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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Feb 08. 2024

답 없는 물음

당사자가 결정할 수 없는 결정

이른 아침. 응급상황이 발생했다는 간병인 김여사의 전화를 받은 처남은 집사람에게 대충의 상황을 전하며, 응급실로 가고 있으나 나중 만나자고 한다. 대충 얼굴에 물칠만 하고 급히 옷을 챙겨 입고 아침 숟가락을 들지도 않은 채 택시를 부른다. 밥 먹고 출근해. 나 간다. 이따 전화할게.


5년이 다 되어간다. 장모님이 이렇게 오랫동안 입원해 있을 줄 몰랐다. 피곤해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더니 어느 날부터 걸음걸이가 불안정하고 힘의 조절이 잘 안 되어 간 병원에서 파킨슨이란 진단을 받았다. 약 먹으며 재활치료를 받으면 좋아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증상의 완화와 악화를 반복하더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갑갑해서 미치겠다며 불안증이 나타나 불면이 지속되더니, 뇌졸중이 발생하고 치매의 증상까지 겹쳐 나타나 급기야는 쓰러져 입원을 하고야 만다. 


그렇게 병실 생활을 시작한 장모는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돌아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병실에서의 생활이 일상생활이 되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누워만 있어야 한다. 목에 기관삽관을 하고 복부에 튜브가 연결되고, 요도까지 관이 이어져있으며, 가끔은 혈관에도 생명줄이 연결되어 삶을 유지하고 있다. 


자식들의 병문안에 눈꺼풀의 힘겨운 깜박임만 흐릿하다. '엄마 나 왔어, 나 누군지 알아?'라는 자식들의 목소리에 미약한 손가락 움직임이나 눈 뜸의 반응에도 가족들은 엄마가 자신을 알아본다며 행복한 눈물을 훔친다. 엄마가 내가 온 걸 알고 좋아하는 가봐. 


장인이 돌아가셨을 때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부부의 연으로 평생 살다 이제는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그래도 알려 드려야 하는 건 아닌지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이미 벌어진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더 이상 심려를 끼쳐드리지 말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치료에도 도움이 안 되고 장모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얼마 전 욕창으로 고생한 엄마에게 요즘은 그래도 얼굴색이 많이 좋아졌다는 김여사의 설명에 다들 간병의 노고에 감사해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자식들에게 연락을 해서 일의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어떤 처치가 더 효율적이고 모친에 덜 고생스러울지 꼼꼼히 설명하는 김여사에게 한없는 신뢰를 보낸다. 


초창기부터 간병을 한 김여사는 처음 재활을 시작할 때 기어코 특정 물리치료사에게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그의 담당으로 받아냈다. 저 선생님이 여기선 제일 잘하시거든요. 그렇게 헌신적인 김여사에 가족들은 안심을 하며 장모님을 부탁했다. 그렇게 재활 치료를 하고 있을 때까지는 나아질 거라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다 다른 뇌신경 증상이 더해지면서 당장은 사람을 살려내야 하는 상황이 급하게 진행되고 나서, 지금은 살아있음을 유지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재활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된다. 약간의 자극에 겨우 미약한 반응을 보이는 현 상태의 유지가 최선이라고 할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은 서서히 지쳐간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정도까지 왔다. 가슴 아프고 슬프지만 방법이 없다. 누군가 서랍 정리를 하다 찾은 어렸을 때 찍은 가족사진을 돌려보며 웃고 운다. 그래, 그때 그랬지. 사진 한 장에 위안을 얻고, 이땐 엄마가 참 고왔는데라는 추억이 지금의 모습과 비교되면서 병실에 계신,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살아계신 장모를 그리워한다. 


코로나 감염으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연락에 병실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병원 입구 로비에서 며칠의 밤을 지새운 일, 기관 절개관이 막혀 재수술이 급해 응급실 복도에서 서성이던 일, 연하장애가 심해 L-튜브에서 위루술의 G-튜브로 교체한 모습을 보고 당황하던 일,  빈혈 수치가 떨어지기도 하고 염증이 갑자기 심해지기도 하고 낙상 사고가 나기도 하는 등등의 일들에 가족들은 가슴을 졸이며 상황을 지켜보며 도대체 엄마가 왜 저런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입술을 물고 돌아선다. 기도 삽관에 낀 객담 제거를 위해 석션을 할 땐 격하게 온몸이 들썩이는 반응에 차마 더는 못 보겠다며 병실을 빠져나간다. 


나을 수 없는 병, 죽을 수도 없는 병이다. 생사의 고비도 생사의 갈림길도 아닌 그 중간에 걸쳐진 생이다. 병이 호전될 수 없어 퇴원할 수도 없는, 끝나지 않는 상황의 근근한 유지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병원 측이든 간병인에게서든 연락이 와서 필요하고 언급하는 그 조치가 뭐든,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가 되든 그대로 따라야 한다. 어떤 다른 대안이나 선택지도 없다. 바로 곁에 있는 거기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아야 한다. 마치 볼모처럼, 어떤 요구에도 말없이 끌려가야 하는 포로처럼.


누군가는 병원에서 마치느니 차라리 집으로 모셔서 전문 간병인의 도움하에 모든 식구들이 임종이라도 제대로 준비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감당하기 쉽지 않기도 하지만, 이게 좋은 방법인지 모르겠다. 정작 가장 답답하고 힘든 이는 본인이고, 이 모든 상황을 어쩌면 본인이 가장 싫어할 수도 있지만, 그의 답을 들을 수가 없다. 


지금의 상황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다른 어떤 변화의 방법을 제시해 볼 수 있을까. 생명의 결정을 감히 누가 한단 말인가. 본인 이외에 그 누가 할 수 있나. 생사의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될 일을 굳이 억지 결정을 해야 하는가. 생명 연장이 외부에 의해 지속되는 경우라서 그 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러운지 모르겠다. 의학의 힘에 의한 유지므로.


결정권자가 아닌 이상 그저 담담히 지켜보고 있음이다.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인 '자기 결정권'이 부재한 경우에 누가 그 결정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나 생명과 관련해서. 결정하지 않으면, 결정된다라고, 결정당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장철이 되어 절인 배추 속을 채울 때 양념 아껴 넣으라는 장모의 잔소리도, 이처럼 명절이 가까워져 오면 시끌벅적하던 처갓집의 풍경도 이젠 없다. 가까운 병원에 계신데도 너무나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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