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월 Sep 04. 2024

그림자 먼지

무거운 건 가라앉고 가벼운 건 위로 뜬다

사건이 발생했다. 알았다면 피했을 테고, 예상했으면  대비를 했겠지만, 그럴 시간도 가능성도 따질 경황없이 사건이 발생했다. 느닷없이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일이 일어난 거다. 어제도 얼굴 보고, 낮에도 통화를 한 사람이 유명을 달리한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교통사고로 인한 사고사.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지만, 어디라도 탓을 하고 싶고, 누구에게든 책임을 묻고 싶은 거다. 그 화살을 괜히 주변의 만만한 이에게 돌린다고 없던 일로 돌이켜지지 않을 텐데 대부분 그 함정에 빠져 감정풀이를 하고 싶어 한다. 유치하지만 일차원적인 대응에 행해진 분풀이는 자칫 남은 사람들을 완전히 들어서게 할 수도 있다. 흔히 말하듯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살아도 본가처가, 시댁친정의 집안 관계는 유지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고리는 여전하고, 성장하면서 부모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으며, 부모자식의 관계가 혼인으로 분리될 수도 없다. 어쩌면 분리되어서도 안된다. 다만 가정을 이룬 독립체로서 인정과 대우가 이뤄져야겠지만, 부모 입장에 따라서는 어떻게 키운 자식이고, 얼마나 잘 난 자식인지에 대한 자부심이 새로 정착한 배우자를 쉽게도 어렵게도 한다. 그 자부심이 가끔은 보상심리로 작동하고 가끔은 섭섭함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마음은 부추기는 주변인들에 흔들릴수록 심하게 요동을 친다.


사고 당사자 남자는 가고 없지만, 남자의 남겨진 이들의 말이 마치 사후대책이랍시고 거친 말로 여자 쪽을 드잡는다. 그런 일에는 부모의 피붙이들이 더 목소리를 높이고, 대리만족이라도 하려는 듯 그들의 고함을 남자의 부모는 방치한다. '그래, 우리랑은 이제 끝이라는 거지?' 딸의 아비는 묵묵히 듣고 있다. 그도 할 말이 많겠지만 침묵 속 아무 말이 없다. 독기가 잔뜩 오른 그들에겐 그 어떤 말이나 대응이 더 큰 반작용만 일으킬게 뻔하므로 참는다.


감정이 격해져 있는 서로에게 당장의 모든 것들은 별 것 아닌 게 없고 넘어갈 수도 있는 사소한 것은 없다. 몇 년을 살았든 몇십 년을 키웠든 모두 각자의 인생이 걸린 문제요 삶 전체를 내걸고 마주해 왔으니 그 떠나보냄이 쉽지가 않다.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 슬픔에 거슬리는 작은 결함도 싫은 거다. 유골함의 흠집이 마지막 길의 흠집 같고, 수목장지의 왜소한 나무가 떠난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행하는 무례 같아 내키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고, 트집을 잡아서라도 주저앉히고 싶은 거다.


공부 잘하고, 착하고, 똑똑했던 아들을 하루아침에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안타깝고 억울하고 억장이 무너진 거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다. 여러 가지 참고 조사와 뒷일들이 남아있지만, 간 이가 돌아오지 않는 현실에서 어떻게 거두고,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앞을 헤쳐나갈지 정해야 하는데 자꾸 감정이 앞선다.


여자 쪽 아비도 그들의 결혼이 처음부터 맘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가부장적 환경에서 자라 부모말에 순종하는 게 효라고 믿으며, 다른 형제와 달리 홀로 잘 나가는 아들이 되어 짊어지게 될 부모의 기대감이 걱정됐고, 자립심 강한 딸과의 관계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딸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고 우여곡절 끝에 한 결혼이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 같아 힘들지만 운명처럼 필연처럼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짐한다.


부부는 서로의 꿈을 키우며 책장에 책을 채우고, 미래를 향해 걸으며 사랑의 결과물이 커가고 있었으니. 행복이 그렇게 지속될 알았다. 경찰에서 신원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애틋하게 맞잡은 손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그만 낭떠러지로 꺼져버린 슬픔. 유복을 안고 살아갈 날들의 막연함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되뇌지만 앞이 캄캄하다.


보낸 이의 집안과 남겨진 이의 집안은 이렇게 큰 일 앞에서 보인 말과 행동들로 서로 다른 극단의 끝을 보이고 만다. 아직 끈이 남아있고, 멀리 보면 안타깝지만 좋은 추억으로 만들 수 있는 갈림길에서 어른들의 언행이 적나라하다. 이렇게 간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 보상 심리가 강하게 작용할 테고, 결국은 경제적 문제로 귀결된다고 본다면 너무 자본주의적 전망인가?


작가의 이전글 1 =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