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까?
대화를 하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이 이야기를 이 사람에게 몇 번째 듣는 것일까.’
‘내가 이 이야기를 이 사람에게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지치는 느낌이 든다.
그런 감정을 겪어보았기에, 나 또한 누군가에게 같은 피로감을 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한다.
혹여 비슷한 말을 다시 꺼내야 할 일이 생기면,
“저번에 얘기했던 거긴 한데…”라고 조심스레 전제를 단다.
그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것을, 내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다는 표시처럼.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반복되는 대화에 민감해졌을까.
잠깐,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 아버지가 PC방 사장님이었다.
그 덕분에 친구와 함께 밤새 게임을 할 수 있었던 날이 있었다.
그게 무척 특별한 기억이라,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친구와 버스를 타고 다닐 때면, 그 장소만 지나도 나는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맨날 그 얘기만 하냐.”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얼어붙었다.
처음으로 면박을 당한 데다, 마음 한켠이 쿡 찔린 듯 아팠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내 말을 되돌아보게 됐다.
혹시 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왜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하게 될까.”
그 질문의 답은, 아마도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엔 그저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고,
조금 더 자라서는 억울한 감정을 공감받고 싶어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뎠는지를 이야기할 때,
그 시간을 견딘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다시 안아주고 싶을 때,
같은 말을 꺼내곤 한다.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은 마음속에만 가두기엔 무겁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감정을 꺼내, 말이라는 형식으로 토해내고,
상대방의 공감과 인정을 통해 천천히 소화해 간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듣는다는 일은 때로 꽤 가치 있는 일이 된다.
비록 지겨움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아직 덜 익은 감정을 함께 씹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나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한 곡만 반복해서 듣다 보면 지겨워지는 법이다.
변주 없는 대화는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앗아가고,
마침내 권태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모임에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책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품고,
글을 통해 그것을 내 언어로 정리하며 마음속에 뿌리내린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 속 내 감정이 혹시 미처 소화되지 않은 것이었는지 돌아보기도 한다.
내가 던진 말이, 상대에게 피로감이 되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레 되짚어본다.
그러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반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
어머니의 잔소리는 언제나 같았지만,
어느 날 그것이 들리지 않으면 이상하게 허전했다.
그건 잔소리가 아니라, 애정의 표현이었다.
여전히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반복은 때때로 지겨움이 되지만,
어떤 반복은 안심이 되고,
또 어떤 반복은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담긴다.
결국 반복의 의미는
‘누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반복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그리고 나 자신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