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 사용설명서 17화

곱창돼지 오영오-17

by 주원

고소를 결심했을 무렵은 2018년 10월로 영오와 처음 가상화폐 투자로 얽힌 지 10개월가량 시간이 흐른 후였는데, 그동안 재석이와 함께 영오를 세 번 정도 만났던 것 같다. 영오는 만날 때마다 맥락 없이 본인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주로 본인이 하고 있는 사업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레퍼토리는 다 비슷했는데, 주로 본인이 하는 사업을 연예인 혹은 유명한 기업이 관심을 가져 그들과 같이 사업을 하기로 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예를 들자면, 본인이 키오스크 사업을 시작했는데, 기존 키오스크 대비 너무나도 편하고 빨라서 여기저기서 설치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왔는데, 그 당시 유행하던 공중파 음식관련 방송에서 본인에게 먼저 판권을 사가, 그 방송에서 나왔던 음식점들만 키오스크를 넣어주기로 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난 영오가 사기꾼이란 걸 인지하기 전에도 영오의 허풍을 100% 믿지는 않았고, 키오스크 사업을 하는데 그래도 조금 팔렸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영오가 비교적 소액인 변제금을 주지 못하고 차일피일 지급일자를 미룰 때마다 점점 영오에 대한 믿음이 없어져갔다. 그래도 일말의 믿음이 있었지만 조우현을 만나고 나서 바지 주머니의 먼지한 톨 같았던 믿음마저 사라졌다. 위의 예시를 들자면, '키오스크 사업을 하는데 조금 잘되나 보다 → 키오스크 사업을 하고 싶은가 보다 → 키오스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심지어 영어로 키오스크를 쓸 줄도 모른다에 전재산을 걸 수 있다'로 바뀌어갔다. 마치 수학의 극한 공식처럼, 영오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신뢰도는 0에 수렴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재석이었다. 재석이는 나와 같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도 아직 최면에서 풀리지 않은 아이처럼 영오의 말 같지 않은 거짓말을 아직도 믿고 있었던 듯했다. 내가 고소를 진행한다고 하였을 때, 재석이도 변호사 선생님처럼 형사는 건너뛰고 바로 민사소송만 걸자고 하며 변호사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해주었는데, 요약하자면 이번 사건이 사기에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재석이가 왜 똑똑해졌는가 궁금한 독자들이 있을 수 있는데, 재석이의 매형이 검사였고, 재석이가 매형에게 이번 건에 대해서 자세하게 물어봤었다고 한다. 난 당연히 재석이 말을 듣지 않고 형사고소를 한다고 통보하였고, 재석이의 끈질긴 설득 끝에 만약 형사소송에서 패소한다면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겠다고 했었다. (추후에 밝히겠지만, 굉장히 멍청한 선택이다. 재물과 관련이 있다면 무조건 민/형사를 동시에 걸길 바란다.) 사실 내가 민사를 동시에 걸지 않는 이유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나는 꼭 영오의 이마에 사기꾼 도장을 꾹 찍어주고 싶었는데, 만약 민사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을 알면, 형사소송 사법기관에서 심각하게 다루지 않을 것 같았다.


변호사 선생님을 만나서 소장을 쓰기 전에, 영오에게 내용증명을 보내야 하는 절차가 있었다. 내용증명은 정해진 양식에 맞추어 내용을 간단하게 적으면 되는데, 문제는 영오의 주소였다. 재석이가 알던 영오의 주소에는 등기를 떼보니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피고소인의 주소를 모르면 주소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이것 또한 정부기관에 정당한 사유와 자료를 가지고 의뢰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울 수 있는데, 나는 조우현과 만났을 때 그가 영오의 시그니엘 집에 놀러 간 것을 인증하는 사진에 있던 영오의 대문 번호를 기억하였다. 반신반의하며 내가 기억했던 주소로 영오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고, 전달이 안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곱창집에도 동일한 내용증명을 보냈다. 내용증명은 직접 우체국에 가서 보내야 하는데, 꽤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며칠 후 두 군대 모두 내용증명을 받았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수취인은 모두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기억한 집 주소에 영오가 살고 있던 게 맞았으며, 심지어 영오와 9월에 결혼한 여성분이 영오 대신 받은 것이었다. 영오의 부인을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개략적으로만 말하자면, 선을 봐서 결혼했고 법조인이라고 들었다. 아마 보통의 회사원과 달리 내용증명의 의미를 알고 열어보았을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생각했다.


