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 사용설명서 18화

곱창돼지 오영오-18

by 주원

영오가 도착해서 착석을 하였는데, 지하철에서 매너 없게 앉은 586 아저씨처럼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던 게 생각이 난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껄끄러운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속으로 싫어하거나, 회사에서 업무 하다가 의견 대립이 있어 좋지 못한 상황이 이어지더라도 항상 마지막은 좋게 풀고 가려는 노력을 한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 나 자체가 어색한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도 있고, 언제 어떻게 그 사람과 다시 마주칠지 모르는데 괜히 나와 상대방의 관계 때문에 주변사람들까지 신경 쓰게 하기 싫은 이유 등이 있다. 사실 영오와 경찰수사관과 삼자대면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는데 영오의 뻔뻔한 얼굴을 보니 그런 어색한 감정은 사라지고 생각지 못한 분노가 올라왔다. 마치 삼각관계처럼, 영오는 경찰관의 얼굴만 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영오를 째려보고 있었는데 영오는 수사관에게 진술을 하는 한 시간 동안 한 번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변호사 선생님이 써주신 고소장을 토대로, 수사관이 영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영오가 하는 대답은 대부분이 거짓말이었는데, 영오는 내가 예상한 대로 가장 멍청한 수를 가지고 나왔다. 계속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해서 독자들이 피로감을 주는 것 같지만, 연재를 뜨문뜨문하다 보니 까먹었을까 봐 다시 짧게 있었던 일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영오가 주원에게 주원의 가상화폐 계정에 있던 돈으로 대리 투자를 요청(조건은 3일 안에 투자한 것을 정산해서 이득을 보면 반반 분배, 손실을 보면 100% 손실에 대한 변제)

② 약속된 3일이 지나고 투자한 가상화폐 종목이 큰 손실을 보았지만, 주원이 매도 기한을 연장해 줌

③ 가상화폐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었는데, 이때 영오가 주원에게 가상화폐 매도 후, 매도 금액 전달을 요청하며 원금은 6월에 갚겠다고 함. 이 금액이 6500만 원 상당.

④ 주원은 원금의 변제 기한은 늦춰주었지만, 가상화폐를 매도하지 않고 화폐 자체를 영오의 가상화폐 지갑으로 보내줌.

⑤ 이로 인해 가상화폐에 대한 실질적인 금전 거래 내역은 없는 상태

⑥ 주원이 음식점 투자금 7000만 원을 영오에게 이체

⑦ 영오와 주원이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며 주원은 총 원금 1억 3500에 추가로 2000만 원을

더 받기로 함 (추가 비용의 원인은 영오의 계약내용 불이행 등의 사유)

⑧ 영오는 7500만 원 상당을 변제한 후, 더 이상은 갚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주원이 사기로 고소를 진행함.


여기까지가 정리된 상황인데, 영오는 역시 위 ⑤의 이유를 토대로 본인이 받은 돈은 7000만 원이 전부이며, 이미 7500만 원 이상의 돈을 갚았기 때문에 더 이상 변제할 금액이 남아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즉 가상화폐 관련된 채무는 없던 일이라고 발뺌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영오에게 가상화폐 투자에 있어 많은 자비를 베풀었다. 기본적으로 변제 기한을 6개월 이상 미뤄주었으며, 주겠다고 한 다섯 달 치의 이자를 한 번만 받았음에도 이자에 대한 언급을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받기로 한 변제일에도 30% 이상을 덜 받은 상태로 변제기한을 다시 한번 미루어 주었다. 이러한 배려에도 뻔뻔하게 나오는 영오에게 물론 화가 났지만 어찌 보면 영오가 갖고 나왔으면 하는 수였다.


내가 영오에게 소송을 걸며 바라지 않았던 것은, 영오가 사실관계를 인정하며 인정으로 호소하는 것이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투자를 권유하고 잃으면 본인이 변제해 주겠다고 하는 말은 친구끼리도 종종 할 수 있는 말이다. 만약 영오가 법정에서 "내가 투자를 권유한 것은 인정하지만, 잃으면 변제하겠다고 한 말은 일종의 허세였으며, 일정 부분 책임을 느끼고 있어 조금은 변제하도록 하겠지만 원금을 다 보장하는 것은 너무 과분하다"라는 주장을 했으면 아마 내가 상당히 불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오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하기를 반복했다.


