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이웃사촌
각자의 사연을 안고 어디선가 살아가다 어떤 연유로 이렇게 나이 들어서 같은 공간으로 모였다.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선線처럼 휘돌다 교차되어 만나 점點처럼 한 공간에 고이듯 머물면서 이웃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곳은 다음 경유지를 위한 잠시의 정착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의 마지막을 마무리 짓는 곳이다.
무엇이 됐든 이곳은 머무는 동안의 소중한 주거 공간이다. 인연은 어떻게 다시 이어질지 모른다.
각 층에 여섯 가구가 살고, 꼭대기는 15층이니 아파트 한 동에 모두 90 가구가 산다. 15평 내외의 실내 공간에 대부분 독거노인들이고, 내외가 사는 집이 가끔 있다. 이 복도식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 1대가 좌우 세 가구씩 나뉜 중앙에서 오르내린다. 좌우로 오가는 복도를 공유하고 한 개의 엘리베이터로 상하를 움직이다 보다 이래저래 만남이 잦은 구조다.
저절로 얼굴이 익고, 몇 호에 사는지 묻고, 연세를 맞춰가면서 얘기가 오간다. 나이 많은 이는 바로 형님이라 불리고, 동생이 되며, 어정쩡한 관계에서는 각자의 집 호수를 이름 삼아 '몇 호야'라고 부르며 손짓을 하기도 하고, 몇 호에 모여들기도 한다. 102호가 어쨌고, 306호가 어떻고, 701호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등의 숫자로 매겨진 부호 같은 호칭이다.
서로 살아온 사연들을 알게 되면서 맞장구도 치고 이해하기도 하고 울고 웃기도 한다. 그렇게 친해지고, 그렇게 자체 평가들이 일어나고, 그렇게 친소가 나뉜다. 그 친함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지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기도 하지만, 거리를 둔 틈새가 간격을 유지하다 소문을 타고 더 벌어지기도 하고 회오리로 몰아치기도 하고 빗물도 스며들고 햇빛도 새어든다.
부모자식의 관계가 뒤집히지는 않지만, 노인 아파트에 드나드는 아들딸들이라고 해도 이미 환갑 언저리나 퇴직을 한 자식들이 많으니, 부모 봉양을 하는 이들이 봉양을 받아야 하는 나이들인 셈이다. 병원에 모시고 갔다 와도 몸 구석구석 아프다고 힘들어하는 부모를 둔 이들 또한 몸이 무겁고 만성병을 한둘 가지고 있다. 팔구십 대의 노인을 육칠십 대의 늙은 자식들이 왔다 간다.
젊은 축이 더 나이 든 이들을 대하는 것은 그래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간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 104호가 그렇다. 그녀가 팔십 대 초반의 나이인데 아직도 환갑 넘긴 어린 아들을 돌본다. 사연인즉 참 슬프다. 젊어서 시집온 작은 마을에 때마침 만삭이 되어 출산을 기다리는 산모가 그녀를 포한해 모두 네 명이었다. 그때는 산부인과가 거의 없었으니 산파가 동네를 돌며 조산을 도와주었었다. 한 달 새 네 집안에 산달이 들었으니 조산사 한 명이 거의 한 달을 상주하다시피 하여 애기를 받았던가 보다.
그땐 자연분만이 일반이었고, 혹 난산의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 출산은 일생의 큰 위험이자 기쁨이었고, 더구나 초산의 그 부인은 초조했으리라. 그런데 어떤 기이한 일이 벌어졌는지 그녀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 임부는 출산과정에서 모두 애들을 잃어버렸다. 무슨 변고가 그런 변고가 있던고. 다행히 본인만 무사히 출산을 했고, 사산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태어난 영아는 불구의 몸이었다. 다들 이게 무슨 일이냐며 발을 동동거리고, 동네에 무슨 몹쓸 기운이 돌았나 보다며 마음을 포기하고 운명이라고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산파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도 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일이 벌어졌기에 다들 체념을 했다.
아들의 출산에 기뻐하던 아비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들에 실망하여 삼 년을 지키다 떠나버렸다. 남은 부인 홀로 여태까지 장애 아들을 돌보고 있다. 휠체어로 이동하고, 음식을 먹여줘야 하는 상황을 장장 육십 년을 이어오고 있다. 그녀는 그때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우리 아들도 같이 가버렸더라면 하고 바짝 마른 입술로 말하는 걸 곁에서 듣고 있던 이웃들은 에고에고 하며 먼 하늘로 시선을 돌린다. 104호의 소망은 본인보다 먼저 자식을 보내는 일이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 시설에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도 이젠 아들 앞으로 나오는 보조금이 생활비가 되어 아들과 떨어지면 생활자체가 힘들어져 그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세상이 어떻든 삶은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104호는 햇마늘이 좋아 보여 몇 접을 싸게 샀다. 일찍 캔 마늘 탓에 혹 건조가 덜 됐을까 염려되어 더 바짝 말리려 아파트 입구에 뒀는데 그 마늘의 반이 사라진 일이 있었다. 아파트 입구가 햇볕도 좋고 바람도 잘 통해 농사짓는 이들은 종종 그곳에서 곡물을 말렸다. 엘리베이터 출입구와 가까워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많은 눈이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소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웃들은 잘 찾아보라며, 잘못 본거 아니냐며 관심과 걱정을 보이지만 어쩌면 그들은 아파트 입구가 안전 장소가 아닐 수 있음에 더 신경 쓰고 있는지 모른다.
어쨌든 마늘을 잃은 날 마침 8층에 사는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엘리베이터에 내리던 802호를 만난다. 대표는 802호 손에 들린 마늘을 보고, 마늘이 실해 보인다며 어디서 샀냐고 얼마에 샀냐고 물었는데 802호는 말없이 성급히 집으로 들어가 버리더란 말을 한다. 그 말이 104호에게 전해지고 혹시나 하는 생각을 읽었는지 제 발 저린 802호는 자신의 결백 주장을 이상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아니 104호는 무슨 근거로 나를 의심하냐고, 무슨 그런 고약한 말을 하냐며, 그러니 그런 자식을 낳았지.
다른 이웃들과 잘 소통을 하지 않던 802호의 이 말은 엄청난 공분을 샀다. 802호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나. 넌 그렇게 잘 나서 그 새까만 생떼를 둘씩이나 버려두고 여기로 와서 다시 재혼했냐. 손이 거칠더니 네 짓이 분명할 것 같다는 등의 말은 결국 입주 대표와 802호의 남편과 아파트 관리실에서 시시티브이 영상 확인을 요구하게 되고, 802호의 실토가 이뤄진다. 남편의 강권에 802호는 104호에 찾아가 물건을 돌려주고 사과를 하는데 그 말이 다시 사람들에 전해진다. 미안한데 내가 치매끼가 있어 그랬던가 봅니다.
견물생심의 인간 심리 작동으로 아파트 입구의 양지바른 곳에는 농사짓는 이들의 곡물 말리기가 이제 조심스럽다. 지은 감자 농사가 잘됐다며 이웃들에게 삶은 감자를 쥐어주던 노인도 잃어버린 들깨 얘기를 한다. 나이가 들어도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여전하다.
문득 멀리서 이 아파트 모습을 보니 큰 배처럼 보인다. 유람선 같기도 하고 크루즈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속에 옹기종기 알알이 박혀 듬성듬성 흰머리를 한 이들이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사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