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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10. 2024

통처 이동

아픈 곳이 돌아다녀요

온몸이 다 아프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이 말을 들으면 어디를 봐야 할지, 어쩌라는 건지 되묻고 싶어 진다. 물론 아픈 곳이 많다는 한탄의 뜻이겠지만, 속으론 뭘 했길래 그렇게 아픈 곳이 많은가 싶다. 아픈 걸 좋아할 사람 누가 있으랴. 이런저런 치료를 해도 잘 낫지 않고 오래 시달렸다는 표현이다.


만성이나 오래된 근골격계 질환에서는 어느 한 곳의 통증을 치료하고 나면 다른 곳이 아파진다. 왼쪽이 아프다 좀 나으면 오른쪽이 아프고, 발목이 좀 나으면 무릎이 아파진다. 어깨가 아픈 사람이 어깨가 좀 나으면 팔꿈치나 등부위 통증이 나타난다. 그 가능성을 미리 언급하면서 아픈 부위가 좀 덜해지면(아직 다 낫지 않아도) 다른 곳이 아프다고 느껴질 거라 말해두지만, 아픈 사람들은 그 아픈 곳만 빨리 나아지길 기대한다. 


그렇게 아프던 곳이 완화되면 모두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일정 부위의 통증이 감소되면 더 아픈 다른 곳이 아프다고 느끼게 된다. 그때 대부분은 아픈 곳이 옮겨 갔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원래 안 아팠는데 치료받고 나서 아파졌다며 불평하는 이도 있다. 


우리 몸의 감각은 가장 강한 곳만 인식한다. 미각도 그렇고 촉각도 그렇다. 더 센 자극이 가해지면 이전의 감각은 무뎌지거나 잊힌다. 통각도 그렇다. 다만 통처를 치료해서 덜 아파져도 그 부위가 덜 아프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더 아픈 다른 곳이 자각된다.  몸은 지금 제일 불편하고 아픈 곳에 감각이 집중된다. 그래서 원래 아팠던 부위는 자각되지 않고, 다른 부위를 가리키며 여기가 아프다고 호소한다. 아픈 부위가 돌아다니나 봐요.


그렇게 아픈 부위가 한 바퀴 돌면, 기존의 아픈 부위가 재발한건 아닌지 다시 아프다고 한다. 다시 아파진 게 아니라, 그 부위가 덜 나은 채로 다른 곳이 더 아파서 묻혀있다가 다른 부위가 완화되면서 그 부위가 현재 제일 불편한 부위로 순위가 정해진 거다. 그렇게 돌고 도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아직 덜 나은 곳이 나타났을 뿐이다. 


적응. 우리 몸은 위기 상황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나름의 적응을 한다. 다친 곳에 자극을 덜 주고 회피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힘을 더 실어서 적응하면서 상처를 회복한다.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적응은 한시적으로 필요하다. 그 시기를 지나 다친 곳을 회복하고 위기를 벗어난 후에도 위기 극복을 위해 이뤄진 적응이 습관처럼 지속된다면 불균형이 유발된다. 


위기 적응을 위한 불편한 자세가 익숙해지고 그에 맞춰 몸이 다시 적응을 한다면 그 불균형의 자세에 몸은 다시 적응한다. 적응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적응은 다른 부위들에 통증을 가져온다. 적응을 했지만 적응으로 몸의 균형이 깨진 상태를 다시 적응하는 셈이다. 즉 부자연스러운 균형이 몸에 무리한 힘으로 지속된다. 이런 과정이 만성 통증으로 유발되어 이곳저곳이 아파진다. 불균형이 익숙해진 적응은 부적응으로 나아가게 된다. 


위기 극복을 위한 적응은 위기가 사라지면 그 적응에서 벗어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적응의 익숙함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감정에도 감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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