내용증명이 모두 전달되었는대도 영오의 답신이 없어 경찰서에 고소를 진행하려는 찰나, 재석이에게 급하게 연락이 왔다. 영오가 비슷한 송사 이력이 있고, 이미 xx경찰서와는 금전적인 거래를 통한 유착 관계가 있으니, 고소를 할 때 경찰 대신 검찰에 고소를 접수하라고 조언하였다. 그 당시 나는 영오가 했던 거짓말의 일부를 아직도 재석이가 믿고 있는 게 매우 답답한 상황이어서 엿이나 먹으라고 하고 무시했지만 재석이가 몇 번이나 끈질기게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경찰서에 인맥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영오의 허풍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주로 일을 할 때 상사와의 의견 대립이 있으면 앞에서는 알겠다고 하고 뒤에서는 내 생각대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주로 가정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나와 상대방 모두 의견을 굽힐 일이 없어 보이면 동일하게 행동하곤 한다. 물론 재석이에게도 알겠다고 하고 그냥 선생님을 통해서 경찰서에 고소를 하였다. 일단 영오의 집 소재지가 xx경찰서 인근이 아니고 yy경찰서였기 때문에 더욱 쉽게 무시할 수 있었다. 지나고 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경찰과 유착 관계가 의심되지 않더라고 형사 고소는 검찰을 통해 하는 것이 몇 배 안전한 건 사실이다. 보통 형사들이 애매하다고 판단되는 건은 깊게 보지 않고 뭉개려고 할 수 있는데, 검찰에서 접수되어서 내려온 건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추후 검사 지인을 통해 검증한 이야기다.)


몇 주가 지난 후 yy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영오의 요청에 따라 xx경찰서로 사건이 이관되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또 몇 주가 지난 후 xx경찰서에서 배정받은 형사와 함께 영오를 만나 삼자대면을 하면서 진술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안내받은 시간에 맞추어 형사를 만나러 갔는데, 형사의 소속된 팀은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경제 x팀이었고, 크지 않은 사무실에 5명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형사는 4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는데, 인상이 매우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도착했을 당시가 9시였는데, 형사가 처음 건넨 말은 나는 한 시간 전에 불러서 자초지종을 듣고, 영오는 10시에 불렀으며, 3자 대면은 30분 정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내가 말을 하는 동안, 형사는 나의 말에 공감하는 척을 하면서도 몇 번이나 왜 이걸 굳이 형사 사건으로 진행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어떻게든 민사로 사건을 돌리려고 했었던 것 같다.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했지만 형사에게 또 이야기해 주었다. 일단 음식점을 창업을 하면서 투자금을 조금씩 삥땅을 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처음 계획할 때부터 투자금을 부풀려서 본인이 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지분을 얻은 것에 모질라, 계속해서 금전적인 요구를 한 점을 미루어 보아 기망과 편취의 목적이 명백하게 있었던 점이 사기라고 생각하며, 운이 좋아서 내가 걸린 거지 만약 정말 주머니 사정이 힘든 사람이 걸렸다면 몇 배나 더 고통스러웠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공익차원에서 범죄 이력을 남기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내 확고한 의견을 들은 경찰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하였다.


"혹시 오영오 씨의 부인이 법조인이 신건 알고 계신가요?"

"네 알아요 어쩌라고요 근데"

"아 혹시 아시나 해서요..."


마지막 저 멘트가 찜찜해서 저거에 대해서 더 묻고 싶었는데 영오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마침 도착했다.


-제1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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