"아니 왜 자꾸 묻는 말에 다 거짓말로 대답을 해요! (내가 증거로 낸 대화내용을 보여주며) 이거 본인이 카카오톡으로 대화한 내용 아니에요??"

경찰관의 언성과 행동이 점점 과격해졌다.

"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핸드폰을 잃어버려 대화내용이 없어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전혀 모릅니다."

영오가 수줍게 이야기했다.


소장을 만들면서 내가 선생님께 부탁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영오는 무조건 거짓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소장에 모든 내용을 적지 말고, 빠져나갈 구멍을 준 다음에 영오가 거짓말을 할 때 카운터를 치는 전략으로 가자고 한 것이다. (고소장의 내용을 영오가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함정을 파려고 한 것이다.) 나는 체스와 바둑처럼, 영오의 다음수를 예측하고 카운터를 먹이고 싶었는데 영오가 상상 이상으로 수준 낮은말만 반복해서 오히려 맥이 굉장히 빠졌다. 자동차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영오의 투명한 거짓말이 어찌 보면 가장 예측하지 못한 수라고 볼 수 있었다.


영오가 온 지 한 4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그때부터 경찰관은 영오에게 맹목적으로 화를 내고 있었고, 나에게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그때 속으로 '사기죄가 성립이 안되긴 뭐가 안돼, 바로 빨간 줄 생기겠는데?'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경찰관이 영오를 말로 꾸짖을 때마다 추임새를 같이 넣어주었다.


경찰관 "계속 기억 안 난다고만 하면 답니까? 분명히 가상화폐로 인한 채무를 인정하셨잖아요"

주원 "인정해라 임채무같이 생긴 놈아"

경찰관 "주원 씨 제발 가만히 좀 계세요"

주원 "넵"

영오 "저는 그냥 좋은 종목이 있어서 알려준 것뿐입니다"

경찰관 "가상화폐 계좌로 가상화폐 직접 받으셨잖아요!"

영오 "저는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주원이 그냥 일방적으로 준겁니다"

주원 "내가 언제 야 너 진짜 xx 뒤질래? 야 그냥 너 나한테 한 대 맞으면 다 없던 걸로 해줄 테니깐 죽빵한대 맞을래?"

평정심을 유지하던 내가 정말 화가 나서 영오에게 화를 내고 주먹으로 치는 시늉을 했다. 여기서 하나 놀란 게 있었는데 진심으로 화를 내었는데도 영오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때 경찰관이 처음으로 나한테 크게 화를 내었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어른 앞에서 뭐 하는 행동이냐고 하며 한 번만 더 욕하고 물리적 위협을 가하면 유치장에 가둔다고 하였다. 수사관도 나이 운운할 만큼 들어 보이지 않아 나이를 물어보았는데 42세라고 대답했고, 정말 때려서 유치장을 가면 며칠 동안 가냐고 물어보았더니 적어도 3일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혹시 핸드폰을 갖고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안된다고 하길래 잠시 고민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욕한다고 유치장에 넣을 것 같지 않아 한 번 더 영오에게 욕을 하였다.


이후에 몇 가지 심문을 더 진행하고, 삼자대면이 끝날 때쯤, 경찰관이 나와는 좀 더 할 말이 있으니 영오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영오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인사도 하지 않고 허둥지둥 뛰어 나갔다. 나는 경찰관에게 더 할 말이 모가 있냐고 물어보니, 혹시 나가다가 내가 영오를 폭행할까 봐 그런 거라고 5분 뒤에 나가라고 하며 믹스커피를 한잔 타주었다. 나는 영오에게 조금이라도 겁을 주려고 뜨거운 믹스커피를 거의 원샷하다시피 하고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하며 화장실 갔다가 들어가 본다고 하고 아까 앞에서 욕설한 것에 대한 사과와 동시에 뛰어나가서 주차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영오는 온대 간대 없고 주차장에선 영오의 돼지 비린내만 폴폴 나고 있었다. 영오와의 추격전을 회상하면 마치 초등학생과 같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집으로 복귀하고 며칠 뒤 경찰관에게 전화가 왔다.


-19화에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시오패스 사용설명서 1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