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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 구하기

by 노월

살아있네?

이 여름. 늦저녁 해가 져도 더위는 사방 가득 숨차다. 휴식 겸 동네 등나무아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무심코 주변을 바라보다 시선이 머문 바닥에 뭔가 떨어져 있다. 그냥 쓰레기려니 했다. 바람도 없는데 꿈찔꿈질 움직임이 있다. 눈길 따라 자연스레 다가가 가까이 본다. 새? 그런데 아주 작고 어린놈의 새가 누워있다. 잔나뭇가지보다 더 가는 철사 같은 발을 건드리니 살짝 움켜쥐는 꼼지락의 미동. 살아 있구나.


유년시절을 보낸 강원도 산골에서 가끔 봤다. 떨어진 어린 새를. 집으로 데려와 살려본 적도 있었다. 불쌍한 느낌이 들어 잘 돌봐주면 살아나지 않을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막상 집으로 데려와 먹이도 먹여보고 둥지처럼 쉼터를 꾸며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힘없이 다음날 죽는 놈도 있고, 추위를 탈까 이불을 덮는 바람에 죽어버린 놈도 있고, 기운을 차려 산으로 날아간 놈도 있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어린 새를 본 게 얼마만인가.


어디서 떨어졌을까? 주변 나무를 봐도 새둥지를 찾기 어렵고 또 어둡기도 해서 하늘에 새가 있을 만한 곳을 찾지 못하겠다. 여기 그대로 있다간 고양이 먹이되기 십상이다.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보니 겨우 검지 손가락만 한 크기의 놈이다. 심장은 뛰고 있지만 온기라고 할 만한 열감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자극의 반응정도로만 움직이고 동작이 거의 없다. 일단은 뭐라도 해야지 여기 두고 못 본 척 떠날 순 없다.


집으로 가져와 일단 우유를 주둥이에 갖다 댄다. 전혀 입을 열지 않는다. 어디서 보니 주사기로 입을 벌려 밀어 넣기도 하던데 그런 주사기가 없으니 손끝에 우유를 찍어 부리에 대기를 반복한다. 아, 새들은 벌레나 지렁이를 먹는 거 아닌가란 생각에 아파트 화단을 모종삽으로 뒤적인다. 한참을 이곳저곳 파다 겨우 지렁이 한 마리를 잡아 집에 가져와 다시 어린 새의 부리 근처에 갖다 대도 놈은 반응이 없다. 살아있긴 한데 울지도 않고, 그렇게 이리저리 바라보다 새벽에 잠이 들었다.


출근시간이 다 와가는데 이 놈을 두고 나갈 순 없다. 어딜 부탁할까? 그렇게 그 새끼는 내게 맡겨졌다. 아니 내가 새를 키워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말해도 그는 퇴근할 때까지만 좀 봐달라고 부탁이다. 물과 삶은 계란과 땅콩 부스러기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에 새를 담고 내 앞에 서있다. 난감하다. 밤새 우유를 먹이려 했어요. 입을 벌리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는 왼손으로 날개를 감싸 잡고 새를 움켜 뒤집어 부리에 우유를 몇 방울 떨어뜨린다. 그런데 뒤집힌 새를 보니 아직 목과 겨드랑이가 맨살을 드러내고 붉다. 병에 걸려 털이 빠졌을까? 너무 어려 아직 털조차 제대로 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딱히 다리가 부러진 모양은 아니다. 걷지도 못하고 떨고 있지만 잘 서있다.


뭐 따로 하실 건 없고요, 주둥이에 물이나 한 번씩 적셔주세요. 죽으면 할 수 없는 거고. 어쩔 수 없죠. 지 운명인데. 퇴근할 때까지만 돌봐주세요. 괜찮겠죠?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작은 새가 혹 두려워할까 봐 자주 다가갈 수 없었다. 다만 그가 퇴근할 때까지 무사히 살아있길 바란다. 손 끝에 물을 적셔 부리에 흘려보낸다. 기력이 없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뭘 마시게 하려다 잘못하여 사레들리고 기침이 연발하여 힘들게 되는 것처럼 억지로 뭘 주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닐 것 같았다. 그저 입술을 적시듯 새부리에 손끝 물방울이 타고 흐르게 여러 번 시도한다. 눈은 뜨고 있을까? 서있는 모양만 보고 눈을 보지 못했구나. 눈은 점처럼 작고 까맣게 반짝인다. 검은깨 한 톨보다 더 작다. 저 눈으로 세상이 보일까 싶다.


사람들의 손을 타면 더 불안해할까 봐 검은 천으로 덮어둔다. 다시 새에게 모이 주듯 부리에 물을 흘려보내니 약간씩 주둥이를 벌려 먹는다. 몇 모금. 덮개로 덮고 시간이 흘러 짝짝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법 잦다. 미숙한 날개로는 어딜 날아갈 수도 없다.


그 사람이 퇴근하여 집으로 다시 데려가더라도 새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계속 키울 수는 없을 텐데 어떻게 할까? 야생동물 보호센터? 전화를 해보니 일단 사진을 찍어 보내란다. 보자마자 센터에서는 텃새인 박새 새끼라고 한다. 구조 요원을 보낼 테니 그의 안내를 따르란다.


그에게 연락을 넣었다. 야생동물 보호센터에서 구조원을 보내주기로 했다고. 걱정 말라고. 어린 새의 활동이 좀 활발해졌고 물도 먹고 걷는다고. 그는 잘됐다고 고맙다고 퇴근길에 들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구조원이 왔다. 모자를 쓰고 점프를 입은 연세가 있어 보이는 분이다. 특별히 구조원이라고 할 만한 제복이 아니고 식별을 할 수 있는 게 없이 동네 아저씨 같다.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기 힘들다. 신고받고 왔습니다. 그에게 박스를 보여준다. 박새라고 하던데 맞나요? 보자마자 그는 예, 부화한 지 열흘이 안 됐네요. 왜 떨어졌을까요? 흔해요, 형제들끼리의 힘에 밀려 먹이싸움에서 진 거죠. 사무적인 행동. 일상적인 흔한 일이라는 듯. 적자생존의 과정.


박스에 담겨 새는 그렇게 보내지고 더 이상 연락이 없다. 잘 크길. 그때에만 가능한 것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서는 회복이 힘든. 잠시였지만 박새 새끼가 조금씩 살아나니 은근히 좀 더 있다 연락할걸 그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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