐서 안 줄 수가 없대요."

"아... 그러니까 팁을 안 주면 좀 쪼잔해 보이게 분위기를 만드는구나?"

"네. 맞아요. 형님은 혹시 가시면 버디팁 엄청 가지고 가셔야겠어요."

"그래? 그럼 난 버디 챈스에서는 뒤로 퍼트 해야지!"

"아유, 형님, 그나마 남은 머리 다 빠져요~!!!"

유쾌한 대머리 농담으로 S와 함께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근데 그린피도 이젠 안 싼데 태국을 왜 가는 거야?"

"18홀만 치면 안 가겠죠! 근데 36홀 이잖아요."

"아... 그렇구나. 그게 있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네요. 너무 사람들이 많아서 6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아예 4번 홀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네요. 너무 밀려서요."


문득 20년 전, 어느 태국 골프장, 이른 새벽 어떻게든 먼저 나가려고 이런저런 수단을 강구하던 팀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고 그걸 현지에 상주하는 직원이 해결하려 애쓰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보다는 동남아로 떠나는 골퍼가 훨씬 적었을 때인데도 그랬는데... 마침 불어오는 맞바람을 타고 하늘로 비상하려는 앨버트로스가 그 긴 날개를 펴듯 상상이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별로 멋진 그림이 아니라 바로 상상을 끝냈습니다.


https://youtu.be/1aYk7dzeWpc


S는 상당한 재력가지만 자신만의 가치 평가 기준에 준해 소비하는 사람입니다. 

필요한 만큼의 가치를 구매하고 비싸다고 해야 할 소비를 고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얼마든지 비싼 골프장을 다닐 수 있는 골퍼입니다. 


그런 S가 짝꿍 J와 작년 처음으로 일본 큐슈로 부부 골프 여행을 다녀왔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S부부와 며칠 후 부부 모임을 가졌었죠.

"아이고 형님~!"

악수를 청하는 S의 얼굴에 감동이 보였습니다.

여행에서 마음을 파고든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형님. 저 정말 감동 먹었어요. 형님이 그랬잖아요. 일본 골프장에서는 골퍼를 골퍼로 대접한다고요! 형님이 했던 이야기가 어떤 건지 정말 알 것 같아요."

"오오~! 그래? 우리 아우님도 그걸 느꼈구나!"

"형님 C코스 가보셨어요?"

"아니, 못 가봤지."

"캬... 저 거기에서 정말 감동 먹었잖아요. 골프장이 좀 외진데 있었어요. 내비게이션이 있는데도 살짝 길을 잘못 들었고 조금 늦게 골프장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클럽하우스 입구 백 내리는 곳 근처에 팻말이 세워져 있더라고요. 뭐지 하고 보는데 제 이름이 쓰여있는 거예요!"

"공항 출국장 앞에 콜택시나 여행사에서 들고 있는 것처럼?"

"네, 맞아요. 외국에서 온 저를 환영하려고 적어 놓은 것 같았어요, 프런트에서도 얼마나 잘 대해주던지 몰라요."

"이야. 나도 그런 경험은 없었는데... 대박이다."

"정말 감동이었어요. 그리고 다녔 던 모든 골프장에서도 형님이 말한 '골퍼'가 되는 경험을 했어요. 프런트건 앞뒤팀이건, 경기과 직원들 모두, 저를 한의 골퍼로 생각하고 대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전체 지불해야 했던 비용 5만 원에서 카트피와 점심을 제외하면 그린피는 겨우 1만 원. 한국에서 그린피가 20만 원정도인 골프장에 비하면 클럽하우스가 좀 낡은 것 빼고는 조금도 부족할 게 없는 큐슈 골프장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며 S가 말했습니다.

"지난번 말레이시아에서 돌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인생 골프를 쳤다고 말했던 입을 꿰매고 싶어요. 물론 말레이시아 골프가 너무 훌륭하지만 정말 일본 골프는 여러모로 말레이시아 보다는 한 수 위네요."

