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
힘 좋아 보이는 근육질의 체구다. 오랜 세월 볕에 그을린 노동으로 까무잡잡하게 탄 얼굴은 원래 피부색이 시커무리한가 싶다가도 목 아래 하얀 살갗과 대비되어 이질적 투톤의 피부가 따로 노는 듯이 드러난다. 걸걸한 목소리로 허허 웃는 표정은 웃음 외에 세상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냐고 말한다. 거무스름한 얼굴에 가끔 술기운으로 치받아 올라온 불그락한 취기가 웃음소리를 더 탁하게 한다. 원래 잘 웃는 얼굴이라 웃으면 뺨에 주름이 잡혔던 것이 세월을 따라 코 옆의 법령 주름을 더 깊게 패어 이젠 가만있어도 저절로 웃는 얼굴이 자연스럽다.
환갑을 한참 넘긴 나이인데 아직 현역으로 일을 하다 보니 어깨고 허리고 아픈 곳이 많다. 원래 나이 들면 다들 그렇지 않냐고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피로함도 배어 있다. 아직은 이선으로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이는 단호함이 주먹을 쥘 때면 튀어나오는 팔근육과 혈관처럼 단단하게 느껴진다.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냐고 하니 아직은 멀었단다. 그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아직도 하고 있느냐고 주변에서 일을 그만하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지만, 힘 있을 때 힘닿을 때까지 하는 거고, 또 내가 할 수 있고 내 할 일이 있다는 게 좋은 거 아닌가 반문한다.
은근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솔직히 나도 쉬고 싶지.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 일을 가르쳐주고 장비 사용법도 일러주면서 이 일을 넘겨주려 해도 받아줄 젊은이가 드물어. 며칠 일 해보다 힘들다고 다들 그만둔다고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여태 이러고 있거든. 배워두면 기술직이니 돈도 제법이고 평생의 직장이 되는 건데, 너무 쉬운 것들만 찾아서 그런지 하려고 달려드는 놈이 없네. 이 일이 그만 사라질까 봐 안타깝고 아깝지. 땀 흘린 만큼 벌이도 따라주고 최소한 속이는 장사는 아닌데 말이야. 그 참.
물길을 잡고, 필요하면 물 정화도 하고, 상하수의 배관 작업 등이 그의 주 임무다. 깊은 곳에 내려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물의 흐름이 생각지 않은 곳으로 가기도 하지만 그게 그의 노하우가 힘을 발하는 지점이다. 계측기로 탐측하여 나온 측량치의 검증, 거대 장비의 이동과 작업 등. 이 일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거든.
일에 대해서는 신나게 무용담처럼 얘기하다가 이제 나이도 있으니 힘든 일일랑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냐는 식으로 대화 화제가 바뀌면 웃던 그의 얼굴에 한숨이 번진다.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는 식이다. 인정은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발끈하는 모양새로 받아친다. 아직은 쉴 수가 없는 사연이 있는 듯이.
그가 자주 가는 단골 식당 여주인이 말을 전해준다.
글쎄 그이한테 아픈 딸이 하나 있지. 아들놈은 나름 제 생활을 영위해 가니 신경 쓸게 없는데, 아픈 딸이 그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거든. 여사장은 검지로 머리를 두드리며 이게 약간 떨어져. 인지력에 문제가 있으니 직장을 구하지 못해. 글쎄 딸이 결혼하고 애를 낳았는데 손주가 또 장애야. 그런데 그 사위 놈이 글쎄 못살겠다고. 어찌해서 이혼을 하게 됐는데 글쎄 양육비랑 생활비도 한 푼 못 받고 그만 도장을 찍었다지 뭐야. 글쎄 똑똑하지 못함을 이용한 건지 뭔지.
딸이 결혼하고 나서 그게 그렇게 다행이라며 이제 할 일 대충 끝났다며 한 잔 걸치면 얼마나 싱글벙글 거리며 좋아했었는지 몰라. 이제 좀 맘을 놓는가 싶었던 그이가 딸이 그렇게 그러고 나서는 꽤 맘고생이 심했지 뭐야. 그 이후로 다시 전국을 돌며 일을 하더라고. 돈을 좀 더 모아서 조그만 간판을 달려고 하나 봐. 사무실을 열어 그 딸을 앉혔으면 하더라고. 산 목숨 먹고살아야 하잖아. 그래서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하는지도 몰라.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하면서 이제 힘도 부치는데 어떡하냐는 걱정의 말을 하면서도 그는 허허 웃는다. 병원에서 운이 좋았다며 폐섬유가 어떻고 저떻고 참나. 본인의 심각한 일을 참으로 밝게 남의 일처럼 말한다. 일을 좀 줄이긴 줄여야겠는데 쉽지가 않네. 그의 사정을 건너 듣고 나서 여서 그랬을까? 그의 웃음이 실없어 보이기도 하다. 확인 여부니 뭐니 다 쓸데없는 짓이다. 뭐 별것 있나 이렇게 웃으며 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