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과의 소통이 더 어려운 이유
책이나 영화, 혹은 SNS를 통해 공적으로 자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신기한 특징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멋지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가정에서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시는 의외로 흔하다.
수많은 사람을 상담하며 관계를 회복시킨 사람이 정작 자신의 가정에는 불화를 안고 살아간다거나,
가족 간 소통을 강조하던 사람이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식이다.
과거 내가 초·중학교 시절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도 그런 분이었다.
단에서는 거룩하고 사랑이 가득한 말씀을 전하고, 예배가 끝나면 유쾌하게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분.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다혈질에 가정폭력도 수차례 있었다고 한다.
이런 모순된 모습은 남의 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다.
소통과 공감에 대해 글을 여러 번 썼지만, 정작 나부터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현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나는 ‘시간이 쌓인 관계일수록 노력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관계 속에서 쌓인 이미지가 너무 크고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사람의 취향이나 성향, 사고방식은 자연스럽게 바뀐다.
하지만 관계라는 건 그 변화를 매끄럽게 반영하지 못할 때가 많다.
좋은 감정만 쌓이는 관계는 없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이 켜켜이 쌓였다면, 그것이 변화를 향한 발걸음을 잡아끌 수도 있다.
결국 “지금”을 빠르게 정리하고 바꾸지 않으면, 관계의 과거가 현재를 계속 방해하게 된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에게 오히려 남보다 못하게 대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바뀌어버린 상대방에게 더 이상 내가 맞지 않게 될 수 있으니까.
반대로, 바뀌어버린 상대방이 더 이상 나에게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또한 변화하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나는 아쉬운 소리를 듣는 게 지독하게도 싫어서, 또다시 감정이 상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할 때가 있다.
그렇게 애를 썼던 만큼 나중에 말이 바뀌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느낌에
기분이 상하며 “왜 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하며 싫은 소리를 했던 것 같다.
나부터 그런 마음을 내어놓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바라볼 수 있게 해야겠다.
그리고 반대로, 나도 가끔씩 용기를 내어 표현을 하고, 긍정적인 변화의 노력을 해보겠다.
우리는 종종 한결같은 사람을 이상적으로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은 자잘하게, 자주 변한다.
어떤 사건을 겪거나 새로운 관점을 접하면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관계 속에서도, 말과 행동이 늘 일치하길 바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일 수도 있다.
생각이 유연하다면, 그 변화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서로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존중하고, 다시 맞춰가려는 노력이 있다면
겉과 속이 다른 삶에서 점차 멀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겉과 속의 간극의 핵심은, 결국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 비롯된
자신과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함께한 시간이 오래일수록
더 솔직하고 유연해질 용기가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