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 사용설명서 19화

곱창돼지 오영오 19

by 주원

필자는 언제나 사람이나 사물, 현상 등을 볼 때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원의 시대에 유행했던 광우병/촛불 선동 등에 휩쓸린 적이 없이 평탄히 살아왔다. 자극적인 뉴스 보도에도, 분명히 깊게 들여다보면 이면에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성범죄자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고 판사가 엄청나게 욕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판결을 잘 뜯어보면 판사로서는 시스템 상 본인이 최대한의 형벌을 내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요즘은 여론에 따라 형량을 예전보다 적절하게 주는 추세인 것 같다. N 번 방 가해자가 징역이 40년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성범죄 이력이 아니라 범죄조직을 만들었다는 죄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이처럼 판사가 피의자의 범죄에 대해 임의로 형벌을 줄 수 없고 죄목별로 정해진 형량 안에서 판결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범죄의 형량이 상식적이지 않더라고 해도, 판사 개개인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제대로 확인한 것은 아니고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과 경험으로 사실이 아닐 수 있음)


재석이가 영오가 xx경찰서와 금전으로 인한 유착관계를 맺었다고, 고소를 할 때 검찰에 하라고 했을 때도 나는 믿지 않고 영오의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영오가 영오의 주소지 인근에서 배정된 yy경찰서에서 xx경찰서로 사건의 이관을 요청했을 때도 나는 믿지 않았다. 설령 xx경찰서에 아는 사람이 몇 명 있다고 하더라도, 죄목이 명백하다면 제아무리 뒷돈을 찔러대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경찰관과 있었던 삼자대면에서 영오의 거짓말에 경찰관이 다분히 화를 내는 모습에서 더욱 확신했다. 3자 대면이 끝난 후, 2주쯤이 지난 시점에서 경찰관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경찰관이 건네는 안부 인사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묻어나는 느낌이 들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경찰관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뭔가 영오가 거짓말을 한 정황과 사실은 차고 넘치나, 사기죄를 성립시키기에는 어려우며, 의심되는 몇 가지 건의 대해 사실관계를 따지어 보았을 때 해소되는 부분도 있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경찰관은 사건을 불송치하려고 한다는 의견을 보였으며, 금액이 적지 않기 때문에 민사소송을 꼭 진행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그 전화통화는 내 삶의 열받는 1분 중 탑 10 리스트에 드는 순간이었다. 나는 격분하며 경찰관한테 욕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했더니 일방적으로 경찰관이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 난다.


회사에서 분을 삭이고 다시 급한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두 시간 정도 후에 다시 경찰관에게 전화가 왔다.

아까는 너무 흥분한 거 같아서 다시 차분하게 대화를 하자고 해서 나도 무례하게 군 점에 대해 사과를 하며 말을 길게 하지 않고 의견을 전달했다. 경찰관 입장에서 혐의 없음으로 검찰에 올리는 건 개인의 의견이니깐 인정하겠지만, 만약 불송치를 한다면 앞으로 표적을 xx경찰서로 정하고 민원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강하게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한숨을 쉬고 알았다고 하며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마쳤다.


위의 경찰관과의 경험은 나에게 많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공무원이나 정부 기관 사람들의 부패는 멕시코나 일부 공산국가에서만 발생한다고 생각하였는데, 내가 부정한 공무원에게 부당한 피해를 받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나름 준 이벤트였다.


그러고 또 이주가 흐른 시점에서 또 다른 공무원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경찰 수사관이 아닌, 검찰 수사관에게 온 전화였다. 그전의 수많은 보이스 피싱 검찰 수사관에게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진짜 검찰 수사관의 전화는 처음이었다. 보이스피싱 수사관들은 약간 화난 톤이 통화하는 게 특징인데, 검찰 수사관은 정말 귀찮고 짜증 나는 톤이었던 게 인상 깊었다. 수사관이 나에게 전화해서 몇 마디 나눈 후, 거의 처음으로 건넨 의견은 왜 이런 건을 민사로 소송하지 않고 형사 사건으로 고소를 했냐는 말이었다. 이미 경찰관에게 몇 번이나 한 이야기라 신입사원 면접의 자기소개처럼 유창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수사관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도 개인적인 원한 감정으로 민사의 건을 형사로 가져오는 것은 잘못됐다는 식으로 나를 나무랐다.


영오가 xx경찰서와 유착관계라고 해도, 검찰까지만 사건이 전달되면 내가 우세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검찰 수사관마저 경찰관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 많이 답답했었다. 왜 사기꾼을 단죄하려는 것을 검찰에서 오히려 지양하려고 하는 것인가. 나는 검찰관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풀려고 했으면 영오를 두들겨 팼겠지만, 한국의 사법 시스템에 맞춰서 정해진대로 하는 건데 왜 나를 진상취급하냐고 따졌고, 본인은 판사가 아닌 수사관인데 왜 사건을 수사하지 않고 판단하냐고 따졌다. 나는 짧은 통화에서 이 사건이 검찰을 통과할 수 없다고 느껴 수사관에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투덜댔는데, 내가 계속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를 할수록 수사관의 목소리가 점점 친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20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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