"아이고! 아직 참어~! 아마 일본 골프장을 더 다녀보면 한 수가 아니라 몇 수 위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ㅎㅎ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저는 이제 일본어 공부 좀 하려고요. 자주 다닐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골프만 본다면 일본이 단연 최고인 것 같아요."

"그래. 근데 좀 다르지만 미국 골프장을 다녀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입을 꿰맬 일은 없을 거야~!"

 

맛있는 숯불갈비를 먹고 커피숖에서 수다를 떨고 헤어졌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언젠간 S, J 부부와 함께 미국 골프장을 다녀 볼 기회가 있겠지?




일본처럼 대개는 30년이 넘어 낡았지만 그래도 근사한 클럽하우스는커녕 옷을 갈아입을 락카도 없는 곳이 많은 미국 골프장.

- 일본 정도 그린피를 내고 치려면 자칫 백을 메거나 풀카트를 끌며 걸어 쳐야 하기도 하고.

- 가끔은 앞뒤로 사람을 구경하기 힘들고.

- 모르는 사람과 강제로 조인이 되기도 하고.

- 클럽하우스에서 파는 음식이라야 핫도그나 햄버거가 대부분이고.

- 일찍 도착하면 일찍 도착하는 대로 늦게 도착하면 늦게 도착하는 대로 순서가 조정되고.

- 사정이 생기거나 동반자가 늦으면 조금 늦게 나가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놀라기도 해야 하고.

- 무료로 혹은 카트피만 내고, 해가 지는 시간 전에는 카트를 꼭 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마음껏 리플레이(Replay: 18홀 마친 후 추가 플레이)를 해 보는 미안함도 느껴야 하고. 

- 할아버지, 할머니,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미국 사람들이 원래 존댓말도 없지만 너무 허물없이 나를 한 인간으로 대하며 이야기를 걸고 질문을 쏟아내는 당황스러움도 겪어야 하고.

- 주차장엔 허름하고 낡은 오래 잘 사용된 현재 가치는 매우 적은 차나 트럭, 최고급 스포츠카까지 그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차장까지...


한국에서 18홀 한번 치는 금액이면 운 좋으면 72홀도 가능한 미국 골프.

그런 미국 골프를 다녀오고 S와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또 우리 감동 잘 받는 S는 어떤 감동 보따리를 풀어낼지....

궁금합니다.



아마 이런 대화 내용이 아닐까 싶네요.

"어땠어? 미국 골프?"

"일본에선 뭔가 골퍼로서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은 강했지만 개인적 혹은 인간적인 친밀감은 조금 덜 느껴졌어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골퍼로 대접받는 느낌보다는 그냥 인정받는 느낌? 하지만 마치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을 공원에서 산책하다 만난 것 같이 허물없는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대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맞아. 아주 정확해. 한국에서는 골프장에 가면 골퍼라기보다는 소비자로 대접받는 기분이 들지. 꽤 많은 돈을 지불하지만 골퍼로는 인정이나 대접받지 못하는... 그냥 소비자가 돼."

"그럼 태국에서는 관광객이 되는 거네요. 골퍼도 아니고 소비자도 아니고 외국에서 온 돈 잘 쓰는 관광객이요."

"그러게~! 같은 골프 같지만 참 많이 다르네!"

"그나저나 저도 형님이 말레이시아에서 골프를 쳐 보셨으면 해요. 형님이 어떤 느낌을 가질지 궁금해요. 말레이시아는 태국과는 정말 다르거든요. 물론 미국과 일본과도 많이 다르고요."




상상 속 대화가 일본이나 미국의 골프장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살짝 아립니다.

2002년 큰소리로 외치며 흠뻑 자랑하고 싶었던 대한민국이 떠올랐습니다.

세상 어디에 있는 골퍼를 만나도 한국은 골퍼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대접하는 곳이니 꼭 한번 가서 쳐보라는 자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하기에 저는 오늘도 한국 골프장에서의 소비는 줄이려 합니다.

소비자로 존재하는 골퍼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외침입니다.


'짐이 곧 국가'라는 옛날 헛소리와는 달리 국민의 수준은 국가와 국가 지도자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골프장도 그렇습니다. 골퍼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힘이 모여, 세상은 바뀌어 왔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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