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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19. 2024

버스 종점

더 화려해진 시작점

바닷가 어촌 출신도 아닌데 한 번씩은 바다를 봐야 진정이 되는 나는 이것도 병인 듯하다. 파도소리병이나 수평선병, 짠내병, 비린내병이라고 불러야 하나. 갑자기 답답해지고 갑갑하면 밖을 나와 먼 산을 봐야 하고, 그래도 해소가 안되면 바다로 가야 한다. 어떤 주기가 있는 건 아니다. 뭔지 모르게 집중이 안되고, 산만해지면 지금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괜히 짜증이 난다. 그땐 조용히 혼자서 무작정 걷든, 버스를 타고 종점 바닷가를 가든.


제일 긴 노선의 버스를 타고 종점에 가면 바다가 나온다. 허기 채우듯 저녁을 먹고 온다 간다 말없이 집을 나와 버스를 탄다. 여름의 하늘은 저녁 8시를 넘겨도 밝아 아직 바다는 낮이다. 예전의 방파제 주변 포장마차들은 다 철거되고, 해안선 정비와 시설 현대화의 이름으로 번듯한 회센터 건물의 조명이 환하다. 색색의 전구들이 건너 건물마다 알록달록하고, 풍악이라기엔 다소 소란스럽고 가벼운 음악들이  풍짝인다.


고무 대야에 해삼 멍게 채워놓은 해녀 아줌마가 내주는 해산물 한 접시 시켜 앉은뱅이 의자에 쭈그려 소주 마시던 풍경은 없다. 어두운 백열등이나 카바이드 등불에 안주를 집어먹으며, 의자 바로 앞에서 철썩이던 파도를 소주랑 삼키던 때가 아득하다. 바다도 변하나 보다. 


바다의 바람이 잡념을 일으키는 밤바다 콘크리트길. 멀리 테트라포트는 파도를 막고 방파제를 따라 걷는데 바로 뒤에서 툭하는 소리가 들린다. 주변 아무도 없어 다른 이의 발소리는 아닌데 분명 바닥을 치는 소리다. 먼 불빛으로 겨우 주변을 살피니 콘크리트 바닥에 뭔가 꿈틀거린다. 복어다. 두 주먹 합친 것 만한 제법 큰 놈이다. 바다에서 튀어 올랐나 보다. 왜 올라왔냐고 물어보니 놈이 뭐라고 입을 뽁뽀거리는데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네. 내가 물어 답을 하기는 하는데, 막상 물은 놈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를 못한다. 애초 묻질 말았어야 했나. 괜히 미안하다.


작고 조그만 쫄복은 많이 봤었는데 이 놈은 어두워 식별이 어렵지만 참복 종륜지 제법 실하다. 등지느러미에 가시가 날카롭다. 살려줄 요량으로 집어 들려다 멈칫한다. 예전 우럭 지느러미에 찔린 따가운 기억이 있다. 그냥 복어의 배를 톡톡 두드린다. 역시나 놈은 내가 알던 예전처럼 배를 한껏 키운다. 풍선처럼 빵빵해진 배로 형체가 두세 배 늘었다. 이제 됐다. 나는 신발을 벗어 그놈을 굴려 바다로 보낼 생각이다. 내가 놈의 덩치에 무서워 겁낼 줄 알았는지 놈은 연신 뽁뽁 성질을 낸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손에 신발을 들고 힘껏 그놈을 바다로 쳐 보낸다. 


먼 불빛은 파도의 일렁임을 비추고, 바다에 빠진 복어는 해수면에 일렁일렁 떠있다. 아마 내가 보고 있는 동안은 놈은 그 부풀린 몸으로 계속  떠있을 듯하다. 설마 죽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놈의 배가 저렇게 부풀어져도 배가 터져 죽은 놈은 못 봤다. 그 질긴 탄성은 부푼 배를 칼로 찔러도 칼이 튕겨나가지 그 배속의 가스가 빠지진 않는다. 놈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잠시 떠있다가 순식간에 헤엄쳐 갈 것이다. 마치 개구리가 죽은 시늉으로 냇물에 둥둥 떠서 가만있다 쓱 물속으로 사라지듯이. 


멀리 해수욕장에는 장난감 폭죽이 터지고, 버스킹 하는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소리에 파도소리는 묻히고, 밤바다 별은 가려진다. 누구나 와서 쉴 바다지만, 굳이 행락객을 유치하느라 애쓸 필요 있을까 싶다. 유치해 보인다. 눅눅한 바람에 캔맥주를 까고 앉았다. 막차 버스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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