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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공원

무지개다리를 넘어

by 노월

정드는 게 사람뿐인가. 내 주변에 내 손을 탄 모든 것에 애착이 간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그에겐 건강유지를 위한 보신의 방법으로 육식이 필요했고 개고기는 훌륭한 영양이었다. 어렵게 성사된 미국 유학이 그에게 무리였을까? 부실한 식사와 낯선 환경에 적응이 힘들면서 발병한 폐결핵으로 더 이상의 공부를 포기하고 귀국했던 그를 살린 것도 보신탕이었다고 그는 믿었다. 그렇게 그에게 개는 식용의 의미 이상은 아니었다.


시골에 살던 그가 회사 발령을 받고 도시의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친척 중 누군가 강아지 한 마리를 주면서 이런 놈 한 마리가 마당에 있으면 집이 좀 든든해진다고 말한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잡종의 누렁이는 그렇게 마당에 키워졌다. 밥을 남겨 개집 앞에 두면 누렁이는 깨끗이 비웠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래도 꼬리를 흔들며 그의 주변을 맴돌던 누렁이를 그는 좋아하고 귀여워하긴 했지만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정도의 가까움이었다. 그땐 대부분 개를 묶어두지 않고 키웠기에 누렁이는 새벽마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아침이면 집으로 돌아왔고, 하루 두 번의 밥을 비웠다.


순한 성격의 누렁이는 낯 선 사람이 와도 약간 으르렁거리다 그칠 뿐 크게 짓거나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날도 누렁이는 새벽을 나섰는데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출근할 때 둔 밥그릇이 점심이 지나도록 그릇이 그대로였다. 그날 오후에 집으로 찾아온 동네 사는 어떤 중노인이 차를 후진하다 누렁이를 못 보고 그만 치었다며 축 늘어진 누렁이를 들고 나타났다. 이 집의 개인듯해서 왔노라며. 이미 차가운 누렁이는 더 이상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중노인은 그에게 자신의 운전 미숙으로 시야 제한이 있어 미처 누렁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만 그렇게 됐으니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사죄와 보상을 얘기하러 왔으나 그는 회사에 잠시 짬을 내어 나왔으니 다시 들어가 봐야 한다며, 저녁에 만나 다시 얘기하자며 자리를 뜨고, 누렁이는 마당 한편에 짚가마니로 덮였다. 그가 퇴근하고 집으로 왔을 땐 마당의 가마니는 마당 바닥에 평평하게 깔려있었다. 누구의 짓인지 주변에 물어도 다들 모른다고. 누렁이 사건은 그렇게 넘어가 버렸다. 일찍 찾아온 더위로 지친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그가 다시 개를 키운 건 사업상 그의 신세를 진 누군가 고마움으로 준 진돗개 새끼 암수 두 마리였다. 일이 잘 됐으면 그걸로 됐다며, 본인은 회사의 지침대로 한 것이니 굳이 그럴 것까지 없다고 해도 신세 진 이는 그가 받아주길 부탁하며 진돗개의 혈통 증명서까지 건네주고 간다. 그렇게 그와 인연이 된 진돗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의 다른 잡종들과 떠돌이 개들을 이끌고 다닌다. 누렁이에게선 보지 못한 리더십과 똑똑함이다. 주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미리 가서 기다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물고 온다.


주택살이의 힘듦과 회사의 이직으로 그에게 먼 출근 거리가 걸림이 됐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파트로 옮길 수밖에 없었고, 그 시절의 아파트엔 개를 그것도 두 마리를 같이 키우기 힘들다는 판단에 그는 진돗개를 대신 맡아줄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았고, 혈통 증명서를 건네며 신신당부를 했다. 다른 곳에 팔지 말고 부디 잘 키워달라고. 그렇게 그가 떠나는 날 진돗개 둘은 그의 차를 쫓아 마을 입구까지 짖으며 달려왔다. 그가 사이드미러로 혀가 입 밖까지 나와 헐떡이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 그들의 눈빛에서 뭔지 모를 원망감을 느꼈다. 미안한 마음 가득했지만 어쩔 수 없노라고 추스렀지만 끝내 아쉬움이 남았다.


개가 식용에서 애완으로 반려로 사회적 인식에 변화가 일었다. 아파트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었다. 여러 종류의 개를 만나고 또 떠나보내면서 가장 최근의 시츄종을 마지막으로 그는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는다. 마지막 반려견에 대한 애정이 깊어 더는 상실의 마음고생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떠났어도 남은 여운들. 여러 반려견을 겪은 그는 이제 칠십을 넘긴 할아버지가 됐다. 어느 날 칠세의 외손주에게 개가 다 같은 개처럼 보여도 다르다고, 같은 종이라도 같지 않은 지적 능력과 성격과 감정들이 있노라 얘기한다.


준아. 누렁이, 진돗개, 마티스, 시츄 등의 생김새에 따른 구분 그대로 성격도 그에 따라 다른가 봐. 어떤 놈은 순하고, 다른 놈은 충직하고, 똑똑한 놈도 있고, 애교를 잘 부리는 것도 있고 참 다양해.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질문이 어려운지 준은 말이 없다. 아니면 답을 생각해 내느라 골똘한지도 모른다.

준이 넌 어떻게 살고 싶은데?

할아버지, 난 이렇게 살래.

왜?

뭐 이미 정해져 있다며.

음....


한 번은 무지개 공원을 갔다 온 할아버지에게 손주가 묻는다.

할아버지 어디 갔다 왔어?

응, 찡코가 보고 싶어 무지개 공원에 갔다 왔지.


찡코가 노인의 마지막 반려견이었다. 처음 녀석을 만났을 때 다른 개들이 그에게 오줌을 갈겨도 참고 웅크려 아무런 저항 없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집에 데려왔을 때 유기견 특유의 불안감을 많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럽고 귀엽기도 하면서 코가 찡해오는 그래서 이름도 찡코. 데려온 후로홀로 남겨지는 것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또 버려질까 봐. 곁을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짖물고 붙들고 배변을 해대고.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찡코는 특유의 재롱과 똑똑함을 보여준다. 생존 본능일까 싶어 더 동정심이 동했는지 노인은 어딜 가든 찡코를 데리고 다녔고, 지금은 같이 갔던 여행지를 지나칠 때면 찡코가 떠오른다.


그런데 할아버진 왜 울어?

한 번씩은 아주 보고 싶어서.

그래서 보고 왔잖아.

으응....


무지개 공원을 찾는 이가 많았고, 상실의 텅 비고 허전한 마음을 같이 공감하는 이들. 무지개 너머의 그곳이 따뜻하길.

인간보다 생의 주기가 짧은 종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어떤가.

인간의 생사보다 주기가 더 긴 존재에게 인간은 어떻게 인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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