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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

버티는 힘

by 노월

나름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럴 뿐이다.


자취방을 다시 옮겼다. 학교 가까이의 방세는 매년 오르고, 거리가 멀수록 금전에 여유가 생긴다. 좀 일찍 일어나고, 더 걸으면 된다. 그렇게 토요일에 리어카를 빌려 이사를 하고 새벽까지 방을 정리하다 잠이 들었다. 일요일 오전에 몸을 일으켜 대충 씻고 나니 뜨거운 국물의 음식이 간절하다. 밖엔 비가 오고 있다. 일교차가 큰 봄날의 비로 서늘한 기운이 몸을 더 무겁게 한다.


언젠가 동아리 회식에서 00 가든에 갔다. 졸업한 선배들이 여럿 왔고, 귀여운 후배들의 주린 술배를 채워주러 왔노라 호기롭게 끌고 들어간 00 가든이란 식당이 고깃집인 건 그때 처음 알았다. 기와집에 향나무와 소나무가 입구를 맞이하고 중앙에 분수가 뿜는 정원을 둔 집이 음식점이라 놀랐고, 그런 요정 같은 집에서 고기를 먹고 국수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음에 신기했다.


이사한 집이 중심가에서 좀 벗어난 곳이라 자연과 가까웠고, 그런 주변으로 ㅁㅁ가든이 자취방에서 멀지 않았다. 그 집을 보는 순간 뜨거운 잔치국수의 국물이 당겼다.


그가 원한 건 국수였다. 자리를 잡고 앉아 받은 메뉴판의 제일 뒷장을 펼쳤다. 된장찌개 밑에 잔치국수가 있었다. 값도 쌌다. 비 오는 일요일 오전. 아직 사람들로 분비지 않았다. 직원에게 오전이라 고기는 별로 안 당기고 국수를 먹으러 왔노라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 말은 전혀 다른 말투로 바뀌어 겸손한 부탁조의 말이 되어 얼버무리듯 나온다. '혹시 국수만 먹어도 되나요?'


가부의 답변 없이 직원은 메뉴판을 들고 뒤돌아 가면서 말한다. 있어봐요. 그리고 잠시 후 대접 가득 잔치국수를 차려온다. 곱빼기에 가까운 양이다. 애호박과 김과 김치가 고명으로 올려져 있고, 양념간장이 따라온다. 실컷 잘 먹고도 감사하면서도 뭔가 게운치 않다. 고기를 먹은 사람들을 위한 후식 식사메뉴로 적힌 국수를 국수만 먹으려는 자도 있구나 하는 직원의 눈치가 느껴져서일까. 혼자만의 기분일 수도 있다.


계산대에 주인인 듯한 이가 맛은 괜찮았는지, 양은 적지 않았는지 묻는다. 아뇨,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온다. 생각나면 또 오세요. 그래 또 생각이 날 것 같다. 계속 생각이 날 것 같다. 열기로 배속은 든든한데 경직된 몸의 움직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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