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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Feb 03. 2023

은주의 방식

함부로 재단할지 말지니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이 참 그렇다. 단지 어떤 류의 사람일 거라는 나름의 분석을 하지만 그게 결코 결정적인 판단일 수는 없다. 혹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내가 모르는 섣부른 속단에 대한 경계의 여지를 충분히 둘 뿐이다. 물론 누군가를 처음 보거나 만나서 생기는 첫인상으로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파악하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치 자극에 대한 조건 반사처럼 상대를 파악하려는 눈빛이 저절로 일어날 뿐이다. 어떤 사람일까, 나랑 맞을까, 그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등으로 유추해서 그의 의도나 이해를 구하면 그뿐.


은주 씨를 처음 만난 건 동네 카페에서였다. '은주 씨'라고 한 것은 그녀가 나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기도 하고, 친분이 깊은 것도 아니고, 동년배의 그저 얼굴을 아는 정도의 주변인이기 때문이다. 집사람을 통해 그녀의 이름을 들었고, 짧은 대화를 나눈 정도였다. 


웃는 표정이 뭔가 야릇한 매력인 그녀는 처음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날씬하여 옷을 입으면 태가 잘 나는 것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며, 센스 있게 어울리는 깔끔하지만 속살이 살짝 드러나는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는다. 솔직하고 시원스러운 말투와 성격으로 금방 친근감을 느낀다. 더구나 낯가림이 적고 사교적이라 그녀가 호기심 어린 말로 먼저 다가가니 남이라도 더 쉽게 호감도를 갖게 되는가 보다. 


그런 그녀를 내가 처음 봤을 때 나는 그저 내 스타일이 아니네 정도였다. 소탈한 성격이지만 뭔가 가벼워 보이는 모습에 취향이 나와는 다르네 하는 느낌이었다.


누구든 믿음이 가고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듯 노출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알게 되고 익숙하게 되면 저절로 본인의 삶을 얘기하게 된다. 가끔은 너무 은밀한 속마음 얘기로 숨겨왔던 응어리가 풀리는 시원한 해방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건 서로 관계가 좋을 때로 한정된다. 다 털어버린 느낌은 일면 약간의 허탈함과 일말의 불안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과거를 공유하는 순간, 그 내용이 쇼킹할수록 입 밖으로 나온 얘기들은 돌아 돌아 소문을 타고 왜곡되어 본인의 등을 떠밀어버린다. 수다는 그런 양면성을 가진다. 특히나 가십거리로 전락하여 대리 만족의 안주가 되기 십상이라.


자식들이 다자라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찾아 집을 나길 기다렸단다. 둘만 남은 집에서 서로 부부로서의 애정이 애틋한 것도 아니어서 남이 되었다는 그녀의 대답은 남 얘기처럼 담담했다.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이젠 떠난 남으로 남았단다. 서로 잠시 바람이 불었고, 식어버린 감정으로 건조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무의미했다. 맞바람으로 막아내기로는 탈피라는 허울만 더할 뿐이었다. 


경제적 지원의 배제라는 막막한 야생으로 떠밀렸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그녀는 냉소적 웃음끼 띤 얼굴로 속삭이듯 혼잣말을 한다. 떠나보낸 건지 떠나간 건지 모르겠다며.


그런 그녀가 물적 심적 방황을 하던 차에 그녀의 손을 잡아준 사람이 있었다. 좋은 사람이네 괜찮네 정도로만 은주 씨는 그를 바라봤고, 그는 힘들어하는 그녀의 버팀이 되어 감싸 안고 싶었던가 보다. 아름답고 여성스러우면서 센스 있는 그녀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는 그녀의 마음에 가까이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은주 씨는 아무리 그가 좋아도 자꾸만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성인이 다되어 분가하긴 했지만 자식이 있고, 이혼을 했으며, 나이도 그보다 훨씬 많고, 더구나 그는 아직 미혼이라는 생각은 그녀의 마음에서 쉽게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서로 아는 정도에서 만남을 가지려 했다. 그래야만 한다. 현실적인 시각으로 냉철한 판단을 한다면 더 이상 그를 만나면 안 된다고 은주 씨는 생각했다. 혹 관계가 깊어져 아무리 사이가 좋아져도 다시 서류상으로 뭘 남길 수는 없었다. 그의 부모 입장이라면 어떨까? 당연히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정도를 넘어, 애 둘 달린 나이 많은 이혼녀에게 미혼인 아들을 보낸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 않나. 그녀의 객관적 상황에 그의 집안 입장에서는 너무나 잘 키운 아까운 아들이요 동생이리라. 


그녀는 그의 집안을 소개받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혹 어쩌다 그의 가족을 만나거나 마주치는 경우는 난감하리라.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불안한 만남을 한사코 그만두자고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더욱 그녀를 지켜주고 싶어 했는가 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보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말이 있을까? 

그는 은주 씨를 이해하고 감싸주고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 비록 아슬아슬한 관계나마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걸 증명하고 진심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친구들 만남에 그녀와 동행하고, 결혼한 친구의 부부 모임을 같이한다. 그녀의 친화력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웃지만 그녀는 그런 만남을 할수록 고민도 많이 쌓인다. 


나이 차이. 친구 부인들의 나이는 은주 씨와는 족히 10년을 넘긴다. 이걸 극복하는 방법이 딱히 있지는 않아도 현 상태 유지를 위해 그녀는 나름 많은 노력을 한다. 혹 새치라도 보일까 노심초사하고, 잔주름을 줄이기 위한 관리를 꾸준히 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젊어 보인다는 말을 해도, 그녀가 거울을 보며 살피는 미세한 노화의 조짐은 눈에 거슬린다. 아무리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지만, 정작 외모의 사소한 변화는 그녀에게 참 용납하기 힘든 부분이었으리라. 감춘 모습의 비교 대상이 십 년 어린 부인들이기에.


그렇게 그녀와 그의 유지가 3년을 넘어가던 쯤에, 그녀를 알던 지인들에서 질투 어린 말들이 나돈다. 그녀 주변의 얘기들의 태반이 부러우면서 본인들이 갖지 못한 시기심의 발로일 터.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라고 시작하는 말들은 결코 상대를 위한 배려는 아니니라.


은주 쟤 말이지 과거에 결혼생활 중에도라든지, 혼자 사는 주제에라든지,  돈을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해 다니는 폼은 명품을 감고 말이 되냐는 둥, 젊은 남자 앞길을 막는다는 둥.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일 뿐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녀 입장에서는 그녀 나름의 삶의 방식으로 생존방식을 찾아 삶을 살고 있는 거다. 사랑이 죄일 수는 없지. 그녀를 안다는 다른 사람들의 험담은 그들 본인의 삶 또한 그리 아름답지는 않을 거 같다. 어쩌면 그녀의 행동이나 그런 그녀에 헌신적인 미혼남에 대한 부러움이 더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불안한 행복. 감정에 충실함과 현실적 제약의 한계 상황. 그 속에서 우린 적응하며 자기만의 가치를 추구하며 산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헤어지고 떠나고 남겨지고. 지나온 과거가 이력이 되어 그림자 지우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아간다.


바람은 차가운데 그 속에서 느껴지는 봄꽃 피어날 온풍이 몸을 감싼다. 아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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