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월 Feb 05. 2023

삼킨 메아리

털지 못하는 무게

이번에도 아무 대답이 없다면 돌아선다는 다짐을 하고 그를 만나러 갔다. 분명 뭔가 예전과 다른 변한 얼굴 모습이요 말끝이 불분명하게 흐려진 목소리인데도 요즘 무슨 일 있냐는 물음에 그는 한사코 별일 아니라는 말로 매번 얼버무린다. 그럴 거면 왜 만나나. 밥 먹고 술 마실 때 단순히 앞에 앉아만 있을 누군가 필요한 것이라면 굳이 그 사람이 나일 필요가 있나. 내가 그렇게 하찮은 존재인가. 


친구라는 뜻은 단순히 안지 오래된 관계가 아니라 친함이 오래된 사이다. 오래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친함을 전제로 한 단어다. 친하다는 말은 속을 터놓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친밀일 텐데 그에게 친구란 그게 아닌가 보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소모적인 만남을 더 이상 이어갈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번엔 꼭 확인을 하고 싶다. 


벌써 도착해서 치킨에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 별일 없었지? 그래, 잘 지내고 있다. 요즘 장사는 어때? 그럭저럭이야, 뭐 워낙 경기가 안 좋으니 다들 그렇지 않나? 어머닌 잘 계시고? 응, 원래 나이 들면 여기저기 불편하고 아프잖아. 그래, 그렇긴 하지. 아주 사변적이고 사소한 얘기들이 오간다.


한 숨을 쉬기도 하고, 묻는 질문마다 다 그렇지 뭐 하는 식이다. 왜 무슨 일 있어 보자고 한 거야? 무슨 일은 무슨 일이야, 그냥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뭐 특별한 일이 있어야 만나는 건 아니잖아. 친구끼리.


그래. 아무 일 없이 보기도 하고, 갑자기 치맥 생각이 날 때 같이 한잔하고 싶은 이가 떠오르기도 하지. 그러나 늦은 저녁에 갑자기 연락 와서는 그렇게 만나서 그런 얘기들만 하다 그렇게 헤어지기엔 뭔가 답답했다. 


- 입원했었다며? 의사가 뭐래? 

= 내가 입원한 거 어떻게 알고 있었구나. 그냥 뭐 건강검진 갔다가 입원하라고 하길래 입원한 거야. 

- 병명이 있을 거 아냐?

= 그냥 염증이 좀 있어서 치료해야 한다고만 하더라. 그래서 쉴 겸 입원했지. 어차피 실비보험에서 다 보장해 주잖아. 그래서 입원한 거지 특별한 이상은 없대.

- 네 얼굴이 많이 탁해진 거 같은데, 괜찮아? 좀 부은 것 같기도 하고. 단순 염증만으로 입원까지 시키지는 않지. 아무리 그래도 의료기관인데.

= 염증 수치가 높아서 그걸 떨어뜨리는 치료를 해야 한대서 입원하고 나오는 길이야.


소염제로 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면, 더구나 입원을 해서 염증 수치를 조절해야 할 정도의 병이라면 심각하게 몸의 균형이 깨졌다는 말인데, 그는 결국 그렇게 별 것 없다는 식으로 말문을 돌린다. 그리곤 뜬금없이 다른 친구의 얘기를 한다. 그가 주말부부라 요즘 외로워하니 자주 연락하라는 둥, 어머니 잘 모셔야 한다는 둥의 얘기로 무게감 없는 말들만 이어간다. 


재작년 친구 형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는 뭐 할 수 없지라는 표정이었다. 다 잘 마무리했으니 걱정 없다고. 친형에게 유독 의지했던 친구. 그의 모친은 몸이 불편한 형을 잘 도와줘야 한다고 친구에게 신신당부해 왔었다. 가족이지만 가족의 누군가를 가까이에서 돌본다는 것이 쉬운 건 아니다. 어쩌면 친구의 삶의 많은 부분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요, 가족이기에 감당할 수밖에 없지만 포기할 수도 없는 애증의 세월이 그렇게 20년을 넘게 이어졌다. 그렇게 늘 같이 일해왔는데, 그런 형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는 많이 힘들었으리라. 그런데도 그는 별 일 없이 잘 넘기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식의 얘기를 늘어놓는다.  심장마비는 누구도 어쩔 수 없지 않냐며.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치킨집 여주인은 절임무를 갖다 주면서 일전에 친구 혼자 여길 들렀는데,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는 한참을 쏟아지듯 울고 갔다는 말을 전한다. 깊이 맺힌 응어리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밖으로 확 털어내듯 끄집어 내든가, 아니면 속으로 정말 삭여야 한다. 그렇게 까발릴 만큼의 용기가 있거나 스스로의 내공이 있어도 결코 만만찮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 몇 해 전에 먼저 간 우리 동창 정현이 알지? 

= 응, 그래. 내가 조화도 보냈으니 알지.

- 정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나?

