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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Feb 09. 2023

뿌리를 봅니다

내 눈이 맑고 믿으면

같은 질병이라고 해도 동일한 치료법이 적용되지 않음은 당연하다. 병명이 같을 뿐이지 그 병이 발생하기까지의 병리 과정이 다르고, 기본 생활 습관과 체질 및 체력, 성격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치료의 순서를 바꾸고, 그 갭만큼 치료 기간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어디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고? 참 쉽게 하는 말이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서울로 간다는 방향성이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그 과정의 많은 변수에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서울로 향하는 길이라는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 엄청난 혼란이 도래하고, 지금까지의 진행 과정과 현재의 위치를 부정하게 된다.


무달 형님의 진료실로 딸을 업고 온 아빠.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이 지속되고 다리의 힘이 빠지면서 점점 시력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딸은 걷기도 힘이 들지만, 시력 저하가 더 심해지면 앞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안과의사의 말에 황망하고 하늘이 무너진다. 대학병원을 가고, 온갖 검사를 해봐도 원인을 알 수 없으며, 해열제를 복용해도 발열 증상은 좀체 잡히지 않았다. 


더 이상 원인을 알 수 없고, 다른 치료 방법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병원으로부터 최근 개발된 신약이 있는데 한 번 해보자는 권유를 받았다. 비보험이지만 혹 증상완화나 호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적 얘기를 들었다. 아빠는 그런 실낱에 딸을 맡겨두기에는 확신이 들지도 않았고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던가 보다.


어려서 1등을 도맡아 하던 딸이 고등학생 되면서 힘들어했다. 단순 체력 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성적이 안 오른다고 애를 많이 쓰던 어느 날. 걷기 힘들어하고 몸에서 열이 난다고 해서 시작된 증상은 학교 휴학까지 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 된다. 병원에선 더 이상 원인을 찾을 수 없고, 방법을 딱히 제시할 게 없는, 그렇다고 부모 입장에서 점점 악화되는 증상을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정혈고갈에 상화가 치성하여 생긴 전형적인 하허상실下虛上實의 음허화동陰虛火動 양상이었다. 무달 형님은 몸이 너무 약해진 상태에서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성적까지 떨어지니 마음은 더욱 쫓기면서 부모 기대치에 부응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컸다고 진단했다. 


몇 개월 치료로 열이 조금씩 잦아들고, 1년 정도 치료하면서 다리에 기운이 생겨 2층 계단을 오를 정도로 힘이 생겼단다. 지금 3년째 치료 중이지만, 시력도 더 나빠지지는 않고 차츰 완화되는 중이란다. 정상으로 회복은 아니지만. 


한참 치료 중에 딸의 부모는 무달형님께 물었단다. 어떻게 좋아질 거라는 확신을 가졌는지? 치료 중 여러 다른 증상들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병원에서 포기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무엇이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이었는지 대충 이런 의미의 질문을 했단다. 


무달의 대답은 어찌 보면 힘 있는 얘기로 들리지만, 달리 보면 참 단순무식하게 들렸다. " 뿌리를 봅니다. 바람 불어 가지가 흔들리고, 잎이 나고 낙엽이 지지만, 뿌리를 튼튼하게 봅니다."


담벗. 그렇게 말하기까지 실은 내가 나의 삶에 사심이 없어야 하고, 하루하루를 굳건히 살아내야 하네. 스스로에게 확신이 서야 자신감을 갖게 돼. 그런 후에 환자에게서 믿음을 얻는다면, 치료는 반은 된 거지. 생기를 중심에 두고 다른 변수를 고려해 처방하면 결국 좋아져. 물론 시간이 걸리지. 몸이 그렇게 무너졌다면 기초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는 과정이 필요하거든. 몸이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거기까지 이뤄지면 그다음엔 처방이 증상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거든.


나는 몸의 주인이 환자 본인이라고 생각했다. 해서 의사는 방향을 제시하고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도 환자도 그 가는 길에 동행을 하여 물가에 데리고 가지만, 물을 떠서 마시는 것은 결국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고. 무달형님은 또 다른 얘기를 한다. 믿음을 전제로 하는 얘기지만, 그 뿌리를 튼튼히 하는 것은 의사의 역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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