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는가
글을 쓰기로 결심했지만, 그 결심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매일 한 편씩 완성하려 했지만, 하루는 한 줄을 쓰는 것조차 버거웠다.
도망치는 글감을 쫓아 머리를 쥐어짜며 한 문장씩 기워 나가는 날들이었다.
글을 완성하지 못한 날이면 ‘내가 이러려고 직장을 그만뒀나’ 하는 자책이 밀려왔다.
결국 이틀, 혹은 사흘에 한 편을 쓰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왜 글을 쓰기로 한 걸까?
왜 굳이 매일 한 편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던 걸까?
그 시작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선택의 순간마다 우유부단했고, 방향이 없었다.
심지어 내 인생이 타인의 의도에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게 없었다기보다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편이 더 맞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생각을 글로 풀어내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머릿속을 혼자만 맴도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거라고.
한두 번으로는 부족하다.
여러 번 반복해서 써보고, 다시 들여다보아야
후회 없는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쓰기가 내 삶 전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시기에 반드시 습관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아무도 없는 트랙 위에서 혼자만의 경주를 이어가던 어느 날,
그 길에 독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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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마치 혼자 걷는 줄 알았던 길 위의 동행 같다.
나와 함께 글을 쓰는 것도,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조언하는 존재도 아니다.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글을 쓰는 나에게 분명한 영향을 준다.
처음에는 ‘아무도 읽지 않더라도 나를 위해 쓰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내 글에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얻었다는 반응을 받자
놀랍도록 큰 동기부여가 생겼다.
그땐 글도 얼마 없었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매일 한 편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남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을 책을 읽거나 다음 글을 구상하는 데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는 ‘오늘의 할 일을 다 했다’는 이유로 퍼져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안일해질 무렵, 또 한 명의 독자가 내게 다가왔다.
내 블로그 글을 정주행 했다며,
“더 많이 써달라”고 말해주었다.
그 순간, ‘나도 더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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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한 편을 다 쓰고 나면 진이 빠져 하루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한 편을 쓰고도 자리에 다시 앉는다.
완성까진 아니더라도, 다음 글의 서론을 잡고 생각을 정리해 둔다.
글의 분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글을 대하는 마음은 분명 달라졌다.
나만의 목표 위에, 독자의 기대라는 무게가 얹혔다.
그 무게는 가볍지 않지만,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고 독자는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안주하지 않게 한다.
하루를 온전히 들여 글을 쓰고, 저녁까지 여러 번 수정하고 다시 고쳐본다.
그렇게 탄생한 글은 나만의 창조물이 된다.
하지만 소중히 여기는 만큼, ‘완벽하다고 착각하는 위험’도 함께 따라온다.
글이 멈춰버리는 순간은, 늘 그런 때였다.
내 글이 독자와 소통하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면
완벽함보다 열려 있음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에 글은 피드백을 통해 다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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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글이 짧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막 집중하려 하면 끝나버린다는 말이었다.
당시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나아지기 위해 다시 그 피드백을 떠올렸고
지금은 조금씩 적용해 보며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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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겠다.
가장 먼저는 나를 위해, 그리고 이 글을 바라봐주는 이들을 위해.
언젠가 내 글을 기다리는 이들이 더 많아진다면,
그때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힘과 동기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내게 힘을 준 이들에게,
언젠가는 나도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한 문장을 꺼내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