= 암이라고 들었다. 다들 그러던데.

- 그래, 암이 온몸으로 전이되어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였지. 맞아 암으로. 

= 근데?


정현이는 다니던 회사에서 명퇴를 했다. 다행히 맞벌이라서 부인이 경제적 도움을 줬지만, 그게 그를 더 힘들게 했다. 부인을 고생시키는 것도 그렇지만, 가장으로서의 무능력이라는 자괴감. 다른 일을 찾아봤지만 오래 다니질 못했다. 친구들 만나 술 한잔 할 때도 별 말없이 앉아서 술만 마시고, 다른 친구들도 그의 사정을 알기에 더 묻지도 않는 몇 년의 생활이었다. 못 사는 집안도 아니었는데, 그는 그런 내색을 전혀 않고 홀로 전전긍긍했었던가 보다.


장례식에서 그의 부인은 정현이가 집에서도 전혀 말이 없었단다. 원래도 말이 별로 없었지만,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오는 날도 있고 하니 그렇게라도 풀고 다니는구나 하고 알고 있었단다. 가끔 몸이 안 좋았을 때도 병원에 한 번 가보라고 해도 본인은 괜찮다며 버티더니, 어느 날 아침에 얼굴이 하얗게 창백한 채로 배를 움켜쥐고 아프다고 누워 꼼짝을 못 해 응급실로 가고 나서야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땐 이미 때가 너무 늦었다는 거다. 


- 내가 봤을 때 정현이가 그렇게 간 것은 외로웠던 거야. 우울증 까지 겹치면서 더욱 안으로 안으로 침잠했을 거야. 

= 그렇구나, 난 그냥 암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 처음 듣는 얘기다.


네 얘기를 하고 있는데, 넌 남 얘기로 듣는구나. 너와 나의 얘기요 우리 모두의 얘긴데 넌 그렇지 않나 보네.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얼마 지나 문자를 보냈다. ' 우린 다른가 보다. 건강하고.'


며칠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출근하기도 전의 이 시간에 온 전화는 그 친구의 부인이었다. 한두 번 본 적은 있지만, 서로 연락할 일은 전혀 없었기에 낯 선 번호였다. 그녀가 전해준 얘기는 하루 종일 사람을 공중에 멍하게 띄웠다.


그렇게 형이 죽고 나서, 친구는 전화 배터리를 뺐다. 그의 형의 사인도 심장마비가 아니라 자살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사기를 당하고 빚에 쪼들리는 상황에서의 마감이었단다. 그동안 친구는 말은 안 했지만 그런 형과 같이 일하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으리라. 어떻게 하든 헤어나갈 방법을 찾아보자고 해놓곤 그렇게 형이 가버린 것이다. 


방안에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단다. 매일 밤마다 잠깐 나가 술을 사 오는 일 외에는 일체 활동 없이 한 달 넘게 칩거했단다. 그렇게 몸이 좋았는데, 한 달여 만에 체중이 20kg 이상 줄더니 몸이 안 좋다며 잠깐 병원에 가서는 그 길로 두 달을 입원해서 겨우 퇴원했는데, 퇴원한 날부터 또 계속 술을 마셨다고 한다. 가끔 밖에 나가 친구랑 술을 마시는 것 같기도 했지만, 누굴 만나는지 물어도 말이 없고, 무슨 병인지 물어도 대답도 없고, 음주를 그만두라고 말려도 도저히 그만두게 할 수도 없었단다. 


부인은 그 몰래 그가 입원했던 병원 가서 병명을 물었다. 우울증과 간경화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단다. 가끔 밤에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귀를 대보면 울음이 들리기도 했다고 한다. 배고프지 않냐고 밥 먹으려냐고 물으면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의욕도 없어 보였다고. 


그렇게 술과 입원을 반복하다가 그제 아침 거실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하여 급히 병원 응급실로 갔고, 오후엔 바로 중환자실로 올라갔단다. 간경화 말기의 간성 혼수. 의식 불명인 그의 폰을 확인하다 내 이름을 보고 전화를 했단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단다.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그녀의 목소리엔 체념 섞인 맥없음이 잔뜩 배어있었다.


방법이 없다, 할 수 없다, 기다림 밖엔. 통화하는 내내 답답하고 벽에 갇힌 것 같고 땅 끝으로 밀린 것 같다.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젠 아마도 그에게서 직접 들을 순 없을 것 같다. 나는 나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그에게 그렇게 물었던 게 아니다. 내가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그게 아니라 그의 솔직함만이 필요했다. 그것만이 그에게 실질적 도움이니. 그런 아픔은 누가 대신 할 수도 없다. 오직 본인 스스로 풀어야 한다. 밖이든 안이든.


고맙다고,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 달라고 하고 통화를 끊었다.


아악! 고함을 치라고. 삼키지 말고

삼킬 거면 아작아작 씹어 삼키라고, 이빨이 깨질 만큼. 제발




작가의 이전글 은주의 방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