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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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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공유

호는 집에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뜬다. 어무이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말을 던지고 간다. 오래간만에 만나 밥 먹고 술 한잔 하려 했더니 이런 일이 생겨 미안한데 다음에 보자며 서두른다. 부디 큰 사고가 아니길 빌지만 좀 이상하다.


며칠 전 그의 모친이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요추에 압박골절이 생겨 꼼짝을 못 하고 바로 입원하여 수술날짜를 기다린단 말을 들었는데 교통사고란다. 연세도 있으시지만 골절까지 겹쳐 입원한 상황에서 어떻게 교통사고가 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뭔가 정황과 시간이 엇난다.


예전 어촌에 살던 호의 동네는 가구수라고 해봐야 삼십여 호 정도의 작은 시골이었다. 호의 집은 다른 주민들에 비하면 잘 사는 편에 속했다. 배를 한 척 소유하고 있었고, 좀 떨어진 곳에 밭도 있어 끼니 걱정은 없었다. 시골에 사는 누구든 그렇지만, 어촌에서의 삶도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잔일들이 많았다.


이웃사는 춘자네는 호의 집안과 왕래가 잦았고 친했다. 굳이 촌수로 따지면 호와는 먼 친적이었다. 호의 육촌 아재의 사돈댁과 연결되는. 건너 건너 긴 혈연의 연결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춘자네는 호의 동네 이웃이다. 가끔 춘자네 남편은 뱃일이 바쁜 철이면 호의 아버지 배에 올랐다. 그런 춘자네에는 자식이 없었는데 한 번씩 호의 집으로 와서는 그렇게 호를 귀여워했다. 호의 형이 있는데도 춘자네는 호가 더 호감이 갔던 모양이다.


호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나 보다. 춘자네는 호의 모친에게 호를 데리고 하룻밤 자고 싶다고 했고, 호의 모친은 별 뜻 없이 호를 보낸다. 호도 춘자네를 어무이 어무이하며 잘 따른다. 방학을 맞아 한 번씩 호는 모친에게 춘자네 갔다 온다며 들른다.


호가 성인이 될 무렵, 호가 살던 동네가 들썩인다. 옆동네까지 포함하여 주변 일대가 공장부지로 선정되면서 이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민들 사이의 의견이 찬반으로 나뉘었다. 여기를 떠나 어디서 살아간단 말인가. 할 줄 아는 게 물길질밖에 없는데라며. 호의 집안도 대대로 살던 이곳을 떠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억지를 부릴 상황도 아니었다. 마을에선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가난한 어촌 생황을 접고 떠나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상이 충분하냐 부족하냐의 기준을 넘어 한 푼이라도 더 받자는 부류와 어차피 떠날 거면 빨리 거처를 정해 떠나자는 주장들. 주민 회의가 길어지고, 주장이 강해지고, 이견을 좁히려는 시도들이 잇달아 나와도 시간이 필요하고 동의가 필요했다. 동네 전체가 붕 뜬 분위기에서도 일상은 일상이었다. 고기잡이를 하고 밭을 갈아야 했다.


그런 와중에 큰일이 벌어졌다. 고기잡이가 한창이던 때에 불어온 국지성 회오리 풍으로 배가 뒤집혔다는 소식이 들리고, 귀선 한 배에는 호의 부친과 춘자네 남편이 없었다. 어부들에겐 늘 잠재된 위이지만, 이번 일로 인해 이젠 이곳을 떠나 안전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주 계획은 더 빨리 마무리가 되고, 원주민들은 대체 부지로 대부분 이사를 간다.


호의 집안과 춘자네도 슬픔을 잊기 위해서라도 새 삶의 터전이 필요했다. 가족을 잃은 감정의 추스름도 마치기 전이며 첫 기제사를 고향을 떠나서 할 수 없다고 버티지만 빈 집이 늘면서 그도 쉽지 않다. 가장의 빈자리는 컸다. 그나마 장성한 아들을 둔 호의 집은 기댈 아들들이 있어 버팀이 됐지만, 춘자네는 이 모든 결정을 홀로 정하고 감당해야 했다. 


홀로 새터에서 삶을 꾸려가던 춘자네는 호의 모친을 찾아가 호를 아들처럼 대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 호의 모친도 다 커서 성인이 된 호의 의사에 맡긴다. 호야, 춘자네가 그런 말 하데, 너를 아들 삼고 싶다고. 호는 그럼 어머니가 두 분이 생기는 거네라며 큰 거부감이 없다. 엄마와 어무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아들 노릇을 하겠다는 뜻을 비춘다. 어려서부터 잘 알고 사이좋게 지내던 춘자네가 외로움을 달래려 본인을 아들처럼 대하겠다는 마음을 호는 받아들인다.


호의 친구들은 호를 의리 있고 믿음직한 놈이라고 칭찬하는 이도 있지만, 몇몇은 그가 허세를 부린다고 꾸짖는 친구도 있었다. 호가 사업을 하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게 중에는 생활이 힘들다며 그의 사업 중 일부를 조금 떼서 넘겨달라는 부탁을 하면 호가 거절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감을 이리저리 나눠주는 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책임은 호에게 있고 이익은 흩어졌다. 


며칠 후 호가 내게 왔다. 어무이, 내가 다 말해놨으니 알아서 잘해줄 거라요. 그러곤 내게 치료를 잘 부탁한다는 눈짓을 보내고, 급히 할 일이 있어 가야 한다며 떠난다. 문을 나서는 그에게 차마 묻지 못한 물음이 있다.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알 길은 없다. 같은 날의 기일에 호야 너는 어디로 가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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