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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왔나?

가는 길에 묻는

by 노월

어려서 길을 가다 힘들면 특히 오르막을 가야 하는 경우엔 누나의 등뒤에서 허리를 숙여 누나의 허리를 잡고 땅을 보며 걷는다. 내가 누나를 미는지 누나가 나를 이끄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걸으면 덜 힘들었다. 굳이 앞을 보며 걷지 않아 어디쯤 왔을지 누나에게 묻는다. '어디까지 왔나'라고 물으면 누나는 '전봇대까지 왔지', 빵집까지, 슈퍼까지 왔다 등으로 답하며 집까지 걸었다.


어디까지 왔냐고 물었지만 어디까지 왔든 물음과 답은 가는 동안의 심심풀이. 별 일없어 침묵을 깨려는, 어디까지 왔나, 대문까지 왔지로 끝날 때까지 잘 가고 있다는.


할머니 언제 도착해? 응 저 고개만 넘으면 다 왔다. 또 물으면 똑같은 대답이다. 조금만 더 가면 다 왔다.

장날 따라갔다 장 보고 오는 길에 다리도 아프고 쉬고 싶은데 할머니는 거의 다 왔다고만 한다. 정말 그 고개를 넘으면 집에 도착할까? 고개 넘어도 갈 길이 멀다. 아직 멀었어? 응, 이제 거의 다 왔다. 도착을 속인 게 아니라 집에 좀 더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산을 오르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산정상이 멀었냐고 물으면 대체적인 대답은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라고. 힘을 내라고. 배려의 차원일까? 포기하지 말라는 말일까? 일러줘도 의미 없다는 말일까? 결국은 정상은 가 봐야만 알 수 있으니.


얼마나 왔고 어디까지 왔든,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하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가는 거다. 주변에서 거의 다 왔노라 일러주는 말은 응원이요 힘든 마음을 덜어주는 감사한 말씀이지만 말인 거다.


물어보든 아니든 맞든 그르든 가던 길을 걸어간다. 어쩌면 나는 그냥 팔다리를 흔들고 주변 환경이 바뀌는 거다.

목적지에 도착을 했어도 그 목적지가 최종 목적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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