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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an 25. 2023

청자다방

수요일엔 엽차에 심퍼시

번화가 뒷골목 2층에 위치한 청자다방은 나름 뮤직 박스의 디제이가 멋을 부리며 음악을 틀어주고, 주변의 예술이나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터였다. 


장발의 김민철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만 되면 그 청자다방에 나타났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휴학을 한 상태에서 이곳저곳을 떠돌다 수요일엔 여지없이 이 청자다방에 들어와 뜨끈한 엽차를 두고 두어 시간을 앉았다 일어나 나갔다.


그는 이날도 따뜻한 보리차로 나온 엽차를 벌써 몇 잔을 시켰는지 모른다. 민철은 이곳을 오면 일단 메모지에 레어 버드의 심퍼시 노래를 적어 디제이에게 담배 한 가치를 끼워 노래를 신청한다. 그리곤 노래를 들으며 보들레르의 시를 읽는다. 매번 이러한 그의 모습에 처음엔 그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매니저는 기다리는 손님이 있는가 보다 했었다. 


많은 방문객들의 싸인과 간단한 메모가 빼곡히 적힌 벽의 한 켠에 편지가 한 장 걸렸다. 그 편지에 답장이 빨간 루주로 쓰여 한동안 청자다방을 방문한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편지는 민철이가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수정 씨에 대한 추파를 끝내 그녀가 거부하자 기다리다 지친 그가 쓴 편지였다. 


수정은 그의 개인 편지를 공개하며, 공개 답장으로 그에 대한 외면을 대신했다.  꽤나 고상한 척 쓴 그의 편지는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인데 아마 출처를 잊은 그가 마치 창작처럼 생각하여 썼으리라. 


수정 씨, 저는 구구절절 말보다 詩를 써 내 맘을 대신할까 합니다.


물듦 - 김민철

세상에 물들어 사는 사람은 세상과 그가 구분없는 삶이라 혼돈의 섞임이고

세상을 등지고 고고히 사는 사람은 맑은 선망의 대상이나 홀로 떠나 있고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에 물들지 않는 연꽃이 비록 아름다우나 세상과 유리되어 있고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물들이는 그런 사람으로 나는 그대를 사랑하오

.................................

세상에나, 

아름다운 전염이길, 부디...


본인이 쓴 글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노출된 줄도 모르고 방문한 어느 수요일 오후. 그날도 여전히 심퍼시 노래를 쪽지에 적어 밀어 넣으며 엽차로 몸을 녹이는 중이었다. 그러다 수정의 답글이 눈에 띄었다. 두근거림과 부끄러움이 민철을 경직시키는데, 오늘따라 청자다방의 분위기가 싸늘하다. 아침에 집을 나오다 계단에서 넘어지더니 계속되는 뭔가 엇박자의 수난.


드디어 그날은 매니저와 직원들이 삥 둘러 민철을 감쌌다. 분위기상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이 중압감. 민철은 순간 이 청자다방도 오늘이 끝이구나를 직감했다.


"손님, 오늘은 뭐든 꼭 드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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