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어서 시작된 내 편 찾기

결핍에서 시작된 다정함의 이유

by 에밀
“나는 애정결핍이라서 사람들에게 더 다정하려고 해.”


어느 날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가볍게 던져졌지만, 내 안의 오래된 기억을 끌어올렸다.
나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 사실 그런 순간이 많았다.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나를 좋게 봐주기를 바랐고, 싫은 소리를 삼키며 눈치를 봤다.
다정함이라는 언어로 사랑받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 학창 시절 다녔던 교회를 몇 달간 다시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는 사모님을 만나, 집단 상담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내면아이 치료를 통해, 오래도록 무심히 지나쳐왔던 내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동생이 태어난 후의 어느 밤이었다.
나는 안방에서 작은방으로 옮겨져야 했다.
물리적으로 쫓겨난 것은 아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완전히 밀려난 느낌이었다.


어릴 적, 나는 어머니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들으며 안방에서 잠들곤 했다.
하지만 동생이 자라자, "오빠니까", "이제 컸으니까"라는 말과 함께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어두운 방이 무서웠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작아진 목소리를 들으며 겨우 잠들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어머니의 사랑도 언젠가는 내게서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동생은 작고 약했으니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그걸 이해하면서도, 사랑이 줄어든 것만 같은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내 편을 찾고 싶었다.
나만을 바라보고, 나를 애틋하게 감싸줄 사람.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내 편을.


하지만 어린 시절,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진주를 찾는 것만큼 어려웠다.
남자아이들은 서로를 놀리고 깎아내리기 바빴고,
여자아이들과는 가까워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중학생이 되어 게임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게임이었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조금씩 나의 이야기도 건넸다.
잘 들어주는 것,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하고 싶은 사람과, 잘 들어주는 사람.
그 조합이라면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될 수도 있겠다고 믿었다.


20대가 되자, 애정결핍을 채우고 싶은 마음은 더욱 거세졌다.
이성과 대화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나는 여전히 소심했고,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렸다.
만난 사람들은 방어적이고 조심스러웠다.


대학 생활은 가십으로 넘쳐났고, 작은 일도 쉽게 소문이 되었다.
나는 그런 환경이 피곤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에 홀린 듯 사람을 찾아 헤맸다.
굶주린 사람처럼 시작한 첫 연애는 두 달도 되지 않아 끝났다.


이후로도 몇 번의 연애를 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대 이하의 성취에 열등감을 느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고, 타인의 애정을 통해 나를 채우려 했다.
스스로를 먼저 살피는 방법을 몰랐다.


서른을 앞두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여정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는 걸.


‘내 편 찾기’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그동안 비켜가려 했던 감정들을 다시 밟아보려 한다.



다정함은 결핍에서 피어난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싶어서 애쓴 시간들은,
나를 더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언제나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내 안의 허기를 감추기 위한 기만이기도 했다.


그런 나를 안다고 해서 곧장 용서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덮어두지 않고 마주하려 한다.


결국 나는,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였고
이제는 그 아이를 알아봐주는 내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의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주려 한다.
마침내, 내 편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